대구신세계갤러리는 2019년부터 이어온 네 번째 <추상유희 抽象遊戲>展을 개최합니다. 외부세계의 재현과 대척점에 있는 ‘추상‘은 무형, 비가시적인 것을 표현하는 예술의 장르로 대표됩니다. 추상예술의 태동과 궤를 함께하는 바실리 칸딘스키, 카지미르 말레비치 등 서구의 예술가들은 물질을 넘어선 무형의 ‘정신성’을 예술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을 지니고, 예술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순수한 형상의 도출과 함께 예술의 미적 기준을 자유롭게 해방시켰고, 이후 추상회화는 관념, 정서, 실재적인 것을 일깨우며 감각적 울림을 담지하는 매체로 나아갔습니다.
한지韓紙라는 재료적 공통분모로 추상회화를 개진하는 차계남과 캐스퍼 강은 예술이라는 범주 내에서 평면의 구조적 해석과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영역에 근거해 부단한 예술적 모색을 시도합니다. 깊이를 달리하는 흑백의 무채색으로 이루어진 차계남의 작업은 무수한 인내와 수양이 담겨있습니다. 작가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한지 위에 먹으로 오랜 시간 붓글씨를 써내려갑니다. 이를 일정한 폭과 길이로 자른 뒤,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는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한 가닥의 한지 실을 꼬아 가로 세로로 붙여 나가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일련의 수행修行과도 같은 과정을 통해 발현된 차계남의 작품은 그 자체로 숭고의 감정을 자아냅니다. 작품 속에 담긴 글자체는 수천 수만의 점과 선으로 형상을 드러내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창조와 소멸의 영원한 순환을 담아냅니다. 이는 차계남의 오랜 작업 여정의 집대성이며, 무한한 우주의 질서와 혼돈 속에서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나타내는 사유의 흔적입니다.
검게 그을리고 설키고 얽히고, 흩날리고 너울진 캐스퍼 강의 작업은 시각적인 동시에 촉각적으로 다가와 다양한 감각을 아우릅니다. 지류의 질료적 실험이 감각적 형形과 결합된 작가의 추상은 무상無像의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캐스퍼 강의 무상은 모든 것의 덧없음이라기 보다는 의미의 가능성을 찾기 위한 비워냄입니다. 본래의 성질을 유추할 수 없을 만큼 해체되고, 또 이질적으로 결합된 작가의 촉각적 질료들은 고요한 정적을 깨우며 기존의 질서에서 자유롭게 해방됩니다. 그 사이의 풍경에서 떠오르는 에너지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이는 다시 채워짐의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의미를 지워냄으로써 궁극적인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추상적 경험은 익숙함을 깨고 꿈틀거리는 새로운 감각으로 강렬하며 부드럽게 다가옵니다. 고유한 물성의 천착을 넘어서 각자의 삶과 생生에 대한 사유思惟를 담은 두 예술가의 태도와 흔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묵직한 울림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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