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갤러리 청담에서는 2025년 4월 17일부터 6월 21일까지 타이포그래피 아티스트 안상수(b.1952~)의 개인전 《날개이상, 홀려라 홀리리로다》를 개최합니다. 안상수는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개척자이자, 디자인과 시각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인 아티스트로, 평생 한국 문학의 선구적인 모더니스트이자 실험적 문학가인 이상(李箱, 1910~1937)의 문학에서 깊은 영감을 받아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이상의 문학적 실험성을 안상수의 조형 언어로 재해석한 작업들을 선보입니다.
전시는 이상의 타계일인 4월 17일에 맞추어 개막합니다. 특히 전시가 열리는 신세계갤러리는 이상 문학 속에서 근대적 욕망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백화점'이라는 공간에 위치하여, 이상의 작품 세계와 공간적 연관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이상의 대표작 『날개』에서 주인공은 현 신세계백화점 본점인 미쓰코시 백화점의 옥상에서 도시 풍경을 내려다보며 근대적 삶의 모순과 개인적 욕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안상수는 이 장면을 설치 작품으로 시각화하여, 금붕어 어항이라는 구체적 형상을 통해 문학적 상징을 현대적으로 재현하고, 두 예술가의 시대를 초월한 소통을 시도합니다.
이번 전시에는 <홀려라>, <알파에서 히읗까지>, <한글매화>, <한글도깨비>, <생명평화무늬>를 비롯해 새롭게 선보이는 <날개.이상-백주궁.삼차각설계도>, <한글초상(이상/안상수)>, <네가.나다.아냐.내가.너다>, <이상에의 최경례> 등 회화, 설치, 판화, 미디어 아트 등 총 5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됩니다. 각각의 작품은 이상의 문학과 안상수의 시각 언어가 만나는 지점을 탐색하며, 관람객에게 문학과 시각예술 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또한, 분더샵 1층 케이스스터디에서는 전시 연계 굿즈(티셔츠, 북커버, 토트백 등)를 함께 선보여, 관람객이 전시의 여운을 일상 속에서도 이어갈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안상수는 1985년 ‘안상수체’를 개발하며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이후 홍익대학교 교수직을 역임하며 교육자로도 활약해왔습니다. 은퇴 후에는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을 설립하여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이상의 혁신적인 문학과 안상수의 타이포그래피 실험이 만나는 장으로, 문학이 시각예술로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제시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입니다.
전시 서문
이상(李箱)은 매사를 장난하듯 했지만 그건 그의 삶이 결코 장난이 아니었다는 증거다.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 죽기 한 해 전에 이렇게 적었듯이 그에게 ‘기교’와 ‘절망’은 삶의 앞뒷면이었다. 앞과 뒤라는 건 그 둘이 같진 않다는 뜻이다. 그 틈을 자각하고 벌리고 즐길 줄 아는 게 ‘현대인’ 혹은 현대적 예술가라는 것조차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후대의 독자들이 시도하는 이상에 대한 말장난은 대부분 시시해지고 만다. 절망 없는 장난은 장난 없는 절망보다 더 추한 것이다. 그래도 해보자, 한 번만 더 해보자꾸나. 이상의 삶과 문학을 한꺼번에 요약하려니 다른 도리가 없다.
‘이상(異常)한 세상에서 이상(異常)해지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異常)한 거지.’ 이상이 이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우긴다. 이것은 이상의 자가 진단이다. 식민지에 태어난 것도 모자라, 결핵에 생명도 저당 잡힌, 박제된 천재가 아니라면 누가 할 말이겠는가. ‘이상(理想)적으로 태어나지 못했다면 이상(理想)적으로 죽기라도 해야 이상(理想)적이지.’ 이런 말 역시 하지 않았지만 했다고 치자. 이것은 이상의 셀프 처방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삶의 완전연소를 꿈꾼 그는 ‘김해경’에서 ‘이상’으로 탈출해, 제 화려한 문학이 제 남루한 삶을 대체하게 했다. 요컨대 이상(異常)과 이상(理想) 사이에서, 이상(異常)에서 이상(理想)으로 가기 위한 경련과도 같은 포복이 이상의 문학이었다는 것.
그는 성공했는가? 목표가 전위적일 땐 그 실패까지도 전위적인 것이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역단’ ‘위독’ 등의 연작시, ‘날개’를 위시한 몇 편의 소설, ‘권태’나 ‘산촌여정’ 같은 수필을 얻었다. 초기 작품에 엿보이는 치기가 말끔히 제거된, 유보가 필요 없는 걸작들이다. 그의 실패는 한국 문학사가 가져본 가장 철저하고 황홀한 실패였고, 그 덕분에 한국문학사는 지난 백 년 동안 당당했다. 어떤 깊은 눈이 있어, 이상에게서 ‘여전한 현재’만이 아니라 ‘지나간 미래’를 발견하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한쪽 눈을 가린 채 더 깊은 세상을 보는 안상수가 지금 이상을 보고 있다. 제 삶을 디자인한 이상을 디자인하면서, 안상수는, 나와 당신과 이 세계를 디자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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