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갤러리는 대구신세계백화점의 개점을 맞아 백산 김정옥 도자전을 개최하며 센텀, 광주를 순회합니다.
이번 전시는 신세계갤러리가 선보일 ‘명장 명품’ 시리즈 첫 번째로 우리 문화의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조명하는 전시입니다. 백산 선생은 익히 알려진 도자계의 명장으로 경상북도 문경에서 전통적인 발물레와 망댕이 가마를 사용하는 조선 도자의 맥을 7대째 이어오고 있는 분이자 사기장으로는 국내 유일의 국가무형문화재입니다.
우리 전통문화는 끊임없이 떠오른 수많은 예술인 장인의 명멸 속에서 이어져 왔습니다. 전쟁과 침탈의 역사 속에서도 훼손과 약탈을 피해 살아남아 박물관의 조명 아래 영롱한 빛을 발하는 수많은 명품들이 그 명멸의 흔적입니다. 안목 있는 사람들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명품들이지만 안타깝게도 현대에 그 명맥을 잇는 것은 소수 장인의 집념 어린 희생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백산 선생이 잇는 도자 작업의 가치는 단순히 250여 년 대물림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법에 준한 장인의 숭고한 노동의 힘에서 비롯됩니다. 단아함에 숨겨진 우직함과 소박한 운치를 떠받친 치열함은 전통이나 정통성이 결코 추상적인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맨발로 흙을 밟고, 꼬막을 밀며, 발물레로 그릇을 빚고, 가마 속 불의 조화를 살핀다. 그릇에 생명을 넣는 불을 조절하는 것은 한평생 해온 일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자연의 기운을 거스르지 않고 마음이 투명한 불꽃이 될 때까지 기다리노라면, 흙으로 빚은 그릇에서 하얗게 새살이 돋아난다.” -백산 김정옥
첨단의 기술과 질료 본성의 연구를 극단까지 밀어붙여 빚어낸 현대 도자의 성과는 아름답기만 합니다. 그에 반해 조선 도자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백 여 년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간송과 같은 선구자가 없었다면 우리 도자의 명품들이 어찌 되었을지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그런 한편으로 온갖 천대와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가업을 이어온 장인들이 있기에 조선 도자의 명맥이 끊이지 않은 것은 그야말로 다행이라 하겠습니다.
백산 선생 도자의 특징은 7대째 고법을 준수하고 내림 기술을 지켜온 장인의 태도, 일상생활 속 쓰임에 충실해야 한다는 기본을 지켜온 정신이 낳은 담박함입니다. 보는데 편안하고, 쓰는데 편리하며, 쓸수록 아름다워, 오래되면 정겨워지는 조선 도자의 정수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 정수는 다른 의미에서 우리가 미래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과제인 탈근대의 노력으로 모색하는 한 방편인 ‘한국 미의식’의 모호함을 걷어 선명히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달항아리의 당당하고 여유로운 곡선은 한없는 편안함과 친근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꾸밈을 덜어냄으로써 얻어낸 소박한 형태와 고색의 청화백자는 자연미에 가깝습니다. 찻사발 중에서도 으뜸인 정호다완은 단순하면서 당당한 것이 특징인데 살굿빛 감도는 말쑥한 때깔과 감겨드는 형태에서 느껴지는 손맛, 그릇마다의 개성을 함축하는 매화피의 촉감이 각별합니다. 여기에 시간을 더하면, 자연의 온기를 품은 찻물에 의한 다심으로 그릇에 쓰는 이의 생명력이 깃들게 됩니다.
희수를 앞둔 나이에도 앉은 자리에서 수백 개의 그릇을 빚어내는 발물레질은 명작의 주재료가 여전히 땀임을 보여줍니다. 더 쉽고 편한 방법이 있어도 전통을 지켜나가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집념은 현대에도 조선 도자의 맥과 정신이 이어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더욱 희망적인 것은 백산 선생의 아들에서 손자로 9대째 문경 영남요를 잇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한부작(無汗不作)은 백산 선생의 ‘땀 없이는 이루지 못한다’(無汗不成)는 정신을 시각적으로 풀어보려는 전시입니다. 땀과 집념으로 이룬 장인의 기술과 노동은 세대와 경험을 초월하는 감성의 공감을 만드는 신비로운 연금술입니다. 전통의 기품이 살아 있는 백산 선생의 작품에서 수백 년을 넘어선 따듯한 온기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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