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신세계갤러리에서는 만물이 소생하는 만화방창(萬化方暢)의 계절, 봄을 맞이하여 생명의 근원인 ‘자연’을 주제로 한 신춘기획전 <나와 자연 사이의 거리>展을 개최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 인간의 개입으로 변형된 인공의 자연, 우리가 꿈꾸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의 자연을 표현한 여섯 작가들의 다양한 해석을 통해, 지구의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기후변화(climate change)를 넘어 기후위기(climate crisis)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자연’에 대한 우리의 변화된 시각과 태도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대립적 시각의 구조적 접근방식을 사유하는 서양철학과는 달리, 동양철학은 참과 거짓, 흑과 백, 하늘과 땅을 기준으로 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만물의 ‘관계’에 집중합니다. 이번 전시의 작가들은 회화, 사진, 영상의 매체를 통해 우리의 원초적 삶의 터전인 ‘자연’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먹을 먹인 화선지를 해체하고 재조합한 산수화(설박)에서 예부터 숭고한 대상으로 여겨진 자연의 에너지와 자연에 자신을 이입시키려는 작가의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첩된 산의 이미지로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한 사진(김영태) 속의 자연은 그림자를 통해 그 존재감을 드러내며 자연의 품 안에서 체감한 개인의 기억을 다시 소환시켜 줍니다. 동일한 크기의 작은 종이 위에 먹의 농담(濃淡)만으로 구성된 흑백 바다(권세진)는 먹과 물의 만남으로 생기는 우연의 효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과학적으로 균형 잡힌 자연의 모습을 표현합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자연’은 이미 인간의 손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운 청정 자연의 모습이 아닙니다. ‘자연을 보호한다’, ‘자연의 균형을 맞춘다’는 표현들도 자연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것이라기보다,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기준에 맞추어진 개념일 것입니다. 사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물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은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닙니다. 매일 오가며 마주치지만 이름도 없는 녹색 숲(이현호)은 그 공간을 점점 침투해 들어오는 인공물에 대한 시각적 또는 심리적 불편함을 나타내고, 이렇게 인간이 설계한 기하학적 구조물에 갇혀버린 나무의 모습(최은정)은 잘 가꾸어진 인간의 숨겨진 욕망과도 같습니다. 작가는 이렇듯 평범한 일상 속 주변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변화와 현상을 먼 거리에서 관찰하고, 그것을 화면으로 불러들입니다.
자연의 구성원으로서 대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며 살아온 인간에게 자연은 이제 도시를 벗어나 잠시 찾아가는 유희공간 또는 소유하고 통제하고 싶은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캔버스에 흩뿌려진 다채로운 색채의 향연(전희경)은 현실과 이상 간의 괴리 안에서 절망하지 않고, 또 다시 ‘봄’을 그리고 이상적인 ‘자연’을 소망하는 모습을 나타낸 듯 보입니다. 자연에 대한 인식의 변화처럼 작품 속에 나타난 자연을 바라보는 작가만의 시각과 그 사이의 거리는 서로 다릅니다. 이번 전시가 우리에게 자연은 어떤 의미인지 다시 질문하고, 우리가 선택한 자연은 어떤 모습인지 스스로 그려 볼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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