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갤러리 강남은 개관을 기념하여 '김창열: 물방울, 순간에서 영원으로' 전시를 소개합니다.
이번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물방울 작가’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이 물방울을 주제로 삼기 시작한 1970년대의 초기작부터 2000년대의 근작 중 엄선된 작품만을 한자리에 모은 보기 드문 기회입니다. 캔버스, 마대, 유화, 아크릴, 모래 등 다양한 소재로 표현된 물방울의 정수를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김창열의 작품세계에 물방울이 등장한 것은 1970년대 초반입니다.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하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다”라고 말해온 작가는, 우연히 캔버스에 튄 물방울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이후 50여 년 이상을 구도자의 자세로 물방울만을 그렸습니다. 따라서 그의 작업 과정은 창작보다는 사뭇 수양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50여 년의 삶의 굴곡을 반영하듯 물방울은 끊임없이 변화해왔습니다. 오랜 타지 생활,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가 더해진 프랑스 시절의 물방울, 유년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천자문을 품은 1980년대의 물방울. 물방울과 캔버스의 표면은 서로 교감하며 그 독보적인 물질성을 빛냅니다.
환갑을 지나며 물방울은 새로 시작된 시리즈 제목처럼 ‘회귀’를 지향합니다. 새로운 순환을 다시 시작한다는 환갑의 의미처럼, 새롭고 깨끗한 원점으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으로의 작품활동을 하고자 하는 작가의 강한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이렇듯, 김창열 화백의 물방울에는 그의 인생과 정신의 정수가 담겨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하여, 작가가 영롱한 물방울을 세상에 현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실험하고, 도전하고, 수양함으로써 삶을 숭고함의 경지에 이르게 한 결과물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물방울, 작품이 되다
그의 물방울 회화는 시기별로 실험과 변주 과정을 거쳤다. 1974년부터 그는 물방울을 완벽하게 담아낼 ‘지지체’를 찾기 위해 실험을 이어갔다. 모래, 나무, 종이, 신문 등 물질성이 두드러지는 소재를 캔버스로 사용했다. 빛의 반사와 그림자, 충만함과 축축함 등 일종의 ‘물방울 효과’를 실험했다. 1980년대, 작가는 캔버스가 아닌 거친 마대를 사용해 표면의 즉물성卽物性을 강조하고 물방울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날것의 바탕과 그 위에 그린 물방울의 이질감이 강조됐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마대 자체를 여백으로 남긴 이전 작품과 달리 한자의 획이나 색점, 색 면 등을 연상시키는 ‘해체’ 연작을 통해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동양적 이미지와 정서를 화폭에 끌어들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한자를 물방울 회화에 도입한 ‘회귀(Recurrence)’ 연작을 제작하며, 천자문과 〈도덕경〉을 통해 동양 철학의 핵심적 사상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냈다. ‘회귀’ 연작은 “문자와 이미지의 대비를 넘어 음양의 철리와 같은 동양적 원천으로의 회귀”(이일)이자 “글자라는 기억의 장치가 물방울이라는, 곧 사라져버릴 형상과의 미묘한 만남”(오광수)이며, “한문이라는 시각적 경험과 지성의 전통을, 현대적 기록법의 형태적 변수들로 변모시킨”(필리프 시룰니크) 작품으로 호평받는다. 1990년대에 작가는 돌과 유리, 모래, 무쇠, 나무, 물 등을 재료로 물방울 회화를 설치미술로 확장했으며, 2000년대 들어서는 캔버스에 노랑, 파랑, 빨강 등 다양한 색상을 도입하며 또 다른 도약을 시도했다. 김창열 화백은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그림이란 무언가 다른 것, 손으로 만든 타인을 감동시키는 어떤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하지만 그 역시 하나의 정신적 놀이이며 명상 혹은 기도와 같은 행위이다.” 그의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은 작가가 떠난 오늘도 영롱한 빛을 발하며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김재석(갤러리현대 디렉터), “물방울, 그리고 김창열”, 신세계매거진 ISSUE 36(2021.5)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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