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mann
낭만 음악의 끝
2021/04 • ISSUE 35
writerChoi Jeongdong 〈중앙일보〉 기자
중학교 시절, 음악실 칠판 위에는 유명 작곡가들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모두 서양음악의 대가들이었다. 음악실에 갈 때마다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곤 했다. 바흐와 헨델은 구별이 잘 안됐는데, 둘이 비슷한 모양의 가발을 썼기 때문이었다. 길쭉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띤 하이든은 인자해 보였고 모차르트는 눈매가 총명했다. 화난 것 같은 베토벤, 통통한 얼굴에 안경을 쓴 슈베르트도 있었다. 그런데 초상화 중에 슈만이 있었던가? 옛 음악실 풍경을 찬찬히 떠올려봐도 심각한 표정의 낭만 주의자 로베르트 슈만이 거기 있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슈만은 나에게 딱 그만큼의 음악가였다. 없어도 찾게 되지는 않는 작곡가.
음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리톤 한스 호터의 LP 〈Great German Songs〉 뒷면에 슈만의 노래가 실려 있지만, 앞면의 슈베르트만 듣고 음반을 내렸다. 테너 에른스트 해플리거의 음반은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 Op. 48이 메인인데도, 그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릴 때는 맨 마지막 트랙인 베토벤 가곡 ‘멀리 있는 그대에게’만 골라들었다. 교향곡 4번을 가끔 듣는 것은 작곡가보다 지휘자 푸르트벵글러의 연주를 좋아하기 때문이고, 첼로 협주곡도 자클린 뒤프레의 연주가 아니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쯤 되면 슈만을 일부러 따돌리는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관심이 없을 뿐이었다. 세상에는 슈만의 작품 말고도 들을 음악이 많고 시간은 늘 부족하다.
책은 인간 슈만을 면밀히 복원했다. 베일에 싸인 듯 모호하던 사람이 내 곁에서 호흡하듯 생생해졌다. 10대에 누나와 아버 지를 연이어 잃고 표정까지 어둡게 바뀐 소년, 끊임없이 연애 행각을 벌이고 클라라와 결혼하기 위해 법정투쟁까지 벌인 청년, 평생 아내보다 유명한 적이 없던 남편, 스스로 정신병원으로 걸어 들어가 비참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한 매독 환자. 평전에 펼쳐지는 슈만의 삶은 슬프고 불안하고 비극적이어서 읽는 나도 몸이 아팠다. 물론 슈만의 예술에 대해서도 세밀한 지식을 얻었다. 두 가지 다른 자아自我라는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가 무엇인지, 가상의 결사체라는 ‘다윗동맹’은 또 무엇인지. 슈만이 미사곡과 레퀴엠까지 쓴 것은 정말 뜻밖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바리톤 한스 호터의 음반 뒷면을 턴테이블에 올렸다. 그리고 가곡집 ‘리더크라이스’ Op. 39의 ‘달밤 (Mondnacht)’에 바늘을 내렸다. 저자가 압권이라고 했지만 나는 한 번도 귀 기울인적 없는 노래다. 낭랑한 피아노 선율을 타고 밤의 노래가 고요히 흘렀다. 눈을 감았다. 허공으로 둥실 떠오른 내가 날개를 펼치고 대지와 하늘이 맞닿은 곳으로 날아가는 환상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