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에서는 밀라노 랜드마크로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아르코 델라 파체Arco della Pace가 내려다보이고, 다른 한쪽으로는 한적한 셈피오네 공원(Parco Sempione)이 마주하는 곳. 클라이언트 부부는 굽은 삼각형 모양의 플랫 아이언 형태 건물을 구입해 주거지로 개조하려 했다. 내부는 크게 지상 1층, 2층, 다락방으로 나뉜다. “보통 건축가라면 1층 공적 공간, 2층 사적 공간으로 구분한 뒤 고객의 요구에 맞춰 적절한 디자인을 가미하겠죠. 하지만 저는 모든 공간이 달랐으면 했어요. 각 공간이 사적 또는 공적 공간이 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변화하며 다른 공간과 완벽히 단절되어 기능할 수 있게 말이죠.” 페데리카의 머릿속에는 모든 공간이 하나의 집과 같았다. 그는 각 공간에 클래식, 미니멀, 인더스트리얼, 보태니컬 등 다양한 인테리어 스타일을 적용하고 최소한 1개 이상의 실험과 재미 요소를 심기로 했다. “제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은 오래된 건축물에 남아 있는 ‘시간’이라는 화두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편리에 따라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에요. 고택이 지닌 시간의 감각은 어떤 스타일보다 강한 인상과 풍부한 스토리를 남기는 훌륭한 건축 도구죠. 시간이 남긴 스토리만으로 변별력 있는 장소가 되고, 건축으로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건축가는 현대적으로 개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되 가구, 소품, 재료 등은 시간의 정서를 품은 것을 선택했다. 기존 건축물에서 드러난 빛바랜 천장 무늬와 컨템퍼러리 가구를 배치해 과거와 현재 시간대를 조합한 1층 대형 거실, 오래된 폐목재를 천장 지지대로 복원한 키친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 건축가가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한 뼘 공간까지 낭비하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었다. 붙박이 수납장을 만들기 위해 막힌 벽을 뚫고 천장을 부쉈다. 어둡고 먼지 가득했던 다락방에는 커다란 지붕 창문을 달아 개방감을 더하는 동시에 채광을 살렸다. 여기에 모로코에서 구한 격자 타일을 이용해 만든 어린이 전용 수영장, 라운지 스타일 체어와 테이블을 갖춘 홈 바를 만들어 다락방을 집 안에서 가장 쾌적하고 즐거운 공유 공간으로 변신시켰다. 두 자녀가 수영장에서 노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유롭게 칵테일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가족 놀이터가 된 것이다. “각 공간을 독창적으로 탈바꿈시킨 다음 불협화음 같은 공간을 어떻게 하나로 묶을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개성이란 적절한 조화가 뒷받침되어야 돋보이는 법이거든요. 조각적 계단이 답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현관문을 열자마자 성큼 등장하는 나선형 계단은 이 집을 관통하는 중심축이다. 복도 전체를 가득 채우며 하늘로 상승하는 계단은 매끈한 질감과 화이트 컬러 때문에 비현실적 느낌을 준다. 이는 개성 강한 공간 대신 계단으로 시선을 모으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건축 장치다. 리듬감 있게 소용돌이치는 나선형 계단은 1층과 2층, 다락방까지 하나로 연결하며 수직적 공간을 수평적으로 풀어낸다.
스타일, 디자인, 컬러, 방식 등이 다른 각 공간은 아치문 또는 유리문으로 자연스럽게 차단되고 연결된다. 부부는 여행을 하듯 매시간 다른 공간에서 보낸다. 부부가 특별히 아끼는 공간은 주방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철, 구리 등 산업 소재와 공장이나 작업실에서 사용했을 법한 가구를 이용해 인더스트리얼 감성을 강조했다. 디자인 키친 가구 전문 아비미스Abimis에서 제작한 아일랜드 키친 가구는 군더더기 없는 배경의 스타카토 역할을 한다. 규모 있는 유명 레스토랑의 주방을 방불케 하는 모습. “가족은 물론 손님과 동료에게 맛있는 음식 대접하기를 즐기는 부부는 주방과 다이닝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았어요. 보통 주방은 사적 공간으로 취급해 동선에서 분리하거나 숨기고 싶어 하는데, 부부는 거실만큼 돋보이길 원했죠. 코로나 사태로 청소, 소독, 세척 작업을 자주 하게 되면서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가 각광받고 있어요. 그래서 자칫 차갑고 건조하게 느껴지기 쉬운 공간이지만 커다란 프렌치 스타일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볕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