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으로 그리는 여행
봄이 왔으니 세 도시로 떠난다.
2021/05 • ISSUE 36
editorWang Minah writer Jeon Eunkyung 월간 <디자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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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유원지 인왕산(스튜디오 텍스처 온 텍스처), 디스이즈낫어처치, 디앤디파트먼트 제주(Nils Clauss), 무브먼트랩 부산, 베르크로스터리, 소가대문, 슬로보트, 와온, 지평집(조병수건축연구소, 박영태), 호텔 안테룸 서울(Nacasa & Partners), F1963“여행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것이다.”
프랑스 작가 아나톨 프랑스가 말했다. 코로나19와 추운 겨울을 지나며 우리의 여행 본능이 임계치에 다다를 무렵, 봄이 왔다.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꿀 때가 온 것이다. 꼭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스니커즈 신고 1박 2일간 가볍게 떠나는 도시 여행자를 위해 서울, 부산, 제주의 디자인 스폿을 소개한다. 내가 머무는 곳의 건축물과 디자인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제주, 관광보다는 천천히 머무는 여행
아름다운 디자인 스폿도 많지만, 사실 그보다는 제주의 자연이 더 반짝인다.
1. 슬로보트
자연에 녹아드는 디자인
지난해 7월 화제를 모으며 문을 연 디앤디파트먼트 제주는 공항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탑동에 위치한다. 롱 라이프 디자인을 주창한 나가오카 겐메이의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점을 선보인 아라리오는 몇 년 전부터 제주 구도심의 쇠락한 극장과 모텔 등을 갤러리로 탈바꿈시키는 중이었다. 2014년 영화관이던 건물을 뮤지엄으로 바꾸며 탑동의 문화적 지형도를 차근차근 구축해온 것. 그중 가장 최근작인 디앤디파트먼트 제주는 게스트룸인 d룸, d식당, 상점 등으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의 콘셉트를 보여주는 쇼룸이자 제주도의 롱 라이프 디자인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지역 활동이라 할 만하다. 건축 레노베이션과 룸 디자인은 블루보틀 삼청점을 디자인한 스키마타 건축이 맡았고, 건물 전체를 가득 채운 화분과 조경은 파도식물의 솜씨다. d식당에서는 제철 식재료로 제주의 식문화를 새롭게 해석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제주의 자연을 따라 가는 코스
아트살롱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 가면 감귤 창고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디자인, 패션, 예술을 전공한 이들이 모인 크리에이티브 집단 워크샵엑스가 운영하는 편집매장이다. 주로 패션과 아트 관련 프로젝트를 선보이는데, 다양한 굿즈와 포스터 등을 만날 수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로컬 커피 브랜드 크래커스 카페도 꼭 들러봐야 한다.
슬로보트
부산, 지역 문화를 만드는 로컬 디자인 스폿
부산에 새로운 파도가 일고 있다. 그 중심에 디자인과 크리에이터들이 있다.
1. 무브먼트랩 부산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생태계가 구축되고 있다.
서울에 편중되었던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지역에 눈을 뜨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것."
디자인이 만드는 도시의 새로운 장면
최근 부산에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생태계가 구축되고 있다. 서울에 편중되었던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지역에 눈을 뜨며 부산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 해운대 달맞이길에 위치한 무브먼트랩 부산은 다양한 리빙 브랜드를 소개하고, 시즌마다 콘셉트가 다른 전시로 해당 브랜드의 가치를 보여주는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 팝업 스토어다. 또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브랜드와 작가를 소개하는 ‘로컬 무브먼트’도 전개한다. 건물 1, 2층은 브랜드 전시관, 3층은 전시관으로 사용하며 도슨트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오랫동안 방치된 건물을 레노베이션하면서 파사드에 유선형 창문을 내 전망도 좋다. 수영구로 넘어가면 F1963이 있다. 이곳은 고려제강 와이어로프 생산 공장을 개조해 조성한 복합 문화 공간이다. 50여 년 동안 사용한 공장 건물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 변신한 것은 2016년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하면서부터다. 건축가 조병수가 레노베이션을 맡아 공장 전면의 벽을 허물고 유리와 익스팬디드 메탈을 사용해 모던한 분위기로 탈바꿈시켰다.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테라로사, 전통 발효주 브랜드 복순도가, 국제갤러리 등이 입점했으며 지난 4월에는 현대자동차 모터스튜디오 부산이 새롭게 문을 열며 다시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부산은 알고 보니 커피의 도시였다. 좋은 로스터리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추천하는 곳이 있다.
부산의 색깔이 묻어나는 코스
지평집
부산에서 차를 타고 30분쯤 달리면 거제도 가조도에 위치한 지평집에 다다른다. 지평집은 ‘지평선 아래로 스며드는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건축가 조병수가 설계한 곳으로, 위로 솟지 않고 땅으로 파고들어 주변 지형과 모나지 않게 어우러진 스테이다. 주변에 편의 시설도 없고 객실에서는 큰 창을 통해 오로지 바다 쪽으로 향한 풍경만 보인다. 고독하게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기기 위한 장소다.
마틴커피로스터스: 에크뤼
7. 지평집
서울, 디자인 스폿을 업데이트할 시간
늘 무엇이든 생기고 사라지는 서울. 이렇게 또 많은 것이 생겼으니 따라가본다.
1. 대충유원지 인왕산
"새롭게 생기는 멋진 공간을 다 쫓아다니지 못할 정도다. 오래 참고 있던 서울의 다양한 모습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지금 가장 민첩한 디자인의 움직임
재미있는 도시 서울, 새롭게 생기는 멋진 공간을 다 쫓아다니지 못할 정도다. 오랫동안 참고 있던 서울의 다양한 모습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고 해야 할까. 성북구 삼선동에는 수상한 교회, 디스이즈낫어처치This is not a church가 있다. 교회 간판도 그대로이고 교회가 분명한 듯한데, 이것은 교회가 아니라고 한다. 1980년대 한국식 중소 교회의 외형을 한 (구)명성교회, 디스이즈낫어처치는 이제 예술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곳은 공간·설치·전시 디자인에 특화된 아티스트 그룹 아워레이보의 새로운 공간으로 기존 명성교회가 새로운 성전으로 이사한 뒤 건물의 독특한 구조에 반해 매입하게 되었다고. 강대상, 스테인드글라스 등 성스러운 요소를 그대로 살렸으며, 교회 의자를 재활용해 만든 계단의 센스가 돋보인다. 이곳은 사무실, 전시장, 공연장, 레지던스를 겸하는 다목적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용산의 꽃술은 제로랩, 원투차차차 등 지금 국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지역에서 나고 자란 재료로 만든 차와 술을 파는 곳이다. 한마디로 ‘디자인 바bar’라 정의할 수 있다. 꽃술이란 이름에는 꽃술과 모인다는 의미의 한자 ‘蘂(꽃술 예, 모일 전)’를 붙여 많은 사람과 물건이 모이고, 가능성이 피어난다는 의미를 담았다. 내외부 공간은 과거 용도를 짐작할 수 있도록 레노베이션했다.
4. 호텔 안테룸 서울
아티스트들의 교차점이 되는 도시, 서울
서촌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며 커피와 술을 마실 수 있는 멋진 곳이 생겼다. 대충유원지 연남에 이어 두 번째로 문을 연 대충유원지 인왕산이다. ‘대충’은 ‘큰 벌레(大蟲)’라는 의미로 조선 시대에는 호랑이를 일컫는 말이었다. 스튜디오 fnt가 디자인한 그래픽 모티프는 곧 호랑이의 줄무늬이기도 하다. 하지만 치열함의 반대말인 그 ‘대충’도 맞다. ‘유원지’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대충 벌어 대충 먹고살 장소’로 만들겠다는 윤한열 대표의 희망도 담겨 있다. 심지어 건물 이름도 ‘무목적빌딩’이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서면 결코 대충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섬세하게 조율한 공간·가구 디자인은 푸하하하 프렌즈, 스튜디오 씨오엠 등의 솜씨다. 예술과 문화를 중심으로 흥미로운 기획을 선보이는 호텔 안테룸 서울이 가로수길에 문을 열었다. 일본 아티스트 고헤이 나와가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플랫폼 샌드위치가 아트 디렉팅을 맡았으며, 호텔 곳곳에서 한국과 일본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감상할 수 있다. 지하에는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리는 갤러리 9.5가, 1층에는 임정식 셰프의 베트남 다이닝 아이뽀유가 있다. 아트 북 스토어 겸 바가 위치한 루프톱은 한강과 남산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망을 자랑한다. 기획·설계 및 운영은 클라스카 호텔 안테룸 교토로 유명한 UDS가 맡았다. 빌드웰러는 표준화된 부품을 다양한 구성으로 조합하는 모듈러 시스템을 통해 공간을 만드는 가구 브랜드이자 공간 솔루션 회사다. 자신만의 공간을 구성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모듈러 가구에 대한 수요도 늘어났고, 빌드웰러도 맞춤 제작을 비롯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디스플레이 시스템은 대여도 가능해 전시나 이벤트용 가벽, 부스 설치부터 테이블, 행어 등의 집기류를 합리적인 가격대에 이용할 수 있다.
지금 디자인의 흐름을 읽는 코스
오드투스윗
‘악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 ‘운율을 지닌 서정시’를 뜻하는 그리스어 ‘oide’에서 따온 이름. 달콤함에 대한 찬가로, 다양한 과자에 대한 이야기를 오감으로 느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다. 오드투스윗의 디저트를 담아내는 플레이트와 커틀러리는 모두 오르에르 아카이브 팀에서 큐레이팅했다.
소가대문
5. 소가대문
4. 디앤디파트먼트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