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 그것도 가장 트렌디한 패션과 대중문화 영역의 중심에서 오히려 다니엘 아샴은 끝없이 순환하며 흘러가는 시간의 덧없음을 이야기한다. 남미 이스터섬의 고대 모아이 석상을 본 다니엘 아샴은 “저 거대한 석상을 그 옛날 누가, 어떻게, 그리고 왜 만들었을까”라고 질문하게 되었고, 결국 우리가 사는 현재도 언젠가 과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는 그의 미학적 세계관인 ‘허구의 고고학(the fictional archeology)’을 구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아샴은 구형 카메라, 마이크, 카세트 플레이어, 공중전화, 영사기 같은, 아직 존재하지만 점점 사용하지 않게 된 물건을 석고로 만들어, 검은 화산재 아래 묻혀 있던 물건을 발견해낸 현장처럼 연출했다. 마치 긴 시간이 흘러 화석화된 모습으로 만들어 현재를 과거화한 것이다. 2018년에 열린 개인전 제목 ‘3018’에 이어 2020년 열린 개인전 제목 역시 ‘Paris 3020’이라고 지은 이유는 관람객을 1천 년이 지난 미래의 시간대로 소환해 결국 과거가 되어버린 현재를 인지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반대로 아샴은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궁전이나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 신전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그의 작품 ‘Blue Calcite Eroded Moses’(2019)는 미켈란젤로가 대리석으로 만든 모세상을 닮았으면서도, 방해석과 석영을 비롯한 광물질을 사용해 머리, 옆구리, 팔, 무릎 등 인체 곳곳이 침식된 모습을 보여준다. 또 ‘Quartz Eroded Ara Pacis’ 역시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건축 부조 ‘아라 파시스 오귀스트 황제의 행렬’ 일부를 차용하되, 원본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제작한 것이 막 출토된 것처럼 연출했다.
이러한 접근은 지난해 파리의 국립 기메 동양 박물관에서 열린 개인전 에서 집약적으로 보여줬다. 아시아 앤티크가 주를 이루는 이곳에서 현대미술가를 초청하는 것은 매우 흔치 않은 일이었고, 아샴은 이 특별한 기회를 통해 평소 접하기 어려운 불상과 석등 같은 동양 유물을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었다. 뉴욕의 작업실에서는 아샴을 비롯한 스태프 전원이 박물관의 보존 연구원같이 흰 가운을 입고 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때로는 무언가를 발굴하려는 고고학자처럼 리서치하고, 때로는 고대 연금술사처럼 광물질을 다루는 다니엘 아샴. 그가 진정으로 바라는 예술가의 새로운 모델은 시공간은 물론, 다양한 문화를 믹스하는 DJ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