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스코프(와이드 스크린) 영화와 빌보드(광고판)에서 영감을 받은 이 구도의 특징은 단색의 대형 화면에 ‘크롭-클로즈업crop-close up’ 방식을 활용해 인물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림에서 마치 광고 사진이나 영화의 클로즈업 장면과 유사한 효과가 나타나는데, 덕분에 관객은 주인공에게 더욱 몰입한 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게다가 공간감이 제거된 강렬한 단색 배경은 감각적으로 표현된 인물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면서 대상 이면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본질적인 무엇인가를 유추하게 만든다. 전통적인 초상화가 세밀한 묘사를 통해 주인공이 존재하는 시대와 상황을 설명하는 방식이라면, 카츠의 초상화는 주인공의 절제된 모습만을 강렬하게 부각시킴으로써 그가 존재하는 순간과 상황, 사회로 시공간을 확장한다. 최소한의 정보로 가장 풍부한 인간성을 발현하는 이 구조는 카츠가 작업 초기부터 고수해온 방식으로 전통적인 인물화를 넘어서는 ‘혁신’적 화풍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카츠 회화의 독창성이 처음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평가들은 전시장에 등장한 그의 작품을 보고 ‘혁신’보다는 ‘낡음’과 ‘고루함’을 먼저 떠올렸다. 철학적 깊이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1950~60년대는 추상표현주의의 시대였고, 새로운 예술 실험과 정치적 메시지는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알렉스 카츠는 비판에 주눅 들지 않았고 보란 듯 자신만의 순수 회화를 밀고 나갔다. 오히려 그는 추상표현주의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거대한 캔버스를 가져와 그 위에 추상화가 아닌 구상화, 즉 인물화를 배치했다. 그는 특유의 자신감과 끈기로 예술계의 편견을 하나씩 극복해갔다. 결국 1980~90년대에 복귀한 구상화 붐과 더불어 젊은 세대의 예술가들은 새로운 감상으로 카츠를 만나기 시작했다. 추상표현주의 작품에 대한 옹호로 유명했던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조차 2005년 <뉴 크리테리언The New Criterion>의 기사에서 “실제로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말하고자 한다”고 언급했을 만큼, 알렉스 카츠는 구체적 대상을 거대한 캔버스에 그린 첫 번째 화가로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선점한다.
우리는 얼굴과 스타일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알렉스 카츠는 회화에서 유독 스타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기자에게, 사람의 얼굴에는 그가 살아온 삶이 배어 있으며, 스타일에서 그 사람의 개성이 표현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알렉스 카츠의 작품을 오래 보아온 우리도 거기에 배어 있는 화가의 삶의 궤적과 스타일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화가, 시인, 무용가, 패션모델 등의 초상은 모두 뉴욕에서 작가가 예술적 교감을 나누는 동료들이다. 또한 피크닉, 칵테일 파티, 숲과 해변이 담긴 풍경화들은 그가 매년 여름을 보내는 미국 메인주의 자연 풍광이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내 에이다Ada를 모델로 삼아 무려 250점 이상의 작품을 완성한 로맨티스트적 면모도 작가가 그림으로 보여준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분이다. 이 예술가는 이렇게 자신의 삶을 화폭으로 옮겨옴으로써 사소하지만 지속적인 방식으로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전달해왔다. 그가 포착해낸 삶의 장면들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는 오직 실존하는 현재의 순간만이 찬란하게 빛난다.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그가 그림에만 매진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아마 알렉스 카츠가 추상과 실험, 정치와 자본의 메시지보다 ‘그리는 몸’의 힘을 믿는 삶의 태도를 고수했기 때문일 것이다. 늘 같은 에너지로 그리기 위해 매일 수영과 조깅을 하며, 50년 넘게 같은 장소에서 주말도 없이 붓을 드는 집념의 예술가. 그림에 대한 그의 변치 않는 열정은 작가를 매 순간 깨어 있게 하는, 스타일리시한 감각을 유지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카츠의 작품은 50년 전 그림도 마치 어제 그린 것처럼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