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 나이(Elly Ney, 1882~1968)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소나타(Op. 111)를 듣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의 왼손이 저음 건반 위에서 떨자 피아노가 “크르르” 울었다. 숲속에 몸을 숨긴 채 서늘한 기운을 내뿜는 호랑이를 만난 것 같았다. 여성 피아니스트로 이런 오라를 지닌 연주자는 러시아 출신 마리아 유디나 이후 처음이다. 나는 왜 지금까지 그녀를 만나지 못했을까. 20세기의 위대한 피아니스트를 망라한 영상물 <The Art of Piano>에도 그의 흔적은 없다. 인터넷 공간에 흩어져 있는 자료를 확인하다 보니 그녀의 발자국이 흐릿하게 지워진 이유를 알겠다. ‘나치의 성녀聖女’. 독일 여성 피아니스트 엘리 나이에게 씌워진 굴레다.
20세기 초반 그녀는 탁월한 베토벤 해석자로 이름을 날렸다. 연주는 열정적이고 강인한 기풍을 보였다. 큰 체구와 두꺼운 손가락에서 나오는 힘은 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당대 독일에서 그녀의 파워에 비견될 사람은 ‘건반의 사자’라 불리던 빌헬름 박하우스 정도였다고 한다.
히틀러가 등장하자 엘리 나이는 나치당에 가입한다. 문화 교육 캠프에 참가하고 독일소녀단 명예 회원이 된다. ‘나의 총통Mein Führer’에게 숭배의 편지를 쓰고, 공연 무대에 올라 히틀러의 저서에서 뽑은 글을 낭독했다. 교편을 잡았던 잘츠부르크에서는 베토벤 흉상을 향해 나치식 경례를 했다. 히틀러가 가장 사랑하는 피아니스트였던 것도 당연하다. 그녀가 나치 추종자가 된 것은 베토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베토벤이라는 종교의 사제를 자임한 그녀는 히틀러가 베토벤의 게르만 정신을 충실히 구현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치를 지지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엘리 나이는 독일군 치어리더였다. 1940년 11월 14일, 나치 독일은 영국의 군수산업 도시 코번트리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다. 수백 대의 폭격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오르는 순간, 베를린 국영방송국에서는 나이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전파를 탔다. 독일 공군은 그녀의 베토벤 연주를 응원가 삼아 수십만 인구의 도시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날 독일의 코번트리 대공습은 ‘작전명 월광 소나타’라 불렸다. 히틀러의 제3제국에서는 베토벤의 음악도 선전 도구에 불과했다. 영화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이 사실을 바탕으로 영화 <지옥의 묵시록> 속 유명한 헬기 편대 공습 장면을 구상한 게 아닐까. 헬기에서 고성능 스피커로 바그너의 ‘발퀴레의 기행’을 울리며 평화로운 베트남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장면 말이다.
엘리 나이의 ‘월광’ 응원은 또 한 명의 여성 피아니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나이와 같은 시대를 산 영국인 마이라 헤스(Myra Hess, 1890~1965)다.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떠날 수도 있었으나 그는 런던 도심 자신의 집에서 지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독일의 공습에 시달리는 시민을 위해 연주회를 열기로 했다. 전쟁이 발발한 후 모든 연주회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정부의 허락을 얻어 내셔널 갤러리를 사용했다. 그림과 조각을 치운 공간에서 헤스는 매일 연주회를 이어나갔다. 기록 영상을 보면 군인이 옆에 앉아 악보를 넘겨준다. 때론 연주자와 청중이 함께 방공호로 대피하기도 했지만, 1939년 10월 10일 시작된 연주회는 런던의 암흑기를 밝히며 종전 이듬해인 1946년까지 계속됐다. 1천6백98회나 진행된 연주회에서 82만4천 명이 음악을 감상했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유명했던 독일과 영국의 두 여성 피아니스트는 이렇게 제2차 세계대전의 긴 터널을 통과했다.
독일이 패하자 엘리 나이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베토벤의 고향 본에서는 그녀의 공연을 금지했고, 메이저 음반사들도 외면했다. 1965년 나이는 함부르크에서 베토벤의 마지막 소나타를 녹음했다. 83세의 노인이 되었지만 정확한 타건과 깊은 울림으로 최고의 연주를 남겼다. 레코드는 생소한 마이너 음반사 몇 군데에서 나왔는데, 내가 듣고 소름이 돋은 음반은 독일의 오이로파Europa에서 발매한 LP였다.
마이라 헤스는 왜 독일의 폭탄 세례 속에서 연주회를 이어나갔을까. 그는 음악이 고난에 처한 인간에게 도덕적 힘을 줄 수 있다고 믿었고, 그런 믿음으로 음악에 자신의 삶을 걸었다.
그러면 엘리 나이에게 음악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연주가 나치의 선전 도구로 활용되는 걸 알았을까. 그랬다 하더라도, 오늘 그의 연주를 들으면 베토벤과 나만 남는다. ‘나치의 성녀’의 연주에서는 베토벤의 절대 음악이 오롯이 떠오를 뿐 히틀러는 흔적도 없다. 베토벤은 상처받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