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채소로 차린 가을 식탁
가을은 두 번째 수확이 이루어지는 계절이다.
2021/11 • ISSUE 41
editor Kim Joohye 객원 에디터
photographer Yang Woosung
writer Koh Young 음식 문헌 연구가illustrator Hur Heekyung
advisor Cho Janghyun ‘치즈플로’ 셰프
©Getty Images
한데 일상의 감각, 국어사전의 정의를 빌리면 뿌리채소란 뿌리뿐만 아니라 땅 아래서 자라고 양분이 축적된 땅속줄기를 먹는 채소까지 두루 포괄한다. 이 설명에 따르면 덩이줄기인 감자 및 돼지감자, 뿌리줄기[근경根莖]인 연근 등도 다 뿌리채소에 들어간다. 채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먹을거리가 아니다. 채소가 없으면 사람은 살아남을 수 없다. 동양의 각기병, 서양의 괴혈병이 떠오른다. 곡물이 있다고 해도 채소를 통해 필수적인 영양소를 공급받지 못하면 사람은 온전한 일상, 건강한 삶을 누리기 힘들다. 김치, 장아찌, 생채, 샐러드, 나물, 나물국, 쌈 없는 밥상은 떠올리기도 싫다. 이뿐만이 아니다. 채소는 곡물의 빈자리를 메꾸는 역할도 해왔다. 고구마, 마, 칡, 감자에는 ‘구황救荒’이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뿌리채소도감
건강한 뿌리채소가 자라는 곳
김의준고구마
30여 년 전 고향인 전라남도 영암으로 귀농한 김의준 농부는 황토밭에서 친환경 고구마를 생산한다.
고구마 농사법 이름을 건 고구마를 선보이는 만큼 육묘부터 생산, 수확까지 모든 과정에 자신만의 원칙을 세워 지킨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땅심 관리. 화학비료 대신 완숙 퇴비를 사용해 고구마가 자라기 적합한 토양 환경을 만들고 재배 후에는 석회를 뿌려 연작 장해를 예방한다. 본격적으로 파종을 시작하는 3월에는 직접 육묘한 묘 60%, 엄선한 육묘장의 묘 40%를 심는다. 공통점은 위 대에서 난 묘를 사용한다는 것. 다 자란 고구마는 9월부터 첫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수확한다.
생산자의 노하우 김의준 농부는 고구마의 섬유질이 뭉친 심 부분이 생기는 원인으로 수분 부족을 꼽는다. 겨울철 땅을 갈 때 볏짚을 함께 갈면 흙 사이에 들어 간 볏짚을 통해 땅이 숨을 쉬고 여름철에 비가 부족해도 수분을 유지할 수 있다. 그 덕분인지 심이 뭉친 고구마가 적다. 또 영양분을 빼앗아가는 잡초 제거에 제초제 없이 직접 뽑는 수고를 들인다.
맛이 좋아지는 숙성 과정 수확한 고구마는 뜨거운 증기로 고구마 겉을 살짝 익힘으로써 수확 중 발생한 작은 상처들을 아물게 한다. 이러한 ‘큐어링’ 과정을 통해 저장성을 높인다. 또 최소 3개월 이상의 숙성 과정을 거친다. 수분이 날아가 당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저장성도 향상되는 시간이다. 숙성을 마치면 ‘황금호박고구마’라 부르는 속이 샛노란 고구마가 된다.
고구마 보관 방법 고구마가 가장 좋아하는 온도인 12~14°C를 유지해주는 것이 좋다. 냉해를 입으면 쓴맛이 올라오므로 냉장 보관은 금물이다. 많은 양을 보관할 경우 상자에 고구마와 종이를 번갈아 층층이 쌓아둔다. 이렇게 하면 부딪혀서 상처가 나거나 수분이 날아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빈스팜연근
귀농 7년 차인 김미애, 박정호 농부는 경상북도 김천의 모래땅에서 자연주의 농법으로 키운 GAP 인증 연근을 재배한다.
연근 농사법 연근은 100일 작물로 심은 지3개월이면 수확기가 된다. 하지만 크기만큼 속이 차는 것이 중요한 법. 이들은 건강한 토양 상태를 위해 잘 발효된 우분 퇴비와 유기질 비료를 사용하고, 제초제 대신 직접 잡초를 뽑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 10월이 되어 연잎이 지면 매일 판매할 만큼만 수확하는데 땅속에 신선하게 보관된 연근은 3월까지 속이 알차다. 이후 땅이 녹으면 수확하지 않는 것도 싱싱한 연근 판매를 위한 원칙이다.
생산자의 노하우 논에 물을 빼고 굴착기로 연을 걷어낸 다음 쇠스랑으로 캐는 수확 과정은 품질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조금이라도 상처가 나면 불량품이 되기 때문. 박정호 농부는 연근 촉을 보고 연근이 누워 있는 방향을 파악해 상처 없이 캐내는 노하우를 발휘한다.
품질 좋은 연근 선별 김미애 농부는 구멍이 뚫리지 않게 연근 마디 사이의 중간을 정확히 자르는 작업을 맡아 한다. 여러 마디가 이어진 연근의 원순 중 1~3번 마디만 잘라 판매하고 섬유질이 부족한 나머지는 폐기하는 것.
연근 보관 방법 연근 구멍에 물이 닿으면 고유의 영양 성분이 빠져나가므로 먹기 직전 세척하고, 자르고 남은 것은 슬라이스해 냉동 보관한다.
산세로자연영농조합법인
해발 600~700m의 고랭지인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에서 유기 밭농사를 짓는 이들이 모여 비트를 비롯한 쌈채류를 생산한다.
비트 농사법 비트는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 농가에 따라 봄이나 여름에 파종하고 세 달 정도 길러 각각 7월, 10월에 수확한다. 둔내면에서는 가을에 수확하는 비트가 더 달고 맛있다고 한다.
생산자의 노하우 각종 해충이나 병해를 예방하는 데 유기농 자재만 사용하고, 화학비료 대신 매년 충분히 숙성된 퇴비를 토양에 투입해 토질을 가꾼다. 또 초겨울부터 이른 봄까지는 호밀 같은 녹비작물을 재배해 지력을 향상시킨다. 두 가지 이상의 작물을 돌려가며 농사짓는 윤작을 철저히 해서 토양 내 다양한 미생물을 확보하는 것도 건강한 비트를 재배하는 노하우다.
비트 보관 방법 비트는 신문지로 감싸고 지퍼 백에 담아 냉장 보관하면 수분이 날아가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