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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ulture

엘름그린 & 드라그셋

작품 속 신체와 공간

2022/02 • ISSUE 44

사회에서 우리가 종종 마주하는 인물과 부대끼는 사회적 관념에 주목한 듀오 아티스트 엘름그린 & 드라그셋은 그들만의 방식대로 문제를 제기하고 풍자하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그렇게 우리가 사는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 이들의 작품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자 일종의 고발인 셈이다.

What’s Left? 2021(Silicone, clothing, wire rope, balancing pole) ©The Artists, Photo Elmar Vestner
매장에서 만나요

신체, 공간, 상황으로 직조한 이미지적 이야기

베를린 동남부에 위치한 엘름그린 &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 스튜디오에는 수개월째 실제 사람과 진배없는 젊은 남성 조각 작품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외줄타기를 하다가 떨어진 이 청년은 한 손에 긴 균형 봉을 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타던 줄을 가까스로 움켜쥐고 있다. 줄에 진동이 가해질 때마다 아무리 봐도 진짜 같은 가짜 살결이 떨리고 체모가 하늘거린다. 그가 입은 반소매 상의에는 작품 제목이 프린트돼 있다. ‘WHAT’S LEFT?’ 믿었던 이들조차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파국의 연쇄 속에서 언제까지 우리는 이 끄나풀 같은 희망을 바르르 떨며 붙들고 있어야 할까? 그렇다고 손을 놓으면 저 바닥에 처박힐 때 입을 충격은 어느 정도일까? 이 조각 작품은 밀라노 폰다치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 설립 이래 최대 개인전이 될 듀오의 전시 (2022. 3. 31~8. 22)에서 첫선을 보일 작품이다.

엘름그린& 드라그셋 스튜디오 건물은 1924년에 지은 양수 시설로 천장 높이가 12m에 달하며 양 외벽을 둘러 높이가 비슷한 수직 유리창이 줄줄이 나 있다. 국가보호기념물로도 지정된 워낙 특이한 건물이다 보니 낮이건 밤이건 울타리 너머로 행인들이 기웃거린다. 하루는 주변 사정에 참견을 많이 하는 독일인답게 이웃 중 누군가가 스튜디오를 경찰에 신고했다. 건물 안에서 어떤 이가 목을 맸다며. 또 하루는 한 쌍의 젊은이가 대문 앞을 서성이다가 스튜디오에서 나오는 이를 붙잡고 물었다. 여기가 혹시 무용 학원이냐고. 이렇듯 듀오의 작품과 전시에서는 매번 주어진 조건을 전복하는 특정한 신체와 공간, 상황이 제시되고 관객은 끊임없이 각 요소 간의 맥락 속에서 연결 고리를 맺고 끊어본다. 벌써 27년째 이어온 두 사람의 협업은 거의 매일같이 나눈 수다, 대화, 논의에서 솎아낸 ‘이미지적 이야기’의 어리둥절하고 그럴싸한 뭉텅이들 같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이렇게 정리한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배경의 공간적·시간적 상황은 어떠한지, 그리고 인물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순서를 뒤바꿨다. 우리가 먼저 이미지를 제시하면관객이 그 이미지를 토대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식이다.” 이렇게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을 같이 들여다봤다.

"엘름그린&드라그셋의 작품과 전시에서는 매번 주어진 조건을 전복하는 특정한 신체와 공간, 상황이 제시되고 관객은 끊임없이 각 요소 간의 맥락 속에서 연결 고리를 맺고 끊어본다."

Death of a Collector 2009(Swimming pool, silicone ﬁ gure, Rolex watch, pack of Marlboro cigarettes, clothing, shoes, 100×600×200cm)
©Colección Helga de Alvear, Madrid/Cáceres, Photo Anders Sune Berg
매장에서 만나요

He (Black) 2013(Installation view, Aéroport Mille Plateaux, PLATEAU, Samsung Museum of Art, Seoul, 2015) Photo Sang Tae Kim/PLATEAU, Samsung Museum of Art, Seoul, Korea

The Screen 2021(Bronze, lacquer, light-box display, 225×145×40cm) Photo Elmar Vestner

"우리는 균질화된 전시 공간을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전환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이를 통해 관객은 본래 정체성을 위장시킨 새로운 조건과 상황에서 작품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

Photo Elmar Vestner

<ARTISTPROFILE>

엘름그린 & 드라그셋Elmgreen & Dragset

1995년부터 함께 작업을 진행해온 미카엘 엘름그린(Michael Elmgreen, 1961~)과 잉가 드라그셋(Ingar Dragset, 1969~)은 냉소적인 유머와 철학이 공존하는 작품을 통해 다채로운 사회·정치적 담론을 형성해왔다. 이들의 작업은 건축, 설치, 조각, 퍼포먼스 등 전 장르를 관통하며 현대사회에 대한 화두를 제기하는 동시에 우리가 대면한 세계의 고착화된 관념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고발한다. 미국 댈러스의 나셔 조각 센터Nasher Sculpture Center(2019), 영국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Whitechapel Gallery(2018), 미국 뉴욕 플래그 아트 파운데이션The Flag Art Foundation(2016), 베이징 UCCA(2016) 등 전 세계 유수의 주요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해왔다. 2009년 개최된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북유럽과 덴마크를 대표해 국가관전 〈The Collectors〉를 큐레이팅하며 주목받은 바 있다. 3월 31일부터는 밀라노의 폰다치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에서 대규모 개인전 〈Useless Bodies?〉가 진행될 예정이다.

여러 조각 및 설치 작품이 신체라는 주제를 공통으로 다루고 있다. 직접적으로 신체를 묘사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신체의 개념을 전제하기도 한다. 왜 신체인가?

신체는 우리가 첫 만남에서 상대방에게 어떻게 인식될지 결정짓는다. 젠더, 나이, 인종 등은 모두 우리의 겉모습을 보고 읽을 수 있는 요소다. 신체적 경험은 부분적으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기도 한다. 19세기에 신체가 생산을 위한 주요 동인이었다면 20세기에는 소비의 주체에 더욱 가까워졌다. 오늘날 신체는 대형 테크 기업이 판매하는 우리의 신체적 특징에 연계된 무수한 데이터와 더불어 그 자체로 상품이 됐다.

곧 폰다치오네 프라다에서 오픈할 개인전 제목이 〈Useless Bodies?〉다. 전시 작품은 광범위한 시간대를 다루는데 재단에서 소장 중인 고대 조각품부터 현대의 노동력, 미래 로봇 기술 등을 포괄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신체의 개념을 전반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것일까?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 작품과 신작이 한데 어우러지며, 노동 시장과 집, 여가 등과 관련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신체의 지위 및 상태에 관해 탐구한다. 그리고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바탕으로 긴급한 질문을 던진다. 신체가 관여하고 참여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배제하는 각종 스크린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면, 그리고 신체가 공간을 차지하기만 하는 장애 요소로 전락하거나 현재의 팬데믹 상황처럼 그저 위협적 요인이 되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렘 콜하스가 이끄는 건축 사무소 OMA가 개축한 폰다치오네 프라다는 여러 건물이 하나의 단지를 이루는 동시에 각 건물만의 특색이 도드라진다. 재단 설립 이후 최초로 거의 모든 건물을 사용하는 대형 개인전이 될 예정인데, 재단의 건축적 특성과 어떻게 조응하게 될지 궁금하다.

전시는 총 5개 부문으로 구성되고, 주제별로 서로 연계되며 각 공간의 성격을 반향할 예정이다. 중앙을 차지하는 포디움 공간에서는 고대 및 신고전주의 조각 작품이 우리의 신체 조각 작품과 함께 전시된다. 위층 공간에는 70개의 사무용 책상으로 가득 찬 광활한 사무실 풍경이 펼쳐질 예정이고, 과거 거대한 물탱크가 있던 천장 높은 공간 시스테르나cisterna는 수영장, 탈의실 등이 들어선 일종의 스파 시설로 변형된다. 노스 갤러리North Gallery에는 벙커나 우주선 같기도 한 미래적인 집을 꾸릴 계획이며, 야외에는 공공 영역에 관련된 여러 주제를 다룬 작품을 전시한다.

이번 개인전 도록에 특히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세계 곳곳의 인사를 초청해 다양한 관점에서 어떻게 신체를 바라볼지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답변을 그러모았다. 이 텍스트는 이번 전시에서 어떤 역할을 맡는가?

이 출판물은 전형적인 전시 도록이라기보다는 리더reader에더 가깝다. 각기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저자 30인 이상이 참여했고 인공지능과 젠더, 건강, 최신 로봇 기술, 미술사적 관점에서 본 남성의 몸 등 신체를 둘러싼 다양한 주제를 다룬 에세이로 구성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지난 두 해 동안 꽤 바빴다. 베를린부터 파리, 코펜하겐, 스톡홀름, 헬싱키, 뉴욕 등을 오갔고, 다행히 대부분 직접 방문할 수 있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밀접한 신체 접촉이 가장 큰 위협이 돼버린 이 기이한 시국이 어떤 변화를 야기했을 것도 같다.

지난 몇 해 동안 점점 더 많은 공공 미술 조각 작품을 선보였다. 수많은 기관이 각종 봉쇄 정책에 타격을 입고 전시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상황 속에서 공공장소에서의 미술은 더욱 유효해졌다. 어쨌든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새로이 훈련하다시피 해야 했던 팬데믹과 그에 따른 각종 새로운 행동 양식은 작품을 구상하거나 제작하고 일상을 꾸려가는 데 모두 영향을 끼쳤다. 2021년 11월 뉴욕 페이스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은 2020년과 2021년에 많은 사람이 겪어야 했던 밀실 공포증을 조장할 것만 같은 고립감에 대해 다루기도 했다.

Photo Studio Elmgreen & Dragset

근래 전시 및 프로젝트에선 각기 다른 연령대의 실물 크기 신체 조각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테니스 코트에는 패배하고 널브러진 작은 소년과 승리 트로피를 쥔 큰 소년이 대조를 이루었고, 아트 바젤 전시장 바깥에 러시아 번호판을 단 채 불법으로 주차된 오래된 벤츠 차량 안에는 반나체의 청년이 다른 청년을 애틋하게 감싸 안고 있다. 또 그리 아름답지 않은 나체의 중년 남성이 파리의 상류층 거주 지역에는 있을 것 같지 않은 마사지 숍 침대 위에 배를 대고 누워 있기도 하고, 가끔은 죽은 남성을 다루기도 한다. 젊음과 장년기는 당신의 작업에서 어떻게 소통되는가?

유해한 남성성과 인종차별, 심지어 총기 난사 사건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미국에서 목도하는 문제점 중 대다수는 아이들이 성장하고 맞닥뜨리는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유감스러운가치 체계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시작된다고 본다. 또 생애 반대편을 보면 많은 나라에서 고령층이 더 이상 효율적인 인적 자원으로서 부를 창출하지 못하고 소비자로서도 제 기능을 못한다며 등한시하는 사회·정치적 상황을 어렵지 않게 목격하기도 한다. 현대 문화는 대체로 젊음과 청춘에만 집중하는데, 전통적으로 유년층과 노년층은 신체 조각 작품 소재로도 덜 다뤄지는 경향이 있는 만큼 우리는 이 두 연령대를 묘사하는 데 관심이 많다.

‘공간(space)’은 작업의 또 다른 주요한 축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전시장을 게이 바나 클럽, 사우나, 수영장 등으로 뒤바꾼 전시들이 기억난다. 이처럼 뒤바뀐 공간적·상황적·총체적 경험을 관객에게 제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업 초기에 ‘화이트 큐브white cube’의 특성을 논쟁하는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다. 우리가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전 세계 어디를 가든 갤러리 공간이 똑같다는 사실에 놀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균질화된 전시 공간에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이를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전환하는 게 더 흥미로웠다. 그럼으로써 관객은 우리 작품을 새로운 조건, 이를테면 집이나 공항, 지하철 역사, 버려진 수영장, 아트 페어 같은 상황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미술관 또는 갤러리를 드래그drag하는 셈이다. 그들의 본래 정체성을 위장시키면서.

끝으로 올해 예정된 주요 전시를 소개해달라.

팬데믹으로 연기돼 올해 3월 말 개최할 폰다치오네 프라다 개인전에 많은 정성을 쏟았다. 올해 후반기에는 중국 항저우에 새로 문을 연 미술관 바이 아트 매터스By Art Matters에서, 2023년에는 프랑스의 퐁피두 메츠 센터에서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참, 한국에서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국제갤러리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논의 중인데, 이번에는 부산을 염두에 두고 있다.

Photo Studio Elmgreen & Dragset

writerTak Youngjun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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