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카는 무색無色 무취無臭 무미無味의 액체다. 와인의 매혹적인 색과 향도 없고 맥주의 풍성한 거품도 없다. 러시아인의 건강을 위해 순수하게 빚었다고 한다. 그러나 보드카는 강력한 알코올을 품고 있다. 아무리 깨끗한 술도 과음에는 장사 없다. 러시아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륵스키Modest Mussorgsky(1839~1881)는 몸소 그것을 증명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선배 작곡가 무소륵스키를 좋아해서 그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의 관현악 파트를 편곡하기도 했다. 하지만 쇼스타 코비치는 회상록 <증언>에서 “무소륵스키의 술 문제는 소련 음악사가들을 창피하게 만든다”고 한탄했다. 술로 심신이 망가진 무소륵스키는 입원을 했다. 시간이 지나자 조금 회복되었으나 알코올 중독자의 인내는 오래가지 않았다. 병원 수위를 매수해 술을 구해서는 진탕 마셔버렸다. 그러고는 두 번 크게 부르짖고 절명했다.
이때의 무소륵스키를 그린 초상화가 있다. 화가 일리야 레핀은 병실로 찾아가 영정 사진을 찍듯 얼굴을 그렸다. 환자복 위에 녹색 가운을 걸친 작곡가는 술에 찌든 인간을 생생히 보여준다. 눈빛만은 형형하나 머리칼은 불타오르듯 헝클어지고 코는 빨갛게 익은 딸기다. 이 상태에서 며칠 뒤 폭음을 하고 사망했다. 무소륵스키가 알코올 중독자가 된 것은 당시의 풍조 였다는 주장도 있다. 부유한 귀족 지주의 자손으로 태어나 황실 근위대와 공무원을 지냈지만 기득권에 대한 저항이라는 시대 조류에 합류했고, 수단은 극단적 바쿠스 숭배였다는 것이다.
음주의 나날에도 창작은 계속됐다. <전람회의 그림>은 친구 빅토르 하르트만의 작품들을 보고 영감을 받아 지었다. 화가,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였던 하르트만이 갑작스레 죽자 무소륵스키는 큰 슬픔에 빠졌다. 이듬해 그의 유작을 모은 전람회가 열려 고인의 다채로운 작품 세계가 조명됐다. 수채화, 유화 등 회화와 건축 설계, 공연 무대, 생활용품, 의상 디자인까지 망라된 전시였다. 무소륵스키는 죽은 친구를 만나듯 전람회를 보고 열 점의 작품을 음악으로 묘사했다. 열거하자면 ‘난쟁이’, ‘고성古城’, ‘아이들 싸움’, ‘소달구지’, ‘병아리 발레’, ‘두 명의 유대인’, ‘시장 아낙들’, ‘파리 카타콤’, ‘마녀의 오두막’, ‘키예프의 성문’이다. 나는 ‘고성’을 특별히 좋아하는데, <전람회의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도 이 곡의 회상적인 선율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문제는 열 곡의 분위기가 제각각이라는 것이었다. 무소륵스키는 프롬나드PROMENADE라는 장치를 고안해 곡들을 이어주었다. 프롬나드는 ‘거닐다’는 뜻이니 전람회를 둘러보는 작곡가 자신을 묘사한다. 그리고 다양하게 변주된다. 첫 곡은 그리운 친구의 작품을 보러 입장하는 무소륵스키의 심경처럼 설렌다. 두 번째는 낮고 은근하게 연주해 이어지는 회고조의 ‘고성’과 자연스레 연결된다. ‘파리 카타콤’에 이어지는 애상적인 프롬나드는 죽은 친구를 위로하는 듯하다. 마지막 프롬나드는 곡들 사이가 아니라 영웅적 찬가풍의 ‘키예프의 성문’ 중간에 배치해 무소륵스키가 내 손을 잡고 성문을 통과하는 환상을 선사한다. 중구난방 열 곡은 이렇게 프롬나드로 매끄럽게 연결됐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마리아 유디나는 거창한 언어로 <전람회의 그림>을 찬양했다. “불가사의하고 웅대하며 비길 데 없이 독창적인, 천재적인 작품!” 유디나의 흥분은 작품 연주로까지 이어져 그녀가 피아노로 연주하는 ‘키예프의 성문’을 듣고 있자면 건반이 부서질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쇼스타코비치는 무소륵스키가 창피하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 1940년 월트디즈니는 클래식 애니메이션 <판타지아>를 제작하며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 함께 무소륵스키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을 선택했다. 마이클 잭슨은 1995년 노래 ‘History’에 ‘키예프의 성문’의 주제를 사용했다. 보드카에 젖어 살았지만 그는 할 일도
착실히 했다. 술 탓에 단명(42세)했다고 하지만 모차르트(36세), 슈베르트(32세)보다 오래 살았다.
요즘은 <전람회의 그림>을 마음 편히 듣기 힘들다. 마지막 곡 ‘키예프의 성문’을 들으면 슬라브풍 성문 대신 미사일이 폭발하는 참상이 떠오른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같이 뿌리를 두고 있는 고도古都다. 이 유서 깊은 도시가 전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러시아 침공 이후 사람들은 이 도시를 러시아식 이름 대신 우크라이나식 키이우
Kyiv로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화가 일리야 레핀도 우크라이나 태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