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OF THE NOMAD
기업가 매츠 와스트럼은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로 하고
트라문타나 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위에 버려진 농장을 자연과 호흡하는 집으로 개조했다.
굳이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을 하지 않고도 매일 여행자처럼 살 수 있는 곳.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와 유럽 왕족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 지중해의 낙원이자 유럽의 보석이라 불리는 스페인 마요르카섬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26세에 일찍이 자동차 부품 액세서리 CEO로 성공을 맛본 후 부동산 기업가로 전향한 매츠 와스트럼 또한 우연히 마주한 마요르카섬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삶이 단조롭게 느껴질 때마다 할리 데이비슨을 끌고 전 세계 대륙을 누볐다. 흔들림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장소만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오토바이 한 대와 함께 목적 없이 떠돌다 운명처럼 다다른 마요르카섬. 산책 길에서 만난 작은 들꽃처럼 오래 보아야 할 것이 많았고, 개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풍경은 그에게 이곳에 머물 것을 권했다. “처음 이 섬을 찾았을 때가 1990년대 후반이었어요. 스페인이 급속한 경제 위기 상황을 맞으면서 마요르카섬도 큰 타격을 입어 건물들이 텅텅 비어 있었죠. 당시 팔마 지역에 있던 18세기 궁전을 구입해 호텔 사업을 시작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이미지 순서대로)
RIGHT
거실에는 영국 남부에서 구입한 가죽 소파, 아프리카 케냐에서 찾아낸 블랙벅 사슴 복제 모형 등 그의 노마드 라이프를 짐작하게 하는 물건이 가득하다.
호텔 사업은 처음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넘쳤다. “이곳은 저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주었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와 ‘어떻게 일할 것인가’는 다르지 않다는 것, 삶과 일의 방향을 일치시키는 것이 성공과 만족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죠. 여행을 좋아하는 저에게 호텔 사업은 올바른 방향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호텔 기업 푸로 그룹Puro Group을 세우고, 2004년 푸로 호텔Puro Hotel, 2005년 푸로비치 클럽Purobeach Club, 2006년 푸로비치 마르벨라Purobeach Marbella 등을 연달아 오픈하며 모두 성공시켰다.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는 삶은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용기로 이어졌다. 2015년, 그는 공식적으로 푸로 그룹 대표 직함을 내려놓고 리빙 브랜드 스피릿 오브 더 노마드(www.spiritofthenomad.com)를 설립했고, 2017년부터 오가닉과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을 만끽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팔마에서 북쪽으로 20분쯤 떨어진 작은 마을 알라오Alaro´. 올리브 숲, 경작지, 등산로, 목장으로 둘러싸인 약 12만 평(396,694m2 )의 땅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중 하나인 트라 문타나 산 정상으로 이어진다. 오아시스처럼 서 있는 약 3백63평(1,200m2 ) 농장 건물은 그가 3년간 정성을 기울여 찾아낸 곳이다.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이었어요. 전기와 수도 등 생활 기반 시설이 하나도 갖춰지지 않은 외곽의 야생 지대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기존의 돌, 나무, 벽돌 등을 활용하되 자연에 해가 되지 않는 집을 지을 계획이었어요.” 보통 자연 속에 집을 짓는다고 하면 환경보다는 자연 풍경에 중심을 두기 마련이지만 그는 태양광 에너지, 천연 퇴비 시스템, 통풍이 잘되는 디자인 등을 활용해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집을 만들고 싶어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돌집 같지만 자세히 보면 오가닉 라이프를 위해 섬세히 조율한 흔적이 보인다. 돌집 소재는 모두 처음 농장을 허물었을 때 나온 폐자재들을 활용했다. 그는 돌집 사이에 단열재를 넣고 창문 구조와 크기를 직접 조율해 통풍이 잘되게 했다. 또한 벽 사이에 태양광 시스템과 연결된 조명 및 전기 시설을 모두 삽입해 군더더기를 없앴다. 가장 고민한 것은 정수, 폐수 처리와 음식 폐기물 처리 시설이었다. 그는 기존 농장에서 사용했던 우물을 복구한 뒤 여기에서 퍼 올린 지하수를 천연 필터로 정화해 음용수로 활용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 외 수영장, 샤워 시설, 화장실 등에서 사용하는 물은 빗물을 활용한다.
그렇게 완성한 집은 크게 세 공간으로 나뉜다. 부엌, 거실, 서재가 있는 공용 공간의 인테리어는 그의 여행 일대기를 보는 듯하다. 모로코, 사하라, 발리, 이탈리아, 미국 서부 등 여행지에서 직접 구입한 소품이 어울려 있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비밀스럽게 자리한 중정이다. 대규모 파티도 소화할 수 있는 야외 공간 외에도 건물 마당 곳곳에 벤치가 놓여 있다. 마당도 되고 정원도 되고 사적인 방도 되는 곳, 안도 되고 바깥도 되는 건물 사이에 깊게 자리한 중정 공간이 집을 한층 입체적으로 만든다. 이처럼 그의 집에는 곳곳마다 자연과 사람이 만나는 풍경이 담겨 있다. 천장에도 창문을 만들어 2층 계단과 복도를 지날 때 언제든지 하늘을 올려볼 수 있게 했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가능하면 맨발로 지내보라고 합니다. 땅의 기운을 느껴보라고요. 제 집에서는 실내와 야외 구분이 따로 없죠. 그냥 모두가 자연이에요.” 그는 이곳에서 밤을 보내야 이 집의 매력을 제대로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주변에 아무런 불빛도 존재하지 않아 마치 등대처럼 빛나는 집. 고요함을 넘어서 적막함이 흐르는 곳. 존재하는 것은 땅, 하늘 그리고 달빛뿐. 창으로 통하는 바람이 고스란히 촉감으로 전해질 때 그는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writerGye Anna
editorLim Jimin
photographerStephanie Sifv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