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하우스의 위대한 유산
MZ세대 사이에 Y2K 패션이 유행하면서 패션계의 올타임 레전드 아이템이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럭셔리 하우스 브랜드는 아카이브 아이템을 재해석하며 화답하고 있는 중이다.
1993 S/S 컬렉션의 언더웨어 룩을 스윔 웨어로 재해석한 샤넬.
브랜드의 아카이브 재출시
오랜 역사를 지닌 브랜드들은 아카이브를 보관하는 수장고를 보유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브랜드의 기념비적 제품부터 아이디어 노트나 패턴, 패브릭, 심지어 전 세계에서 수집한 진귀한 보물까지 줄줄이 보관하고 있다. 브랜드의 새로운 수장이 임명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이 수장고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소장품에 둘러싸여 영감을 얻고 과거에서 미래를 잇는 연결 고리를 찾아낸다. 과거는 브랜드의 가장 훌륭한 스토리텔링 재료다.
1983년 샤넬의 수장으로 합류한 칼 라거펠트가 코코 샤넬이 창조한 트위드 재킷을 레퍼런스 삼아 끊임없이 새로운 패브릭과 디테일을 재창조하며 아이콘의 왕좌를 유지하게 했듯, 그 뒤를 이은 버지니 비아르 역시 샤넬의 역사를 부지런히 되돌아보고 있다. 그녀는 2022 S/S 컬렉션에서 칼 라거펠트의 샤넬 시절을 회고했다. 1991 S/S에서 영감을 받은 사이클 쇼츠 콤보, 1993 S/S 언더웨어 룩을 재해석해 샤넬 로고를 새긴 화이트 컬러의 원피스 수영복을 선보인 것. 또한 파스텔 컬러의 미니스커트 슈트는 1994 S/S 샤넬 컬렉션을 재해석한 것이다.
발렌티노의 피엘파올로 피촐리 역시 아카이브를 회고하며 2022 S/S 컬렉션을 완성했다. 1968년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재해석해 꽃 자수를 선보였고, 1967년 컬렉션에서 영감받아 타이거 프린트의 맥시 코트를 완성했다. 생 로랑의 디자이너 안토니 바카렐로는 패션사 서적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이브 생 로랑의 역사적 아이템 사파리 튜닉과 르 스모킹을 오마주해 컬렉션을 완성했다. 구찌는 명실상부하게 가장 많은 아카이브를 소장한 브랜드 중 하나다. 피렌체에 자체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예술 박물관에는 1953년 구찌에서 선보인 남성용 홀스빗 로퍼가 영구 전시되고 있다(클라크 케이블, 존 웨인, 알랭 들롱 등 당대 스타들이 즐겨 신었던 신발이다). 구찌는 자사의 빈티지 제품을 전 세계에서 직접 수집해 리세일하는 온라인 스토어를 론칭했다. 이름은 ‘볼트Vault’. 이곳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구찌가 직접 매입한 빈티지를 구찌 소속 장인이 리폼한 것들. 혹시 알겠는가? 운이 좋으면 다이애나 비가 들었던 1940년대 뱀부 백이나 재클린 케네디가 들었던 호보백을 얻게 될지도?
Y2K 시대의 위대한 유산
2000년대를 전후해 Y2K 트렌드가 급부상하면서 1990년대를 풍미한 프라다의 검은 나일론 포코노 백, 존 갈리아노의 디올, 니콜라 제스키에르의 발렌시아가 등이 소환되고 있다.
2000년대 존 갈리아노가 디자인한 ‘디올 by 존 갈리아노’ 드레스를 비롯해 당시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던 오리지널 디올 새들백은 그야말로 ‘소장 가치가 있는’ 아이템이다. 디올 새들백은 2018년에 재출시했고, 오리지널 디올 새들백의 몸값은 한껏 높아졌다. MZ세대는 현재 루이 비통의 아티스틱 디렉터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1997년부터 15년 동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몸담았던 발렌시아가 컬렉션에도 열광하고 있다. 특히 2008 S/S 시즌에 선보인 ‘발렌시아가 by 니콜라 제스키에르’ 네오프렌 플로럴 컬렉션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또한 그가 2002년에 처음 선보인 발렌시아가 모터사이클 백도 다시 인기를 누리고 있다(2001 F/W 시즌 패션쇼를 위한 샘플로 단 스물다섯 개만 제작했던 것을 다음 시즌에 정식으로 론칭해 당시 쿨내 진동하는 여인들의 옆구리를 독차지했던 주인공이다). 이 백은 2015년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가 2021년 프리폴 시즌에 ‘르 카골Le Cagole’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선보여 킴 카다시안, 벨라 하디드, 켄달 제너, 두아 리파, 줄리아 폭스 등 가장 핫한 셀러브리티들의 선택을 받았다.
프라다는 1990년대를 풍미한 Y2K 아이템인 포코노 백을 지속 가능한 소재인 에코닐로 바꿔서 ‘리-나일론Re-Nylon 컬렉션’으로 출시했다. 이 밖에도 아제딘 알라이아 드레스, 베르사체 본디지 슈트, 보테가 베네타 카세트 백 등이 새로운 올타임 레전드 아이템으로 꼽히는 목록이다.
MZ세대의 남다른 취미
이런 경향은 MZ세대의 남다른 취미에 기인한다. 케이티 페리가 2021년 유니세프 갈라에 트렌디한 많은 드레스를 놔두고 1978년 피에르 가르뎅 오트 쿠튀르 드레스를 입고 참석한 것은 좋은 예. 가수 올리비아 로드리고는 2021년 7월, 미국 백악관을 방문할 때 1995년에 생산된 핑크색 샤넬 트위드 슈트를 입었다. 또 릴리 알렌은 중고 구찌 슬리퍼와 중고 셀린느 카바스 토트백을 애용하고, 리한나는 1980년 할스톤과 1990년 이브 생 로랑을 입으며 남다름을 뽐낸다.
지난 4월에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 팝스타 저스틴 비버는 오버핏 슈트에 발렌시아가 크록스 신발을 신고 등장했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최악의 발명품 50’ 목록에 포함되는 수모를 겪었던 크록스는 발렌시아가와 손잡고 2018년 10cm 높이로 등장해 다시 조명받았다. 테바, 어그, 버켄스탁 등 여타 브랜드의 흥행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에서 옥석을 찾아내고 남들과는 다름을 추구하는 MZ세대의 취향이 에르메스 버킨백, 샤넬 트위드 재킷처럼 자타공인 클래식으로 인정받은 것들 외에 새로운 ‘올타임 레전드’를 발굴하고 있는 것! 이들이 2000년대 발렌시아가를 이끌던 니콜라 제스키에르를 재조명하는 것을 보면 안목은 꽤 정확한 것 같다.
writerMyung Sujin 패션 칼럼니스트
editor Jeong Pyeongh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