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맥주가 우리 곁에 있었다
한 잔을 마시면 다른 존재로 변신을 시작하고,두 잔을 마시면 시인이나 이야기꾼이 되며, 세 잔을 마시면 함께한 이들과 친구가 된다.
분별없는 취향은 무취향이다
스무 살에 처음, 술의 쓰디쓴 쾌락을 알았다. 소주였다. 이어서 막걸리의 텁텁한 달콤함과 생맥주의 밍밍한 시원함을 배웠다. 서른 초반까지는 술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술이 있어서 그저 좋았고, 대화가 넘쳐서 더욱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술맛을 알았다. 프랑크푸르트 출장길에 그 도시의 오래된 레스토랑에서 수제 맥주 한 잔을 마셨을 때, 문득 좋은 술과 나쁜 술이 있음을 깨달았다. 혼자 마셔도 기쁜, 시처럼 음미할 만한 술이 따로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면 구름 같은 거품, 황금 같은 호박색 액체, 끝없이 솟아오르는 작고 동그란 공기 방울이 마음을 파고들고, 눈을 감으면 신선하고 짙은 홉 향기가 머릿속 깊숙한 곳까지 스며든다. 한 모금 들이켜자 거품이 혀를 휘돌면서 편안함을 불어넣고, 곧이어 달콤한 홉과 쌉싸래한 보리 맛이 어우러진 맛있는 액체가 스르르 목젖을 넘어간다. 위에 닿은 술은 차가운 화끈함을 퍼뜨리면서 통쾌한 감탄사를 혀로 밀어 올린다. ‘아, 맛있구나!’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자주 이런 말을 듣는다. 옳은 말이다. 취향은 존중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말하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진짜 좋아할 만한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 맥주라고 다 같은 맥주가 아니고,와인이라고 다 같은 와인이 아니다. 가격이나 별점 따위가‘좋음’을 결정하지는 않으나, 좋아할 만한 것을 좋아해야 비로소 취향이성립한다. 분별없는 취향은 무취향과 같은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곧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인간은 성숙해진다. 한 시인의 말처럼, 혀의 기쁨은 정신의 기쁨이다. 우리는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먹고 마실 수 있으나 내가 맛있게 먹었다고 모두좋은 음식은 아니다. 단련된 취향만이 인간을 고귀하게 만든다. 풍미를 구별할 힘이 있어야 더 나은 인간에 이를 수 있다. 많은 이가 취향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최상의 문화는 만든 사람과 먹는 사람의 대화이고, 고도의 취향은 개성이 아니라 상호작용이다.
맛있게 먹을 줄 아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뛰어난 장인의 솜씨도 소용없다."
인류는 처음부터 맥주 없이 못 살았다
술은 인간의 창조물이 아니라 진화의 산물이다. 약 1억 5천만 년 전, 열매 달린 꽃식물의 등장과 함께 출현했다. 최초의 술은 과일주, 즉 와인이다. 과일은 익으면서 당을 발효해 에탄올로 만든다. 잘 익은 과일은 와인병이
최초의 취향은 맥주에서 생겨났다
좋은 빵을 먹고 맛있는 맥주를 마시는 일은 문명에 들어서는 행위였다.<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숲속에서 풀을 먹고 물을 마시면서 살던 야생 영웅 엔키두가 나온다. “음식을 먹어요, 엔키두./ 이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이에요./ 맥주를 마셔요, 이것이 이 땅의 관습이랍니다.” 여인의 권유에 따라 맛있는 빵을 먹고 좋은 맥주를 일곱 잔 마시자마자 엔키두의 온몸에서 털이 빠진다. 완전한 인간으로 변신한 엔키두는 영웅 길가메시와 함께 모험을 즐긴다. 신화는 전한다. 적당히 아무 음식이나 먹고 마셔서 배 채우고 목 축이면 끝이라고 말하지 말라. 좋은 음식을 가리고 맛난 맥주를 분별해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맥주는 신성을 여는 입구이고 영성을 깨우는 촉매다. 인류학에서는 맥주를 엔테오겐entheogen, 즉 '안에서 신을 만드는 물질'이라 부른다."
맥주 안에는 신이 들어 있다
맥주는 신성을 여는 입구이고 영성을 깨우는 촉매다. 인류학에서는 맥주를 엔테오겐entheogen, 즉 ‘안에서 신을 만드는 물질’이라 부른다. 북유럽 신화에 따르면, 벌꿀 술을 들이켠 오딘이 인간을 향해 술을 뱉자 인간은 그 술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술은 그 안에 신의 흔적을 품고 있어서 우리 안의 다른 세계, 다른 존재를 일으킨다.
writerJang Eunsu 출판 편집인, 문학평론가editorKim Minh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