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의 떡국
떡국 한 그릇에는 무탈한 한 해를 기원하는 우리의 소망이 담겨 있다.
설날 아침, 우리는 떡국을 먹는다. 나이를 더하는 떡이라는 뜻이 담겨 ‘첨세병添歲餠’이라 불렸던 떡국은 지역에 따라 모양과 재료가 천차만별이다.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듯 전국 팔도에는 자연환경과 특산물에 따른 개성 넘치는 떡국이 존재한다. 어느 지역의 떡국이든 무탈한 한 해를 기원하는 사람들의 소망이 가득 차 있다. 오랜 시간 조상들의 지혜가 축적되어온 지역별 이색 떡국을 알아보자.
부드럽고 쫀득한 이북 만둣국
북쪽 황해도와 평안도의 만둣국은 식감이 매력적이다. 대체로 입안에서
부드럽게 뭉개지거나 쫀득한 식감을 낸다. 황해도에서는 일반적인 떡국
의 틀을 깬 ‘강짠지 만둣국’을 먹는다. 강짠지는 소금에 절인 배추를 볏
짚에 켜켜이 쌓아 장독 안에서 발효시킨 것. 최근에는 배추를 소금에 절여 식감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만든다. 황해도의 강짠지 만둣국에는 강
짠지를 넣어 빚은 반달 모양의 만두가 들어간다. 쌀농사가 어려운 북쪽에서는 밀이나 메밀로 빚은 만두를 넣곤 했는데, 평안도의 굴림만둣국은 아예 만두피 없이 완자 모양의 만두소를 감자 전분에 굴린다. 한입 크
기의 완자를 자세히 보면 다진 돼지고기, 으깬 두부 등이 들어간다. 굴림
만둣국의 식감이 유독 부드러운 이유다.
단백질을 보완하는 전라도 떡국
전라도는 지역 특성상 콩 재배가 용이해 품질이 뛰어난 콩이 많이 나기로 유명하다. 자연스럽게 떡국에도 콩으로 만든 두부가 들어간다. 닭으로 진하게 낸 육수에 납작하게 썬 두부를 넣은 두부떡국은 전라북도의 향토 음식으로 꼽힌다. 동물성 단백질 식품인 닭고기와 식물성 단백질 식품인 두부가 사이좋게 들어가 영양소를 골고루 채워준다. 전라남도의 떡국은 속담 “꿩 대신 닭”의 유래가 된 꿩떡국이다. 꿩은 쉽게 사냥할 수없는 귀한 식재료인 만큼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곤 했는데, 이의 대안으로 활용된 게 비교적 구하기 쉬운 닭이었다. 쫄깃쫄깃한 꿩고기가 녹진한 국물과 어우러지니 ‘과연 임금님이 즐겨 먹던 호사스러운 떡국이 이런 맛이었겠구나’ 짐작할 수 있다.
바다의 영양소를 담은 떡국
지역별 해산물을 활용한 떡국 메뉴도 이색적이다. 경상남도의 굴떡국, 모자반을 활용한 제주도의 몸떡국이 그 예다. 경상남도의 떡국에는 통영 앞바다의 굴이 듬뿍 들어간다. 굴 외에도 바지락, 물메기 등이 들어가 해산물 특유의 담백하고 깔끔한 맛이 나는 떡국을 완성한다. 제주도의 몸떡국은 톳과 유사한 모자반의 색 그대로 국물이 초록색을 띤다. ‘몸’은 모자반의 제주도 방언인데, 제주 연안에서 나는 해조류로 겨울에 즐겨먹는 별미 식재료다. 바다가 없는 충청북도에서는 대표적인 향토 식품 다슬기를 활용해 이색 떡국을 만든다. 강에서 잡은 다슬기를 넣어 국이나 무침을 만들어 먹곤 하는데, 다슬기생떡국도 그중 하나로 예부터 강에서 배를 타고 다니던 뱃사공들의 든든한 끼니가 되어주었다. 다슬기는 철분 함량이 높아 음력 9월 9일에 다슬기생떡국을 먹으면 어지럼증이 없어진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복을 아름답고 먹음직스럽게 담아낸 떡국
충청남도 떡국에는 지역 특산물인 구기자가 들어간다. 구기자는 가래떡의 색을 곱게 수놓는 데 사용된다. 대체로 구기자 잎을 넣은 푸른 떡, 구기자 가루를 넣은 붉은 떡, 또는 구기자 열매를 넣은 노란 떡, 마지막으로 쌀만 넣은 흰떡까지 형형색색의 떡으로 멋스러운 떡국을 끓여낸다. 강원도에서는 강릉을 대표하는 초당두부를 활용해 먹음직스러운 떡국한 그릇을 만들어낸다. 초당두부에는 동해 바닷물을 간수(응고제)로 사용한다. 중요한 것은 두부를 엄지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큼직하게 썰어 먹음직스럽게 만드는 것. 복을 의미하는 만두와 함께 넉넉하게 먹는 만두떡국이 강원도의 새해 식탁에 별미로 오른다.
지역 고유의 특산물을
활용해 만드는 떡국
지역별 떡국 요리
경상도의 굴부터 충청도의 구기자까지, 지역별 식재료로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떡국 메뉴를 소개한다. 떡국의 깊은 국물과 이상적인 합을 이루는 곁들임 메뉴도 찾아보자.
평안도의 굴림만둣국
우선 굴림만두부터 준비한다. 다진 돼지고기에 다진 마늘, 다진 파, 데친 숙주, 으깬 두부를 넣고 참기름, 소금, 후춧가루로 간한다. 이후 여러 번 치대 한입 크기의 공 모양으로 빚는다. 빚은 만두에 밀가루를 한번 묻혀 끓인 양지 육수에 넣는다. 만두가 익을 동안 달걀물로 줄알을 친 뒤 그릇에 담는다. 가지런히 담은 굴림만두 위에 송송 썬 파를 올려 완성한다.
경상도의 굴떡국과 삭힌 고추 간장 양념
냄비에 멸치, 다시마를 넣고 푹 우린 뒤 건더기를 건져낸 국물에 떡국 떡을 넣어 끓인다. 여기에 납작하게 한입 크기로 썬 두부와 깨끗하게 씻어둔 굴을 넣고 소금, 후춧가루, 다진마늘로 간해서 끓어오르면 바로 불에서 내린다. 두부가 으깨지지 않도록 그릇에 굴과 함께옮겨 담고 썰어둔 부추와 홍고추를 얹어서 완성한다.
곁들임 메뉴 맑은 굴떡국의 삼삼한 간이 밋밋하게 느껴진다면 고추 장아찌를 제안한다. 소금물에 고추를 삭혀두었다가 물기를 최대한 제거해 간장, 설탕, 식초, 물을 배합한 간장 양념에 숙성해서 먹는다. 취향에 따라 고추장을 넣은 매
운 양념에 무쳐 먹으면 좋다.
다슬기생떡국과 무 섞박지
쌀가루와 찹쌀가루를 섞어 끓는 물을 더해 익반죽해서 생떡 반죽을 만든다. 반죽을 길게 가래떡 모양으로 잡아 한입 크기로 똑똑 썰어서 손으로 동그랗게 눌러 떡국 떡 모양을 만든다. 냄비에 멸치 국물과 다슬기를 넣고 시원하게 우려낸 뒤 생떡국을 넣고 익혀서 소금, 후춧가루로 간을 맞춘 뒤 송송 다진 부추를 넣고 그릇에 옮겨 담아 완성한다.
곁들임 메뉴 겨울 무를 활용한 무 섞박지를 제안한다. 무 특유의 달큼한 맛이 매콤한 양념과 어우러져 시원하고 아삭한 식감을 자아낸다.
몸떡국과 어리굴젓 무침
돼지 등뼈를 푹 고아서 뼈와 살을 분리하고 국물을 뽀얗게 우려낸다. 냄비에 돼지뼈 육수를 담고 떡국떡을 넣어 끓인다. 여기에 물에 불려 깨끗하게 씻은 뒤 잘라둔 모자반을 넣고 푹 끓여 익으면 메밀가루와 들깨즙을 넣고 끓인다. 소금, 후춧가루로 간을 맞추고 그릇에 옮겨 담아 완성한다.
곁들임 메뉴 겨울부터 3월까지 제철인 생굴을 활용해 어리굴젓을 만들어보자. 양념이 진하게 밴 어리굴젓은 비린내가 덜해 고소한 몸떡국에 곁들이기 좋다.
구기자떡국
구기자 가루를 넣어 쫄깃하게 치대 만든 가래떡은 차갑게 식혀서 단단해지면 어슷하게 떡국 떡으로 썰어둔다. 냄비에 다시마와 멸치, 구기자를 넣고 우려낸 국물이 끓어오르면 여기에 구기자떡국 떡을 넣는다. 이후 반죽이 떠오르면 소금, 후춧가루로 간을 맞춰 그릇에 옮겨 담고 볶은 소고기 다짐과 황백 지단 고명, 대파채를 올려 완성한다.
writerLee Joohyun 푸드 칼럼니스트 editorKim Minhyung photographerSim Yunsuk stylistKim Jin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