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채우는 기운, 장어
무더위에 지친 날 떠오르는 보양식 한 그릇.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한 장어는 기운 넘치는 보양식의 좋은 재료가 되어준다.
여느 물속 생물체와는 모양새가 다르기 때문인지 수세기 전 장어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존재였다. “강 하구에 내려가 개펄 속에서 뱀과 교미해 새끼를 낳거나 진흙 속의 지렁이가 돌연변이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장어의 기원에 대해 자연발생한 것이라 추측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어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중국 고서에도 장어의 기묘한모양새가 언급된 바 있다. “미꾸라지가 가물치의 그림자에 비춰져 생긴다.” 옛 일본에서는 “길고 끈적끈적한 감자가 변해서 생긴다”며 장어가 육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겼다. 한국에서도 장어는 많은 학자가 글로 기록해왔다.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인 전남 강진에서 지내며 어민들의 삶을 담아 쓴 ‘탐진어가’에서 장어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계량에 봄이 들면 뱀장어 물때 좋아./ 그를 잡으러 활배가 푸른 물결을 헤쳐 간다./ 높새바람 불면 일제히 나갔다가/ 마파람 세게 불면 그때가 올 때라네.” 그의 형 정약전 또한 저서 <자산어보>에서 장어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대체로 물고기는 물에서 나오면 달리지 못하나 이 물고기만은 유독 곧잘 달린다. 뱀처럼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맛이 달콤하며 사람에게 이롭다. 오랫동안 설사를 하는 사람은 이 고기로 죽을 끓여 먹으면 이내 낫는다.” 이렇듯 장어는 오래전부터 한국의 대표 보양식 재료로 사랑받아왔다.
흔히 고서에 기록된 장어는 보통 뱀장어인 민물장어를 말한다. 강에서 자란 뱀장어는 반년에 걸쳐 바다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이동해 알을 낳은 뒤 죽는다. 연어와 반대로 바다에서 산란하고 강에서 자라는 셈. 부화한 새끼는 아주 작은 댓잎 모양이라 댓잎뱀장어라 부른다. 새끼 뱀장어는 1년여 동안 어미 뱀장어가 머물렀던 강으로 향한다. 이들이 강어귀에 다다를 즈음에는 손가락 정도 길이로 자란다. 우리에게 익숙한 풍천장어란 이름은 장어 서식지와 관련 있다. ‘바람이 부는 하천’이란 뜻의 풍천에는 강바람과 바닷바람이 교차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장어 수요가 늘면서 대부분의 민물장어는 오늘날 양식으로 생산된다. 1966년 처음으로 양식에 성공했고, 이제는 양식이 활성화되어 일본과 대만으로 수출한다.
뱀장어와 달리 바다에서만 사는 바닷장어도 있다. 바닷장어에 속하는 붕장어, 갯장어, 먹장어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종은 갯장어다. 주로 통영, 남해, 여수, 고흥 등 남해안 일대에 서식하며 따뜻한 바닷물을 좋아하는 계절 회유성 어류답게 겨울에는 먼바다로 나가서 월동한다. 제주도 이남에서 겨울을 나고, 5월부터 10월까지 남해안 연안으로 들어와 어획되는 것. 그래서 한철에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식재료다. 보통 남해에서 놋장어, 개장어, 해장어, 참장어 등으로도 불리는 갯장어는 일본에서는 잘 무는 습성 때문에 ‘물다’라는 뜻의 ‘하무’에서 유래해 ‘하모’라 불린다. 국내 식당에서 종종 하모라는 메뉴를 발견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갯장어를 ‘견아려’라 쓰고 속명을 ‘개장어’라 한다고 했으며 이렇게 표현했다. “입은 돼지같이 길고 이빨은 개와 같아서 고르지 못하다. 뼈가 더욱 견고하여 능히 사람을 물어 삼킨다.” 그의표현대로 갯장어는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뱀을 닮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잘 먹지 않았을 정도로 장어류 중에서 성질이 포악한 편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다 자란 갯장어는 무려 2m까지 성장할 만큼 크고 뼈가 억세 회로 먹을 때는 포를 떠서 썰어 먹는다. 갯장어를 활용하기 좋은 메뉴는 의외로 샤부샤부. 갯장어를 국자에 담아 채소를 듬뿍 넣은 국물에 담근 뒤 약 10초 만에 건져내면 흰 살의 장어가 꽃처럼 핀다.
영양을 배가하는 식궁합
오메가 3와 단백질이 풍부한 장어의 영양 성분을 극대화해줄 식재료를 알아보자.
사포닌과 비타민 C가 풍부한 두릅은 암세포의 증식을 막아주고 전이를 억제하는 항산화 효과가 있다. 사포닌은 혈당을 낮추고 혈관 내 노폐물을 배출해주는 효능이 있다. 정유 성분의 독특한 향은 신경 안정과 집중력 향상에 좋다.
장어의 단백질과 지방의 소화 흡수를 돕고 마늘 향은 장어의 비린내를 없애준다. 또 마늘의 성질이 따듯하고 단백질 분해 효소가 있어 소화를 촉진한다.
복분자에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은 혈관을 이완하고 혈압을 내려준다. 항산화 기능이 있어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되며 칼슘, 칼륨, 철 등 다양한 미네랄을 함유해 골다공증과 빈혈 예방에 좋다.
성질이 따듯한 부추는 장어와 함께 먹으면 소화작용을 돕는다. 또 알리신이 장어에 들어 있는 비타민 B1의 흡수율을 높인다.
한편 사시사철 볼 수 있어 어획량 면에서 갯장어를 압도하는 것은 붕장어다. 정약전은 붕장어를 ‘해대려’라 했고, “눈이 크고 배 안이 묵색으로 맛이 좋다”고 했다. 붕장어는 담백한 흰살생선 맛이어서 구이로 즐겨도 좋다. “양식이 되지 않는 바닷장어는 원산지에 따라 맛이 다릅니다. 통영과 부산, 전라도와 제주의 맛이 모두 달라요. 기름기도 다르고요. 장어는 한겨울과 환절기에는 잘 안 잡혀요. 특히 6월부터 8월까지 많이 잡히는 소흑산도의 안흥장어가 정말 맛있습니다.” ‘왕자장어’ 김경오 대표의 설명이다. 뼈가 얇고 연해서 주로 뼈째 썰어 ‘세꼬시’로 즐겨 먹기도 하는 붕장어 회의 시작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 군인들이 장어 껍질을 벗겨 군화를 만들곤 했고, 껍질을 벗기고 남은 살을 회로 먹은 것이 ‘붕장어회’의 시작이다. 갯장어에 비해 지방 함량이 높아 맛이 고소한 덕에 회로 먹을 뿐만 아니라 양념을 발라 구워 먹기도 하고, 장어탕 재료로 수요가 높다. 현재 신세계백화점 푸드마켓 수산 코너에서는 모든 장어 상품을 판매 중이다. 공식 인증을 받은 무항생제 민물장어부터 여수산 갯장어와 통영산 붕장어, 그리고 포항 영일만의 검은 돌장어까지 다양한 지역 및 산지의 최상위 품질 상품을 선보이고자 한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뱀장어에 대해 “오장육부 기능을 활성화하고 영양실조와 허약 체질에 좋다”, “각종 상처를 치료하는 데도 효력이 있다”고 묘사한다. 한의학에서 장어를 만리어 또는 만려어로 일컬으며 약재로 사용하는 이유다. <본초강목>에서도 “양기를 돋우어 우리 몸을 보호한다”고 강조한다. 왜 예부터 선조들은 장어를 보양식에 좋은 식재료로 꼽아온 것일까? 바로 ‘뮤신’과 ‘카르노신’ 등의 영양소 때문이다. 장어 껍질을 미끈하게 만드는 뮤신은 ‘콘드로이틴’이라는 영양소로, 손상된 연골을 복구시키는 데 효과적이고 세포의 노화를 막아준다. 장어가 폐에 좋다고 알려진 것도 이와 연관이 깊다. 당단백질의 일종인 점액 물질이어서 단백질 흡수를 촉진하고 세포를 보호해 폐와 호흡기 점막을 촉촉하게 해주는 것. 또 중성지방의 장 흡수를 억제해 다이어트에도 이롭다. 흥미로운 사실은 ‘장어=보양식’이라는 공식은 비단 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통한다는 것. 특히 18세기 런던 동부 지역에서 유래된 장어 젤리는 축구 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원기 회복을 위해 챙겨 먹은 영양식으로 유명하다. 장어에 함유된 강력한 항산화 물질 카르노신 덕분이다. 사람은 근육과 에너지를 사용하면 산화 물질을 만드는데 이 물질이 체내에 쌓이면 세포가 손상된다. 이때 세포손상을 막아주어 피로 해소와 세포 재생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바로 카르노신의 역할이다.
장어는 여름철 면역 관리에 도움을 준다. 면역세포의 주재료인 단백질을 포함해 면역력을 높이는 비타민 A가 소고기의 3백 배 이상 들어 있으며, 면역 체계를 조절하는 인터페론 증가에 도움을 준다. 이에 더해 심혈관 질환, 빈혈, 신경계에 좋은 비타민 B12(코발라민)가 풍부하다. 장어 지방은 돼지고기나 소고기의 기름기와 달리 식물성 지방과 비슷한 불포화지방산이어서 콜레스테롤 걱정이 없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오랜 시간 한여름의 보양식, 약재, 그리고 기특한 식재료로 쓰인 것은 이 풍부한 영양소의 힘 덕분이다.
집에서 즐기는 장어 간편식
10분도 안 걸린다. 다양한 장어 요리를 집에서 편리하게 즐기는 방법.
국내산 우거지와 향긋한 깻잎으로 비린맛을 잡는다. 끓는 물에 3분만 가열하면 완성.
450g, 6천원대 • 청정원
직화 그릴에 장어를 굽고 간장으로 양념해 짭쪼름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29g, 7천원 • KOJIMA
풍천장어 뼈를 푹 고아낸 국물에 세 번 간 활미꾸라지로 깊은 맛을 더했다.
350g, 1만원대 • 한국민속촌
전국 장어 맛집
강화도 갯벌에서 양식한 민물장어부터 여수에서 공수한 바닷장어까지. 장어의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맛집을 소개한다.
※ 아래 이미지는 참고용으로, 실제 제공 메뉴와는 다릅니다.
바닷장어 참숯불구이와 양념구이, 장어탕, 통장어탕 등 다양한 장어 요리를 선보이는 곳. 붕장어회와 갯장어회를 모두 맛볼 수 있으며 여름에는 갯장어 샤부샤부가 인기다. 깻잎에 국물을 넣어 숨을 죽인 다음 샤부샤부 국물의 채소와 데친 장어를 싸 먹으면 일품이다.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궁내로7번길 15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
문의 031-711-6531
강화도 갯벌에서 키우는 민물장어를 숯불에 구워낸다. 양식이지만 새우와 생선의 치어를 먹여 키운 환경친화적인 장어를 사용한다. 매콤한 맛을 원할 경우 양념장을 발라 구워 먹으면 맛있다. 깻잎절임 위에 장어를 올리고 생강을 얹어 먹으면 끝맛이 개운하다.
주소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로 142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9시
문의 032-937-0749
일본 나고야식으로 만든 장어 덮밥을 맛볼 수 있는 곳. 숯에 노릇하게 구운 토종 민물장어와 두툼한 계란말이가 밥 위에서 한데 어우러져 부드러운 식감과 담백한 맛을 선사한다. 덮밥에 녹찻물을 부어 말면 장어 차즈케로도 즐길 수 있다.
주소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구영앞길 8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오후 2~5시 브레이크타임)
문의 052-243-3334
약 16,000m2 규모의 한옥에서 장어구이를 맛볼 수 있는 곳. 장어 소금구이와 간장구이가 있는데 모두 구워서 식탁에 낸다. 숯불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소금구이를 추천한다. 두툼한 장어구이를 양념장에 찍어 먹거나 소금맛 구이 자체로 즐겨도 좋다.
주소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반구정로85번길 13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
문의 031-952-3472
장어는 일반적으로 구워 먹지만 파김치를 듬뿍 넣은 전골도 별미다. 민물장어와 잘 익은 파김치를 넣어 만든 전골은 얼큰하고 기름지지 않다. 전골을 다 먹은 뒤 밥을 볶아 먹을 수 있다.
주소 경기도 의왕시 안양판교로 119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오후 4~5시 브레이크타임)
문의 031-424-0015
할머니의 손맛이 담긴 비법 고추장과 텃밭에서 직접 기른 식재료로 건강하게 만든 ‘고추장더덕장어구이’를 선보인다. 쫄깃한 식감이 일품인 장어에 아삭한 생더덕을 풍성하게 곁들여 씹는 재미를 더했으며, 매콤한 고추장에 버무린 감칠맛 나는 장어가 입맛을 사로잡는다.
주소 전북 남원시 요천로 2264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8시
문의 063-635-0271
writer Park Min 프리랜스 에디터
editor Kim Minhyung
photographer Jung Sooa
illustrator Hur Heekyung
참고 도서 〈바다가 준 건강음식〉 웅진웰북,
〈자연이 만든 음식재료의 비밀〉 21세기북스,
〈자산어보〉도움말 ‘왕자장어’ 김경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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