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 • ISSUE 42
writerLee Jeeyoung 독립 기획자이자 도예 박사
editorJang Jeongjin
©Next Code, Daejeon Art Museum, 2019
©La Divina Commedia, porcelain, 460x210x20cm, 2019
ARTIST PROFILE
이윤희(LEE YUNHEE)
이윤희 작가는 홍익대학교 도예 유리과학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국내의 주목할 만한 청년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인 〈젊은 모색〉(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21)과 〈36회 중앙미술대전 선정 작가전〉(한가람미술관, 2014)에 참여했다. 현재 이윤희 작가의 작품은 〈빨간 망토:소녀는 왜 숲을 거닐었나?〉(신세계갤러리 대전 Art & Science)와 조선 팰리스 호텔에서 만날 수 있다.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박물관의 전신인 호기심의 방(Wunderkammer, Cabinet of Curiosity) 동판화 이미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많지요. 그곳에는 각지에서 수집한 사물과 동식물 표본이 있었죠. 저는 박물관을 좋아합니다. 대학 때 박물관에서 일하고 싶어 동서양 미술사와 중국 미술사, 복원 수업까지 들었어요. 수업은 모두 유익했고 지금까지 작품을 구상하는 데 도움을 받고 있죠. 회화 중 단 한 점을 꼽자면 히로니뮈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세 폭 제단화인 ‘쾌락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1500년경)에 경외를 느낍니다. 그리고 만약 제가 영화를 만들었다면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 감독에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의 색채를 가미한 작품을 구상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탑이나 기념비에서도 작품을 위한 건축적 요소를 찾곤 합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구상한 작품은 중세의 동판화에 묘사된 무덤 건축을 참고했어요.
저는 성화와 성물 그리고 종교 건축에서 느껴지는 숭고함에 압도되곤 합니다. 몇 해 전 인도에 갔는데, 인도인 친구의 부모님, 언니와 함께 성지순례를 가게 되었어요. 그때 정말 많은 사원을 방문할 수 있었고 무척 행복했습니다. 저는 관람객들이 제 작품에서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전에 싱가포르의 미술관에서 사신 행렬에 관련된 미디어 작업을 보고 숭고미에 압도되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술 작품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감정과 경험을 선사하진 않죠. 다른 사람들은 그 작품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용자에게 그러한 공감의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이 예술의 미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소녀를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의 <신곡(La Divina Commedia)>(1321)의 주인공으로 치환해 이해하면 됩니다. 불교의 감로탱화에서도 비슷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어서 앞으로 그것에 관한 작업을 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제 작품은 서사를 순차적으로 나열해 묘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경건함을 느끼게 하는 종교 건축이 인간을 압도하는 것처럼 작품이 관객에게 어떤 특별한 느낌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제 의도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저는 등가의 이미지로 소녀상과 해골을 병치합니다. 간혹 제 작품의 해골이나 죽음의 이미지가 어떤 분들에게 불편함을 준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두려움을 자아내는 이미지로서 죽음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멕시코에는 조상의 영혼들이 돌아오는 날이 있다고 하죠. 그 풍습이 제가 속한 문화권의 것이 아닌데도 저에게는 매우 가깝고 아름다운 것으로 느껴졌어요. 저는 죽음이 다른 형태로 이어지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순수함의 결정체라고 생각해요. 부서지기 쉬운 흙이 가마에서 고온으로 소성되면서 유리질화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거지요. 유럽에서는 한때 자기가 금처럼 귀한 것으로 여겨질 때가 있었죠. 부를 과시하기 위해 청화백자로 방을 꾸민 귀족도 있었고요. 자기 만드는 기술이 중국과 일본에만 있었을 때 이야기지요. 유럽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중국에서는 가본 적도 없는 서양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고, 그래서 동서양이 섞인 재미있는 그림이 탄생했죠. 저는 그런 자기의 역사가 매우 흥미롭습니다.
영화로 제작된 <향수(Perfume)>(2016)를 보면 주인공이 죽인 여인의 피부를 밀랍으로 떠내는 장면이 나와요. 거기에 그 여인의 향기와 영혼을 간직하기 위해서지요. 저에게 사물의 틀을 뜨는 행위는 그 사물의 삶을 영속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에 저에게는 주조되어 나온 결과물을 얻는 행위보다 틀을 뜨는 행위가 더 큰 의미를 갖습니다. 틀을 떠냄으로써 비로소 그 사물을 소유하게 되는 거죠. 물론 흙으로 주조되어 나온 사물로 하여금 다양한 이미지와 서사를 만들 수 있게 하는 것 또한 그 사물에 다양한 삶을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제 작품에는 제가 어릴 적 좋아하던 기차 장난감이 있습니다. 그 사물은 저의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용법으로 등장하며 자신의 삶을 영속하죠. 틀을 만들지 않았다면 그 장난감은 아마 금방 없어져버렸을 거예요.
저는 혼자 모든 작업을 하기에 그 과정은 매우 고됩니다. 전시를 오픈하고 나면 몸을 일으키지도 못할 만큼 체력이 고갈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종교인과 같은 숙명이 주어진 것 같습니다. 도자는 특히 내 것이 아닌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마에서 소성되면서 작품이 온전할지, 의도대로 될 것인지 예측하기란 매우 힘든 일이죠. 가마에서 완성된 작품이 내 손을 떠나 전시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지지를 받는 것 같고 계속 작업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예전에 뉴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