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한국과 일본에서 자신을 ‘서양음악의 아버지’로 부른다는 걸 바흐가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모르긴 해도 황당해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할 것 같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골드베르크 변주곡, 무반주 첼로와 바이올린 소나타, 마태수 난곡 등 바흐의 걸작들이 서양음악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본인 입장에서는 그때그때 마땅히 해야 할 과제의 결과물일 뿐이다. 그는 자식과 제자를 가르치고, 직장이던 교회의 예배를 위해 또는 돈을 벌고자 그런 음악을 지었다. 살아 있을 때는 일류 대접을 받기는커녕 동시대 사람들에게 ‘낡은 가발’이라며 구닥다리 취급을 받았다. 바흐는 평생 고단하게 일한 직장인이었다.
1723년 5월 5일, 바흐는 라이프치히 시와 고용계약을 맺었다. 38세의 중년 음악가는 시장 집무실에서 자신의 업무가 줄줄이 나열된 계약서에 서명했다. 직책은 토마스칸토르Thomaskantor 겸 라이프치히 음악 감독이었다. 당시 이미 5백 년의 연륜을 쌓아온 토마스교회 합창단을 책임지는 동시에 라이프치히 주요 네 개 교회의 음악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는 자리였다. 교회에 부속된 토마스학교 학생의 기악과 성악 교육도 책임져야 했다. 그러므로 바흐의 직장생활 상급 기관은 라이프치히 시의회와 토마스학교 관리자인 교장이었다.
시의회는 바흐의 음악에 직접 개입했다. 1724년 요한수난곡을 초연했을 때 보수적인 의회는 서곡이 이탈리아 오페라처럼 너무 튄다고 비판했고, 바흐는 좀 더 종교적인 분위기의 둘째 버전을 내놓아야 했다. 이런 간섭이 창의적인 예술가에게 스트레스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바흐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의회와 직접 다투기보다 시의 통치기관인 드레스덴의 작센 왕실을 움직이는 게 효율적이겠지.’ 1733년, 바흐는 나중에 ‘b단조 미사’로 불리는 미사곡의 키리에와 글로리아 악장을 완성해 드레스덴 궁정에 헌정했다. 선제후에게 바치는 청원서에 이렇게 썼다. “이것으로 저를 폐하의 보호 아래 품어주소서. … 부당하게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 궁정 카펠마이스터 칭호를 하사하시어 이를 명하는 문서를 명령으로 나타낸다면 모든 부당함은 일거에 사라질 것이며….” 즉 바흐는 시의회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무기로 궁정 칭호를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왕실은 3년이 지나도록 답을 주지 않았다.
1736년, 이번에는 토마스학교 교장이 바흐를 도발했다. 교장은 토마스합창단의 제1조교를 마음대로 바꿔버렸다. 저학년 학생에게 지나친 체벌을 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합창단 제1조교 임명은 칸토르의 고유 권한이었다. 교장과 바흐는 원래 사이가 좋았는데 이 사건으로 적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바흐는 그해 9월 옛 청원을 다시 추진했다. 드레스덴에 주재하던 러시아 외교관 카이저링크 백작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백작은 바흐에게 수면제용 음악을 부탁해 골드베르크변주곡을 후세에 남기는 데 공헌한 바로 그 인물이다.
두 달 뒤 바흐는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드레스덴 궁정은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청원에 따라 그가 훌륭한 실력을 갖고 있으므로 궁정 카펠레의 작곡가 칭호를 하사하노라.” 드디어 바흐는 ‘궁정 작곡가’라는 갑옷을 입었고, 그것은 싸움에서 결정적 무기가 되었다. 시의회도 교장도 더 이상 감 놔라배 놔라 하지 못했다. 바흐는 라이프치히에서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b단조 미사는 서양음악의 최고봉으로 꼽히지만 시작은 바흐의 명함을 위한 청원용이었다. 그러나 바흐는 원하는 것을 얻고 나서도 미사곡을 완성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키리에와 글로리아를 잇는 크레도, 상투스와 아뉴스 데이까지 작곡은 그가 운명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그것은 비록 악보가 벼슬을 얻기 위한 도구로 쓰였을지라도 작곡가의 가슴속에서는 자신이 평생 지은 방대한 교회음악의 핵심을 추려내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b단조 미사는 연주에 두 시간이 걸리는 대작이다. 전곡을 들으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맨 마지막 ‘아뉴스 데이’를 들어보길 권한다. 헤르타 퇴퍼나 자넷 베이커 같은 인류 문화재급 알토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특정 종교를 뛰어넘는 위안을 얻는다. 가사는 짧지만 기독교의 정수가 담겨 있다. “하나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평화를 주소서(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 miserere nobis. Dona nobis pac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