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엇을 먹느냐는 오로지 개인의 욕망이나 요구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의 욕망조차 우리를 둘러싼 세계, 즉 우리가 공급받는 식품의 양과 가격, 광고를 통해 주입받는 음식 이야기에 따라 형성된다.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음식에 대한 이런저런 욕망을 학습한다.”
세상에 먹는 일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오죽하면 조선시대에는 “밥이 백성의 하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때보다 먹을거리가 풍부해진 오늘날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먹방의 인기는 10년 가까이 각종 채널을 장악했고, 덩달아 장삼이사의 맛집 기행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음식은 찰나의 만족이 아닌 삶을 위로하고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그 무엇이다.
음식 칼럼니스트 비 윌슨의 <식사에 대한 생각>은 현대인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식탁의 명암을 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전례 없는 풍요 속에서 현대인의 식탁이 오히려 빈곤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먹을 것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시기는 없었다. 사냥하던 사람들은 목숨을 걸어야만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구 반대편에서 생산되는 갖가지 식재료를 싼값에 먹는 시대다. 신토불이身土不二는 이제 낯선 말이 될 지경이다. 이런 세상을 사는 우리를 일러 저자는 “먹는 것에 쫓기게 된 첫 번째 세대”라고 주장한다.
인류 삶의 질은 점점 높아지고, 먹을 것도 풍족하다. 문제는 그와는 반대로 “식단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연은 이렇다. 건강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영양 전문가들은 당뇨에는 뭐가 좋고, 고혈압에는 뭐가 좋다고 말한다. 열거한 ‘뭐뭐’만 먹고 살면 마치 불로장생不老長生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다. 홈쇼핑 등에 등장하는 온갖 식재료는 또 어떤가. ‘안 먹으면 손해’라는 기분마저 들지 않던가. 전문가 의견과 광고에 현혹된 사이 “오히려 품절되는 것은 집에서 요리한 평범하고 일상적인 식사”라고 저자는 말한다.
식사 시간은 “먹는 것에 쫓기게 된 첫 번째 세대”인 우리를 옥죄는 가장 큰 문젯거리 라고 할 수 있다. 1900년대 미국인들은 1년 평균 2천7백 시간 일했지만, 2015년에 들어서는 평균 1천7백90시간 일했다.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식사 시간은 더 늘어났을까. 아니다. 미국인들의 점심 식사 메뉴는 대개 햄버거나 샌드위치이고, 그마저도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혼자 먹을 때가 많다. 점심시간이 어림잡아 2시간이라던 유럽 사회도 이제 그런 호사는 옛말이 되고 있다. 저자는 식사 시간이 “하루의 패턴과 의미를 부여하는 시간이 아니라 근무를 방해하는 시간”으로 변했다고 말하는데, 기술이 발달하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나타난 기현상이라고 강조한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어들었음에도 우리는 손안의 세상 스마트폰으로 하루 종일 일거리를 붙잡고 있다. 밥 먹을 때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우리는 ‘식사에 대한 생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식사에 대한 생각>은 음식 혹은 식사를 매개로 한 역사서라고도 할 수 있다. 인류가 수렵·채집하던 시절 전해진 DNA가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하여 오늘 우리는 음식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풍요의 식탁을 대하는 오늘 우리의 마음을 점검하고자 한다면 <식사에 대한 생각>이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