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기다리는 여인은 베를 짠다. 날실과 씨실을 한 올 한 올 엮어나가는 행위에는 간절한 기원과 함께 정념情念이 배어 있다. 그 풍경은 최초의 서양 고전에 실려 있고, 조선 선비들이 사랑한 노래의 첫머리도 장식했다.
서양 고전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다.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전쟁에 출전해서 20년째 돌아오지 않는다. 전쟁은 이미 10년 전 그의 ‘목마 지략’으로 끝이 났다. 트로이는 함락됐고, 그리스군은 전리품을 가득 싣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한데 오디세우스는 10년째 지중해를 헤매고 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귀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는 항해 중포세이돈의 아들 외눈박이 거인을 죽인 적이있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서쪽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 이타카의 왕이다. 그가 없으니 권력과 재산, 여전히 매력적인 왕비를 탐내는 무리가 꼬여든다. 모든 것을 차지하는 방법은 왕비 페넬로페와 결혼하는 것이다. 구혼자들은 허구 한 날 왕궁에 모여 자기들 중 한 사람을 선택해 재혼하기를 강요한다. 그러나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편이 올 때까지 버텨야했다. 지모智謀의 인간 오디세우스의 짝답게 그녀는 꾀를 내서 졸라대는 구혼자들에게 말했다. “시아버지의 수의壽衣를 다 짤 때까지만 기다려주시오.”
페넬로페는 방 한가운데 베틀을 놓고 길쌈을 한다.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위해 도리를 다하는 모습을 시위하듯 연출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 밤에는 아무도 몰래 다시 실을풀었다. 그러기를 무려 3년, 오디세우스는 여전히 소식이 없고 페넬로페는 지쳐간다.
이 땅의 베 짜기는 ‘여창가곡女唱歌曲’에 등장한다. 가곡은 조선 선비의 음악이다. 뜻밖에도 남성의 나라 조선에 여성이 부르는 가곡이 따로 있었다. 유장하기 이를 데 없는 열다섯곡 노래집 첫머리에 베 짜는 풍경이 나온다.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구십삼춘九十三春에 짜내느니/ 나의 시름/ 누구서/녹음방초綠陰芳草를 승화시勝花時라 하던고.’
때는 초여름이다. 여인이 방에서 홀로 길쌈을 한다. 창밖 버드나무 가지는 물이 올라 늘어지고, 꾀꼬리는 속 모르고 노래한다. ‘봄 석달 다 흘러갔는데 나는 시름겹게 베만 짜고 있네. 누가 말했나, 녹음 드리우는 초여름이 꽃 피는 봄보다 좋다고.’
가곡에 일생을 건 성악가 강권순은 전통 창법으로 여창가곡을 불러 <천뢰天籟-하늘의소리>라는 음반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그녀는 <지뢰地籟-땅의 소리>라는 음반을 다시 내면서 베 짜는 장면에 해석을 가했다. 길쌈하는 여인의 속마음을 들여다본 것이다. 베틀에 앉아 임을 기다리는 그녀가 딱해 누군가가 립 서비스를 했다. “신록 예쁜 초여름이 꽃 피는 봄보다 나아. 그때 오실 테니 기다려봐.”
여인은 그 말을 의지 삼아 베를 짜며 꽃 피는 봄날 구십 주야를 보냈다. 하지만 임은 소식조차 없다. 남자가 오지 않으리라는 느낌이 확신으로 바뀌자 가슴속에서 뜨거운 게 치밀어오른다. ‘뭐, 시퍼런 풀만 우거진 여름이 꽃 피는 봄철보다 낫다고?’
강권순은 노랫말 끝에 “거짓말”이라고 중얼거리며 구구단을 빠른 속도로 왼다. 걸쭉한 욕설을 퍼붓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으니 대신 읊는 게 구구단이다. 강권순의 해석에 따르면 우리의 베 짜는 여인은 기다림을 보상받지 못했다. 떠난 사랑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것이다.
페넬로페는 어찌 되었을까. 베를 짰다가 다시 푸는 눈속임은 3년이나 계속되었으나 결국 탄로 나고 만다. 더는 버틸 수 없게 된 페넬로페는 한 명의 구혼자를 택해 결혼하려고 한다. 그 순간 남편 오디세우스가 돌아와 구혼자들을 소탕하고 둘은 재결합한다. 페넬로페의 20년 기다림이 보상을 받는 순간이다.
나는 베틀에 앉아 지쳐가는 조선 여인에게 더 기다려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그리운 임이 바쁜 걸음으로 돌아오고 있을 줄 어찌 아는가. 오디세우스는 지중해를 떠돌며 여러 여인의 유혹에 ‘시달렸다’. 여신 키르케, 요정 칼립소, 공주 나우시카와 차례로 만나는 관능적 여정이었다. 그들은 오디세우스를 집요하게 붙잡았지만 이타카의 왕은 모두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강권순은 우리 정가를 유쾌하게 재해석했다. 다만 베틀에 앉아 구구단을 욕 삼아 읊어대는 여인이 가련하다. 그녀에게 ‘사랑은 다시 온다’고 속삭여주고 싶다. 그런데 아뿔싸! 그 말이또 한 번의 허망한 립 서비스가 되면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