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순간순간이 선물이다
어떤 선물은 인생을 바꾼다
기억에 남는 첫 선물은 LP 음반,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친구가 건넨 선물이다. 조앤 바에즈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담긴 <솔밭 사이로 흐르는 강물(The River in the Pines)>이었다. 수백 번 들었는데 아직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선물 받았을 때 불행히도 나에게는 턴테이블이 없었다. 그러나 차마 자존심 탓에 그 친구에게 말하지 못했다. 선물 받은 음반을 손에 들고 학교 앞 고개를 걸어 넘어가는데, 바람 소리에 섞인 산비둘기 울음이 유난스러웠다. 이 선물은 실패였을까? 잘못 배달된 편지 같은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덕분에 나는 음악 세계 자체를 선물 받은 셈이다. 몇 달 후 나는 아르바이트로 번 과외비를 살뜰히 모아 내 방에 작은 오디오를 들였다. 내 돈 주고 산 첫 번째 전자 기기였다. 당시 한 학기 등록금에 가까웠으니 꽤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나둘 음반을 사 모으고 도서관에서 음악에 관련된 책을 빌려 읽었다. 그리고 밤마다 라디오 음악 방송을 들으며 연주에 빠져들었다. 아, 언어 너머 세계가 참 깊구나! 음악의 세계에 들어서자 나날이 감동이었다. 문자로 쉽게 옮길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답게 말하는 법을 비로소 실감했다. 조금이나마 음악을 엿들을 줄 알게 된 것은 친구에게 선물 받은 LP 음반 한 장 덕분이다. 평생의 우정도 덤으로 말이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선물은 인생을 바꾼다.
선물은 대가 없는 건넴이다
서양에서 선물(gift)의 원형인 게브(geb-)는 ‘손에 움켜쥔 물건을 타자에게 넘기는 일’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송送이라는 글자로 그 뜻을 표현했다. 送은 ‘두 손으로 물건을 받들어 올리는 모습’을 형상화한 한자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선물은 자신이 가진 것을 공손하게 남한테 주는 일 또는 물건을 뜻한다. 선물은 주는 사람, 받는 사람, 주고받는 물건이 삼각형을 그릴 때 나타난다. 교환이나 거래와 별다르지 않게 느껴지지만 교환이나 거래는 대가를 기대하는 바와 달리, 선물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선물은 전적으로 주는 것이다. 나한테 있는 것은 뭐든 괜찮다. 때때로 선물은 물건이 없어도 얼마든 전할 수 있다. 미소 한 번, 눈길 한 차례, 말 한마디, 몸짓 하나로 충분한 경우는 아주 흔하다.
<증여론>에서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말한다. “선물은 어떤 사물에 주는 사람 또는 집단의 ‘마음’을 담아 상대에게 주는 행위다.” 선물할 때 실제로 건네는 건 우아하게 포장된 물건이 아니라 나의 다정함, 나의 사랑스러움, 나의 매력, 나의 취향, 그러니까 내 마음 자체다.
선물을 고르는 일
그러나 주는 것이 마음이기에 우리는 며칠 동안 망설이고 고민하면서 선물을 고른다. 실패가 두렵기 때문이다. 선물의 종류, 쓸모, 가격 등이 상대에게 흡족하지 않을까 무서워서는 아니다. 선물을 고르기 어려운 이유는 나는 마음을 건넸는데, 상대방이 단순히 물건만 받을까 싶어서다. 마음을 담을 물건을 고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무엇이든 괜찮지만, 아무것은 안 된다. 마음을 담아 전하는 데 실패한 선물은 더는 선물이라고 일컬어지지 못한다. 무의미한 사물, 때때로 괴물에 불과하다.
물건보다 내 마음이다
선물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주는 일. 그래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 자신한테 가장 소중한 것을 줄수록 잘 선물한 것이다. 한 송이 붉은 장미든, 달콤한 향수든, 반짝이는 보석이든, 취향 담은 책이든, 좋은 선물을 찾아 헤맬 때 정작 고르는 것은 물건보다는 내 마음이다. 문제는 세상 어떤 사물도 마음보다 작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전하고 싶은 건 마음인데, 마음은 도무지 물건에 담을 수 없다. 애써 고르고 정성껏 준비했으나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 선물로는 불충분하고 모자라다. 만남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어떡하지’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은 말한다. “당신과 가장 친밀한 사람들에게 당신이 건넨 것에 무언가가 빠졌다는 걸 깨달은 적이 없는지. 그 안에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 방금 언급한 사람들, 친밀한 사람들마저 속절없이 그리워지게 하는 어떤 것.”
항상 결핍이 있다
선물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선물에는 반드시 건네지 못한 ‘무언가’가, 담지 못한 ‘어떤 것’이 들어 있다. 그러니까 선물은 주고도 아직 건네지 못한 마음이다.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미리 넘기는 미완의 행위다. 선물에는 항상 결핍이 존재한다. 나는 주었으나 충분히 주지 못했고, 건넸으나 아직 건네지 못했다. 이 선물로는 부족한 걸 알기에,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덧붙여 선물을 건네고 싶다. 받아만 준다면 더 늦기 전에, 나중에 줄 수조차 없어 속절없이 그리워하기 전에 이 마음과 이 몸, 이 생명을 내주고 싶다. 신이자 인간인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해 십자가에 매달림으로써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궁극의 선물은 자신을 모두 사랑하는 너에게 던지는 것임을. 예수는 말한다. “이것은 너희를 위해 내주는 내 몸이다.”
선물은 받은 자가 완성한다
선물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받는 사람의 반응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받는 이의 마음속에 기쁨이 움트게 하고 사랑이 넘치게 하며 정을 일으키는 순간이야말로 물건이 선물이 된다. 받는 자가 선물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읽어낼 때 비로소 주는 자와 받는 자가 하나로 깊이 이어진다. 내가 학생들 글쓰기 수업에서 자주 내주는 과제가 있다. ‘죽은 자가 보내온 선물’이 주제다. 만약 어느 날 소포가 왔는데, 10년 전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죽기 전에 마련해 보낸 작은 선물이다. 이유가 궁금했으나 상자에는 아무 편지도, 사연도 들어 있지 않다. 할머니는 왜 죽음의 대지를 건너 이 선물을 보냈을까. 부모님께 물어도 알 수 없고, 유품을 살펴도 알 수 없다. 할머니는 내게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할머니가 끝내 전하고 싶었던 말, 멀리서 울리는 그 목소리는 오직 내 안에서 상상할 수밖에 없다. 고고학자는 무덤에서 발굴한 구슬 한 알, 뼈 한 조각을 두고 이런 일을 수없이 해낸다. 물건은 말하지 않는다. 목소리는 분명히 울려오지만, 글씨가 지워진 채 전달된 편지처럼 읽을 수 없다. 물건을 선물로 만드는 건 받는 사람 몫이다. 침묵하는 사물에서 선물의 의미를 읽어야 한다. 소리가 울리는 곳은 자신의 마음이기에, 물건을 건넨 타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다면 이는 불가능하다. 어찌 보면 선물은 주는 사람을 떠올리고 자신을 돌이키면서 스스로 가장 멋진 이야기를 써나가는 셈이다. 선물이란 받은 사람을 존중해 자기 마음을 선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선물은 결국 둘을 서로의 마음을 읽는 존재로 엮어준다.
모든 것이 신의 선물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선물의 형태를 취한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어느 날 불쑥 던져지고, 우리는 자신을 재료 삼아 최선을 다해 그 의미를 읽어야 한다. 헤르만 헤세에 따르면 가장 값진 선물은 “바람이 모래 위에 써놓은 것”과 같다. 그것은 “구름, 꽃, 비눗방울,/ 불꽃놀이, 아이들의 웃음,/ 유리 거울 속 여자의 시선/ 그리고 많은 경이로운 것들”(헤르만 헤세, ‘모래 위에 쓰인’)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것은 아름답고 매혹적이며 값지고 황홀하지만, 단지 ‘한 번의 입김이고 전율’, ‘잠깐의 우아함’이며 발견하자마자 사라지고, 한순간 지속되는 바람의 흩날림일 뿐이다.
인생은 순간순간이 선물이다. 그러나 선물을 선물로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극히 예민한 마음만이 우리 곁을 수없이 스치는 이 모든 것을 읽어 기쁨의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채로운 선물로 가득한 생명의 삶을 살 것인가, 무채색 사물에 둘러싸여 죽음의 삶을 살 것인가. 사방을 둘러보라. 모든 것이 신의 선물이다.
writer Jang Eunsu 출판 편집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