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모든 것이 시가 되다
좋은 호텔은 여행자를 시인으로 만든다.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서,
가장 흔한 사물에서, 정물의 깊은 삶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이끈다.
" 일찍이 플로베르가 드러낸 엠마적 갈망이
내 안에 생생히 살아 있는 것이다
두근대는 충동은 나를 여행으로 이끈다."
플로베르의 호텔, 위반과 욕망이 분출하다
중고생 시절, 남산도서관 가는 길에 신라 호텔, 하얏트 호텔 앞을 지나칠 때면 기이한 환상에 빠지곤 했다. 장엄하고 화려하게 꾸며진 호텔은 아무나 출입 못할 현대의 신전처럼 느껴졌다. 앨리스 발밑에 놓인 구멍처럼, 호텔 안으로 일단 들어서면 왠지 내 삶이 통째로 바뀔 듯한 기분에 전율했다. 들어 가고 싶고, 들어갈 수 없고, 들어가선 안 된다는 욕구가 충돌하면서 머릿속에 무진장한 이야기를 공급했다.
소설이나 영화가 상상을 부추겼다. 작품에서 호텔은 살인과 범죄가 숨 쉬듯 일어나는 공포와 타락의 온상이고, 도박과 파티가 밤낮으로 열리는 낭비와 쾌락의 장소이며, 도망친 연인들이 금지된 사랑을 불태우는 위반과 해방의 무대였다.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 나오는 불로뉴 호텔을 떠올려 보라. 주인공 엠마는 “막연하고 불길한 그 무엇”에 쫓기면서 연인 레옹과 정염을 태운다.
“환멸이 지워지면 곧 새로운 희망이 솟아났고, 엠마는 더 거센 정념으로 뜨거워지고 더 탐욕에 빠져 그를 다시 찾아갔다. 그녀는 옷을 거칠게 확확 벗었고, 가느다란 코르셋 끈을 마구 잡아 뜯었다. 그리고 창백해진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의 가슴을 파고들어 오랫동안 몸을 떨었다.”
호텔은 도덕적 절제와 금기로 가득한 인생 규칙을 파고 들어 한순간에 파괴한다. 저 악마적 충동, 막연하고 불길한 무엇이 과연 우리 심장에는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호텔은 비루한 현대인에게 무한한 매력을 일으키는 곳이면서 보통 사람은 감히 범접 못할 곳이기도 하다. 우리 일상에서 호텔처럼 한없는 모험의 열망과 함께 끔찍한 파멸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중 공간은 드물다.
마음에 한번 뿌리박힌 이미지는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식사나 휴식, 사업이나 여행 등을 위해 자유롭게 드나들기 시
작한 후에도 여전히 나는 호텔만 보면 마음이 두근댔다. 쾌적하고 편리해서 자주 이용하기에 범상한 곳임을 빤히 알면서도 호텔 앞에 서면 일상의 쳇바퀴가 무너지면서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일찍이 플로베르가 날카
롭게 드러낸 바 있는 엠마적 갈망이 내 안에 생생히 살아 있는 것이다. 두근대는 충동은 나를 여행으로 이끈다.
호메로스의 호텔, 나그네를 맞아 환대하는 곳
여행의 출발은 늘 호텔을 고르는 일에서 시작한다. 숙소는 낯선 도시와 처음 접촉하는 곳이자 마지막까지 몸담는 곳이다. 역이나 공항이 스치는 곳이라면 숙소는 며칠을 머무르는 곳이다. 무게를 비교할 수조차 없다. 숙소의 기억이 여행의 인상을 결정한다. 아무리 좋은 걸 보고 맛난 걸 먹더라도 잠자리가 불안하고 불편하면 여행은 엉망이 된다. 그래서 며칠씩 숙박 사이트를 들락대고 여행 책을 뒤적이면서 부산하게 몸 누일 곳을 고민한다.
유명한 무국적 체인 호텔은 대개 기대를 배반하지 않으나, 여행지 역사와 문화가 담긴 지역 호텔이나 저택을 더 선호한다.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곳일지라도 오래 살 집을 선택하듯 고르는 재미를 즐긴다. 어찌 보면 이때가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상상은 언제나 현실을 능가한다.
그러나 물리적 조건만으로 좋은 호텔이라 할 수는 없다. 한이경의 <호텔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따르면, 호텔은 “방문객, 손님, 낯선 이에게 친절하고 편안한 숙식을 제공하는 곳”으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손님맞이 장면에서 그 기원을 볼 수 있다.
그리스엔 크세니아xenia(환대)의 법칙이 있었다. ‘손님을 후하게 대하는 관습’을 뜻한다. 나그네가 음식과 잠자리를 요구할 때 주인은 조건 없이 그를 맞아들여 대접해야 했다. 성경에도 나온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하게 맞이했다.”
신은 언제나 여행자나 이방인의 얼굴을 하고 한밤중에 문을 두드린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초라한 행색으로 변신해 여행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마을을 방문했을 때, 마을 사람 대부분은 그들을 박대했으나 바우키스와 필레몬 부부는 이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제우스는 이 부부에게 큰 상을 내리고, 다른 이들을 벌주었다.
호텔hotel이라는 말에도 환대의 뜻이 들어 있다. 호텔, 호스텔hostel, 호스피탈hospital(병원)은 모두 호스트host(주인)에서 유래했다. 호스트는 본래 손님 맞는 주인의 자질과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손님을 잘 대우하고 보살핌’이라는 뜻이었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환대의 윤리가 있었다. 호텔은 나그네가 보살핌을 받으면서 편안히 휴식하는 곳이었다. 환대 없는 호텔은 들보 없이 세운 집이나 다름없다. 가장 좋은 호텔은 손님을 정성껏 환대하는 호텔이다.
프루스트의 호텔, 낯선 곳에서 눈뜨는 즐거움
여행지 호텔에 가면 낯선 안락함이 느껴진다. 남의 집인데 우리 집 같은 편안함과 우리 집인데 남의 집 같은 어색함이 동시에 몰려온다. 아침에 눈뜨는 풍경부터가 평소와 전혀 다르다. 울산의 한 바닷가 호텔에서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커튼이 살짝 열려 있었는데, 틈으로 들어온 햇빛이 방 안에 가득했다. 바다를 붉게 물들이면서 태양이 이글이글 떠오르고 있었다. 발코니로 나가 일출을 즐기면서 문득 여행의 의미를 실감했다.
여행은 낯선 풍경과 낯선 감각 속으로 내던져지는 일이다. 안면도 바닷가 호텔의 스파에서 장엄한 노을에 갇혔던 경험이나 스페인 말라가의 벽색 바다를 바라보면서 새벽 산책을 즐겼던 기억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풍경은 호텔을 고를때 무엇보다 중요하다. 호텔 자체가 최고의 관광지여야 한다.
그러나 호텔에서는 특별한 풍경이 아니더라도 사소한 사물 하나하나가 모두 신기해 보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마르셀 프루스트는 낯선 호텔에서 우리 감각이 어떻게 깨어나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아무렇게나 놓인 칼, 식탁 위에 뒹구는 헝클어진 냅킨, 그 위에 떠 있는 자그만 노란 햇살 한 조각, 반쯤 물이 차 있는 잔을 통해 드러나는 고급 유리잔의 형태, 응축된 하루와 같은 잔 바닥, 빛을 받아 반짝이는 술, 조명에 따라 변신하는 액체들, 계산대에서 녹색에서 푸른색으로 푸른색에서 황금색으로 익어가는 자두들, 깨끗한 식탁보가 깔린 테이블 위에 진귀한 빛으로 반짝이는 물 고인 싱싱한 굴들….”
호텔 식당에서 프루스트는 평소 아무렇지도 않게 보았던 사물이 새롭게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 놀랍게도 모든 것 안에는 아름다운 시가 숨어 있다! 그는 “아름다움이 존재 할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에서, 가장 흔한 사물에서, 정물의 깊은 삶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기쁨을 맛본다.
좋은 호텔은 여행자를 시인으로 만든다. 감각의 권태와 인식의 습관을 몰아내고 생생한 삶을 되살려준다. 호텔에서 가구, 커튼, 벽지 등 주변의 모든 것은 ‘낯선 물건의 지옥’이 된다. 우리를 충격에 빠뜨리는 이 감각의 향연은 잘 수용하면 더 신비하고, 더 풍요롭고, 더 눈부신 체험의 원천이 되어 자기 얼굴을 재발견하는 힘을 준다. <안톤, 부츠를 신어>에서 빅토리아 토카레바는 주인공 레나를 호텔 거울 앞에 세운다.
“레나는 큰 눈을 가진 여자의 타원형 얼굴을 호텔 거울로 본다. 뭔가 슬픔이 보태졌다. 거무스름했다. 초췌했다. 그러나 가을의 나뭇잎도 아름답다. 그것 역시 꽃병에 꽂아놓을 수 있고, 집 안을 장식할 수 있다. 삶은 계속될 것이다.” 자신을 새로 발견하고 삶을 계속 이어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호텔에 가는 진짜 이유가 아닐까. 코로나 팬데믹이 잠정적으로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좋은 호텔을 골라 무뎌진 자신을 되살리는 여행을 떠날 때가 되었다.
"좋은 호텔은 여행자를 시인으로 만든다. 감각의 권태와 인식의 습관을 몰아내고 생생한 삶을 되살려준다."
writerJang Eunsu 출판 편집인, 문학평론가
editor Kim Minh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