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또 하나 꺼졌다. 경당經堂은 짙은 어둠에 잠겼다.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천장의 그림이 어둑해졌다. 처음에 둥근 천장을 올려다 보았을 때 그림 속 사람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릴 것 같았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니 그림은 성경 창세기의 내용을 생생히 묘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천장 가운데의 두 인물이 손가락을 가까이 대는 그림이 유난히 시선을 끌었다. 성경과 좀 다르지만, 소년은 그것이 하나님의 아담 창조라고 생각했다.
촛불이 하나 더 꺼졌다. 경당은 이제 어둠이 지배하는 공간이 되었다. 천장 아래 아치창문을 통해 로마의 푸른 하늘빛이 희미하게 비쳐들었지만, 천장과 벽의 압도적인 그림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움직였다. 교황과 추기경들이었다. 그들이 제단 앞에 무릎을 꿇자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5성부聲部 합창단과 4성부의 솔로 가수들이 반주 없이 노래를 불렀다. 천천히 흐르는 라틴어 가사는 소년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제 잘못을 말끔히 씻어주시고/ 제 허물을 깨끗이 없애주소서/ … 기쁨과 즐거움을 돌려주시어/ 바수어진 뼈들이 춤추게 하소서.” 소프라노의 높은 C 음이 화살처럼 허공을 가르자 소름이 돋았다. 음악이 끝났다. 종교적 열정이 일렁이던 공간은 고요한 침묵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소년의 눈은 어둠 속에서 반짝 빛났다.
소년은 모차르트다. 1770년 4월 11일, 부활절 주간 수요일에 모차르트 부자는 로마에 도착했다. 그는 여섯 살 때부터 아버지 레오폴트의 손에 이끌려 유럽을 누비며 신동의 묘기 대행진을 이어왔는데, 이탈리아는 처음이었다. 15개월간 40개 도시를 방문하는 빡빡한 여정이었다. 부활절 주간에 맞춰 로마를 방문한 것은 가톨릭 신자로서 교황이 집전하는 의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부자는 그날 저녁 교황 관저의 시스티나 경당에서 진행된 테네브라에TENEBRAE에 참석했다. 테네브라에는 부활절 주간의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올리는 의식으로, 초를 하나씩 끄면서 어둠 속에서 기도를 마친다.
이 전례의 마지막에 옛 교황청 작곡가 그레고리오 알레그리(1582~1652)의 ‘미제레레’가 연주된다. 사람들은 1년에 한 번 이곳에서만 연주되는 음악을 듣기 위해 먼 곳에서 찾아왔다. 그해 14세의 모차르트는 고된 여행으로 저녁 식탁에서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날 밤 어둠 속에서 들려온 신비한 음악은 그의 뇌리에 생생하게 각인됐다.
숙소로 돌아온 모차르트는 오선지에 음표를 쏟아냈다. 교황의 예배당에서 울린 음악이 모차르트 부자의 여관방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아들이 순전히 기억에 의지해 ‘미제레레’ 악보를 복원해내자 레오폴트는 깜짝 놀랐다. 10분이 훌쩍 넘는 9성부 음악을 통째로 암기하다니….
원제는 ‘미제레레 메이 데우스MISEREREMEI DEUS’로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란 뜻이다. 가사는 구약성서에서 가져왔다. 다윗 왕은 휘하 장수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에게 반해 그와 동침하고는 우리아를 위험한 싸움터로 보내 죽게 한다. 하나님은 이에 노해 큰 벌을 내리려 한다. 비로소 죄를 깨달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회개하는데, 그 내용이 ‘미제레레’의 텍스트를 이룬다.
그런데 이 음악을 암기하는 것은 위험한 짓이었다. ‘미제레레’는 1638년 작곡된 이래 교황청에 의해 외부 유출이 엄격히 금지되었다. 연주는 시스티나 경당 내부로 제한되었고, 악보 사본을 만들면 파문에 처해질 수 있었다. 아버지는 걱정했지만 아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금요일에 다시 시스티나 경당에 가서 ‘미제레레’를 들으며 기억이 정확한지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악보를 완성했다. 경당을 드나들 때 악보는 모자 속에 숨겼다. 이렇게 1백30년 이상 교황청에 봉인돼 있던 알레그리의 음악은 세상 빛을 보게 된다.
교황 클레멘스 14세는 머지않아 교황청 음악이 도난당했다는 걸 알게 된다. 레오폴트가 아들의 홍보 목적으로 넌지시 그 사실을 교황청에 흘렸는지도 모른다. 교황은 그의 작전에 말리기라도 한 듯 모차르트를 파문하는 대신 황금박차 훈장을 달아준다. 죄를 묻기보다는 재주를 좋은 일에 쓰라고 격려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오늘날 우리는 연주 단체 골라가며 ‘미제레레’를 듣는다. 모차르트의 불가사의한 기억력과 대담함, 교황의 관대한 처분이 아니었다면 이 음악의 존재를 알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