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 이는 마치 삶이 죽음 위에 마련된다는 말로 들리기도 할 것이다. 조상의 살과 뼈가 썩은 흙에서 자라난 작물을 먹으며 산 사람이 삶을 연명하고, 그 역시 한 줌 흙으로 화해 후손들을 살찌우는 거대한 순환 속에 우리는 살아왔다.”
어제를 기억해 오늘을 살고, 오늘을 잘 살아야 새로운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과거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언제나 중요하다. 슬프고 아픈 역사가 있다면 되풀이하지 않도록, 빛나고 기쁜 역사가 있다면 오늘에 되살려 전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체계적으로 우리 역사를 공부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최근에 출간된 다양한 역사적 관점을 소개하는 책들은 한국 역사의 진면목은 물론 잊히거나 감춰진 사건과 의미를 전해준다. 국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책을 지금 만나보자.
묘지 위에 세워진 세상,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국내편〉
카피라이터이자 작가 이희인의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국내편>은 ‘묘지’라는 키워드로 여행 인문학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이미 2019년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해외편>을 통해 묘지를 답사하며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와 당대 상황, 정치와 문화적 배경 등을 독특한 관점에서 제시한 바 있다. <세상은 묘지 위에 세워져 있다-국내편>은 근대 이후 우리 역사에 적잖은 족적을 남긴 인물들의 삶과 죽음, 그들이 남긴 시대사적 흔적을 찾아간다. 국내편이라고 하지만, 그는 서울 망우리 묘지부터 전남 땅끝은 물론 러시아 하바롭스크까지 분주히 오가며 책을 완성했다.
밤마다 공을 차는 사람들의 함성이 커다랗게 울리는 효창운동장 맞은편에 효창공원이 있다. 그곳은 해방 직후 김구 선생이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안중근 의사의 허묘도 그곳에 있다. 서거 이후 김구 자신이 몸을 누인 곳이기도 하다. 현충원이 없던 시절엔 효창원이 국가 묘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승만 정부는 효창원에 출입하는 사람을 불시 검문할 정도로 경계했고, 맞은편에 거대한 운동장도 지었다. 박정희는 김구 묘역 위에 반공투사 위령탑과 육영수 여사공덕비도 세웠다. 명칭과 관리 주체는 시도 때도 없이 바뀌었다.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유명한 작가 염상섭은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 천주교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말년에는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렸지만, 염상섭은 “매서운 현실 통찰, 치밀한 구성, 적절하고 정확한 어휘 선택, 끈질긴 묘사”로 우리나라 자연주의·사실주의 문학을 이끈 선구자였다. 저자는 염상섭 묘지 앞에서 문학적 감흥을 돋운다. “둔덕으로 올라서서 묘지를 등지고 내려다보니 연둣빛 버드나무와 분홍빛 벚꽃이 온 산에 난만했다. 긴 겨울 지나 새롭게 돋아나는 대지의 빛깔은 몽롱하게사람을 흥분시켰다. 연두는 초록보다 강했고, 분홍은 빨강보다 진했다. 봄물이 오른 공동묘지의 수풀 너머로 빽빽한 아파트촌이 우뚝 솟아 있었다.” 이 외에도 전봉준, 김옥균, 정약현등 근·현대에 크나큰 영향을 남긴 인물들의 묘지와 자취를 소개한다. “삶의 길을 물으러 나는 묘지에 갔다”는 구절처럼, 이 책은 기념관, 문학관, 생가 등 역사적 장소도 소개해 여행 가이드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