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패션 브랜드도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공간에 철학을 입히고 식음료 사업에까지 진출하고 있는 것.
최근 몇 년 전부터 럭셔리는 ‘소유하는 것’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 하이엔드 소비재 관련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의 소비 패턴은 ‘웰니스’와 ‘다이닝’으로 이동 중이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라이프스타일 분야를 강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패션 브랜드에서 가구, 벽지, 패브릭 등 공간을 채우는 리빙 제품을 선보이고, 더 나아가 카페, 레스토랑, 호텔까지 먹고 마시고 경험하는 공간을 통해 채널을 다각화하고 있다. 브랜드의 미학을 공간으로 확장하며 정체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충성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새로운 세대의 높은 관심도 변화의 한 축을 차지한다.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소셜 네트워크 채널에선 핫플과 인테리어, 소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시대를 초월한 가치를 지닌 가구나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 패셔너블한 것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미 루이 비통, 구찌, 디올 등 명품 패션 브랜드가 인테리어 또는 F&B 사업에 진출해 뜨거운 관심을 받고, 럭셔리 브랜드뿐 아니라 자크뮈스, 루즈 등 젊은 디자이너들과 A.P.C., 메종키츠네 등의 브랜드에서도 식음료 사업을 하고 있다. 어떤 브랜드에서 영역을 확장하며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랄프 로렌은 이미 1983년에 ‘랄프 로렌 홈’을 론칭했다. 침구, 조명, 가구, 바닥재까지 랄프 로렌 홈 제품은 브랜드의 네 가지 시그너처 모티브인 순종 말, 뉴잉글랜드, 자메이카, 통나무 오두막집을 기반으로 일관되게 디자인하며 랄프 로렌 왕국을 굳건히 건설해왔다. 지난 6월에열린 밀라노 가구 박람회 기간 동안 랄프 로렌은 밀라노 중심부에 있는 성을 ‘팔라초 랄프 로렌Palazzo Ralph Lauren’으로 꾸미고 2022년가을/겨울 시즌 홈 컬렉션을 공개했다. 우아한 고택에 풍부한 마호가니 마감재와 앤티크 황동, 광택을 낸 가죽, 타탄, 페이즐리, 지브라 프린트를 조합한 가보 같은 가구들을 전시하고, 안뜰에서는 미국의 전통 음식 메뉴와 오후 다과 또는 식전주를 제공하며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펜디 역시 라이프스타일 사업에 일찌감치 뛰어들었다. 펜디가문의 다섯 자매 중 한 명인 안나 펜디와 알베르토 비나텔리는 1988년에 펜디 까사를 론칭해 패션뿐 아니라 프리미엄 가구 시장에서의입지를 탄탄히 다졌다. 펜디 소파는 엔트리 레벨이 3천만원을 호가하지만 인기가 매우 높다. 베르사체는 1992년에 패브릭, 도자기, 식기 등으로 홈 데코 시장에 진출해 침대, 소파, 조명 등 가구까지 라인을 확장해간 케이스다. 바로크와 그리스 모티브를 사용하고 블랙, 골드, 화이트를 과감하게 믹스하며 실크, 벨벳 등의 리치한 소재를 많이 사용해 메두사 로고만큼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공간을 연출한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고급 호텔, 전용 비행기와 요트까지 패션을 무한 확장해 영리하게 사업화한 디자이너다. 1975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를 설립한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1998년 리빙 및 호텔 사업에까지 진출했다. 2000년에 론칭한 아르마니/까사는 디자이너가 생각하는완벽한 주거 공간, 즉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둘러싸여 있으면서 친밀하고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구현했다. 2000년에 나온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를 보면 조르지오 아르마니 슈트를 즐겨 입는 뉴욕 여피족이자신들이 입는 옷뿐 아니라 공간까지 얼마나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어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2010년 두바이, 2011년 밀라노에 ‘스테이 위드 아르마니Stay with Armani’ 호텔을 열어 우아하면서절제된 미학과 서비스를 제공했다.
홈 컬렉션의 루키 브랜드
에르메스는 2011년에 처음으로 홈 컬렉션을 세상에 내놓았다. 첫 번째 제품은 이탈리아의 거장 디자이너 엔조 마리, 세계 3대 가구 디자이너로 칭송받는 안토니오 치테리오, 에르메스의 인테리어를 도맡아온 파리의르나뒤마건축사무소RDAI와 함께 제작한 의자와 벤치였다. 이후에도 에르메스의 명성에 걸맞은 콜라보를 통해 최고의 제품, 아니 작품을 내놓고 있다. 직각과 오벌 형태의 상판을 조합한 ‘히포드롬 데르메스Hippodromed'Herme`s’ 커피 테이블, 테이블과 의자와 안락의자를 조합한 세트 ‘에킬리브르 데르메스E´quilibre d'Herme`s’ 등은 파노말 스튜디오, 재스퍼 모리슨 등 유명 레이블과 함께 제작한다.
루이 비통은 2012년, 여행을 테마로 한 한정판 가구 컬렉션 오브제노마드로 리빙 분야에 진출했다. 당시 ‘여행 예술’이라는 주제로 디자인마이애미에서 접이식 스툴, 침대 트렁크, 데스크 트렁크, 해먹 등을 선보였다. 이후 루이 비통은 전 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에게 노마드적인 삶을 탐구하고 재해석할 것을 의뢰하는 방식을 통해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을 완성해왔다. 스페인의 파트리샤 우르퀴올라Patricia Urquiola, 홍콩의 안드레 푸Andre´ Fu, 스위스의 아틀리에 오이Atelier O , 이란-프랑스의 인디아 마다비India Mahdavi, 네덜란드의 마르셀 반더스Marcel Wanders, 미국의 앤드루 쿠들레스Andrew Kudless, 브라질의 페르난도&움베르토 캄파냐Fernando&Humberto Campana 형제 등 유명 디자이너들이 루이비통 오브제 노마드와 협업했다.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가구는 모두 한정판이지만 루이 비통의 ‘마이 크리에이션My Creation’ 서비스에서 원하는대로 맞춤 제작할 수 있다. 루이 비통은 지난 6월 7일부터 19일까지 열린<루이 비통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 전시를 통해 국내에서도 오브제 노마드 컬렉션을 소개했다. 스위스의 세계적인 건축 듀오 헤르조그&드뫼롱 Herzog&de Meuron이 전시 공간을 설계해 볼거리를 더했다.
2017년에 리빙 제품을 출시한 구찌의 홈 데코 라인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철학이 그대로 담겼다. 의자, 쿠션, 테이블, 양초 등에 이르기까지 가구와 소품은 구찌로고와 컬러풀한 플라워 패턴을 빼곡하게 장식적으로 담아내 공간 장식에 대한 유연하고 개성 있는 접근을 보여준다. 기성복 컬렉션에서 사용한자카드, 벨벳 등 패브릭을 공유해 사용하는 것도 매력적! 최근 공개한 구찌 데코 컬렉션은 자연에 대한 애정을 플로라부터 동물 모티브까지 하우스의 강렬한 비주얼 내러티브로 담았다. 구찌 데코 캠페인에서는 새로운아이템들을 토피어리 정원 안에 배치해 평화로운 풍경을 연출했다.
하이주얼리 브랜드 크롬하츠에서도 라이프스타일 제품을 만나볼 수있다. 크롬하츠는 케첩과 머스터드 용기, 뒤집개, 포크, 집게, 나이프, 도마등 주방용품을 만들어 선보였다. 이른바 ‘크롬하츠 바비큐 컬렉션’으로 크롬하츠 오너인 로리 린 스타크가 요리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만들었다고. 주방은 물론 캠핑장에서 시선 강탈 아이템이 될 듯하다. 이후크롬하츠는 실버 소재의 덤벨도 선보였다. 덤벨의 무게는 각각 1.36kg으로 양 끝에 크롬하츠의 시그너처 무늬가 각인된 것이 특징이다.
식음료 사업은 고객과 브랜드 사이에 좀 더 가볍고 즐거운 접점을 만들어준다. 브랜드 입장에서는 수익을 다각화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안이기도! 다녀간 사람들이 소셜 네트워크 채널에 올리는 사진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어 홍보 효과 역시 훌륭하다. 이미 베르사체, 불가리, 샤넬, 프라다, 랄프 로렌, 버버리, 생 로랑, 휴고 보스가 식음료 사업에진출한 바 있다. 2006년 에르메스 도산 파크를 오픈하며 선보인 카페 마당은 아직까지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카페에서 사용하는 모든 커트러리,식기, 테이블 웨어, 소파와 테이블까지 모두 에르메스 제품이니 브랜드의‘찐팬’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볼 만하다. 최근에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 브라이틀링이 플래그십 부티크 타운하우스 한남을 오픈하고 브라이틀링 카페와 키친을 만들었다. 특히 키친은 전 세계 최초로 오픈한 매장이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F&B 매장 오픈으로 가장 화제를 모은 것은 역시디올, 구찌, 루이 비통이다. 2015년 오픈한 디올의 청담동 플래그십인 하우스 오브 디올 5층에는 간단한 브런치부터 애프터눈 티까지 즐길 수 있는 카페 디올이 있다. 레시피는 프랑스 현지에서 받아 오며, CD 로고를 넣은 카페라테가 시그너처 메뉴. 모든 식기는 디올 제품이다. 카페 디올은 국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명품 F&B 중 하나로 손꼽힌다. 구찌의 이태원 플래그십 스토어인 구찌 가옥 6층에는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이 있다. 2018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구찌 가든 1호점을 오픈한 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 일본 도쿄 긴자에 이어 전 세계 네 번째로 선보인 레스토랑이다. 세계적인 셰프 마시모 보투라가 네 지점의 메뉴를 모두 관리한다. 구찌스러운 공간도 매력 있지만 미쉐린 셰프의 명성에 걸맞게 맛과 가성비까지 훌륭하다는 후기가 제법 많다.
루이 비통은 청담동 루이 비통 메종 서울 4층에 피에르 상 앳 루이 비통을 오픈했다. 루이 비통은 프랑스와 일본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만 레스토랑은 한국이 최초였다(이후 생 트로페즈에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한국계 프랑스인 셰프 피에르 상 보이에Pierre Sang Boyer가 총괄 셰프. 루이 비통 레스토랑은 루이 비통 메종 서울에서 열었던다양한 문화 예술 행사의 일환으로 한시적 팝업 형태로 선보였지만 정규 매장으로 오픈할 계획도 있다고.
랄프 로렌에서 운영하는 랄프스 커피도 국내에서 볼 수 있을까?랄프 로렌은 1999년 시카고 RL 레스토랑을 시작으로 2010년 파리 랄프스, 2015년 뉴욕 폴로 바 및 랄프스 커피를 오픈했다. 현재는 뉴욕, 런던, 파리 등에서 랄프스 커피를 운영하고 있는데 조만간 국내에도 상륙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다.
최상위 럭셔리인 ‘우버 럭셔리Uber Luxury’부터 대중적인 ‘럭스포퓰리스Lux Populis’까지 공간과 경험을 통해 누릴 수 있는 럭셔리 영역이 다양해지고 있다. 그만큼 새로운 세대는 라이프스타일 제품이 패션처럼 가볍게 누릴 수 있고 작지만 일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미래의 럭셔리 산업은 상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와야 할 것”이라며 “LVMH 그룹은 두 분야 모두에 위치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LVMH 그룹은 2018년 호텔 기업 벨몬드Belmond를 약 3조원에 인수했다. LVMH의 브랜드 중 하나인 불가리는 이미2000년대 초반부터 메리어트 호텔과 합작해 밀라노를 시작으로 런던, 두바이, 상하이, 베이징, 발리, 파리에 호텔을 오픈했다. 향후 로마, 도쿄,마이애미에도 지점을 오픈해 세계 11곳에서불가리 호텔&리조트를 경험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소유하는 것에서 경험하는 것으로, 확실히 패션의 축은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writerMyung Sujin 패션 칼럼니스트
editor Lee Da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