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30년 전 일이다. 1993년 런던에서 서쪽보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쪽 지역 중 이스트런던 그로브가Grove Street의 많은 구역이 재개발 중인 가운데, 오래된 빅토리아식 테라스 하우스 한 채가 아직 헐리지 않고 남아 있었다. 당시 동쪽 이스트엔드에서 살고 있던 화이트리드는 그로브가에서 재개발을 반대하며 홀로 집을 지켜온 주인을 3년 동안 설득해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기념비적 작품 ‘집(House)’(1993)을 제작했다. 이 작품의 제작 과정은 영상으로도 기록돼 있는데, 기록이 시작된 날짜는 1993년 7월 31일이다. 나중에 분리하기 쉽도록 표면을 매끈하게 하거나, 뼈대를 세우는 등 최소한의 작업을 하고 콘크리트를 부었다. 10일쯤 지나 모두 굳은 뒤 집 외부에 안전을 위한 비계를 세우고, 원래의 집 외장재를 망치로 부숴가며 뜯어냈다.
마침내 알맹이만 남은 상태로 10월 24일 근처 공터로 옮겨 하나의 공공 미술 작업으로 설치했다. 꽃무늬 벽지와 커튼, 격자무늬 바닥 같은 삶의 흔적은 없어졌지만 문과 창문, 기둥, 계단 등의 흔적이 집의 형태를 보여준 이 작품을 사람들은 오히려 낯설게 느꼈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말한, 집의 친숙하면서도 낯설고 두려운 감정을 나타내는 ‘운하임리히unheimlich’일까. 주민들은 작품 위에 스프레이 낙서로 반감을 숨기지 않았고, 재개발을 추진하던 정부도 환영하지 않았다. 이 작품의 향후 존치 여부에 대해 뜨거운 논란이 이어졌고 전 세계의 관심도 집중되었지만, 이듬해 초 이 거대한 콘크리트 작품은 결국 포크레인으로 철거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그 작품을 어느 미술관 앞마당에 옮겨놓을 수도 있었지만 이 동네를 벗어난다면 의미가 퇴색했을 것이다.
당시 30세의 젊은 나이에 이렇게 큰 규모의 조각 작품을 시도하는 대담함은 물론, 미술의 역할에 대해 중요한 화두를 던진 명석함은 레이첼 화이트리드가 얼마나 중요한 작가인지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흔히yBa(young British artists)로 불리는, 1990년대에 떠오른 영국 현대미술 군단은 데이미언 허스트나 트레이시 에민 같은 악동부터 떠올리게 한다. 이들의 전 세계적 프로모션으로 열렸던 <센세이션Sensation>전에도 참여한 화이트리드는 화려한 사교장을 누비는 스타 작가의 모습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줬다.
레이첼 화이트리드가 2000년에 제작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Holocaust Memorial’은 도서관을 본뜬 듯한 대형 작품으로,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광장에 세워졌다. 6만5천 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이 작품은 ‘책의 민족’이라 불리는 유대인을 상징하는 동시에 분서갱유도 서슴지 않았던 나치의 악행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2001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있던 대좌 위에 똑같은 형태의 좌대를 투명한 레진으로 캐스팅해 상하 대칭으로 포개놓은 작품 ‘무제-기념비(Untitled-Monument)’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1841년에 조성되어 런던의 심장부와도 같은 트라팔가 광장은 중앙의 넬슨 제독상을 중심으로 네 모서리에 좌대가 있고 그 위에 각각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데, 유독 한 좌대만 비어 있었다. 영국 정부는 1999년부터 매년 작가 1명을 초청해 빈 좌대 위에 새로운 조각 작품을 제작, 전시하게 하는 ‘네 번째 좌대’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는데, 레이첼 화이트리드가 여기에 초청받은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어디에 놓이는지가 작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조건이었고, 화이트리드는 그곳에서 조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장소(place)’와 ‘공간(space)’은 우리가 흔히 혼용하는 단어다. 지리학자 이 푸 투안은 장소와 공간의 차이를 정의한 바 있다. 그는 “공간이 우리에게 완전히 익숙해졌다고 느낄 때 공간은 장소가 된다”고 말했다. 즉 장소와 공간 사이에는 경험이 있다. 과연 화이트리드가 주목하고자 한 것은 장소였을까, 공간이었을까. 그녀의 작품 제목을 살펴보면 ‘100개의 공간(One Hundred Spaces)’(1997)도 있고, ‘장소-마을(Place-Village)’(2008)도 있다. 어쩌면 화이트리드는 장소와 공간 사이를 계속 오가며 우리에게 공간이 장소가 되는 순간, 또는 그 반대로 장소가 공간이 되는 순간을 마치 ‘네 번째 좌대’의 작품처럼 역전시켜 보여주고자 한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