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피에르 술라주(Pierre Soulages, 1919~2022). 유럽 추상회화의 대가로 알려진 그는 일평생 ‘검정(black)’ 의 의미를 탐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격정적이고 자유분방한 표현, 즉흥적 행위를 중시하는 추상미술이 유럽과 미국을 지배하던 1950년대. 술라주는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지 않고도 캔버스 위에서 응고되는 물감의 물성을 탐색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추상화의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고 보고, 재료의 물성에 집중한 독보적 추상 작품을 선보였다. 볼륨감 넘치는 붓질로 단순하고도 강렬하게 덧대진 검정. 곱게 펴 바르기보다는 거친 터치를 시도해 표면 위에 다양한 톤의 채광이 부서질 공간을 마련하는 술라주의 작업 방식은 화가의 터치뿐만 아니라 그림에 부딪히는 ‘빛’ 역시 작품의 구성 요소로 삼는 파격적이고도 유례없는 것이었다.
작가의 작품 커리어를 따라가다 보면 미술사의 굵직한 풍경들을 지나치게 된다. 그는 1947년 파리의 리디아 콩티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선보인 이후, 1백 세가 되는 2019년까지 무려 70여 년 동안 쉼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어린 술라주가 그림에 매혹된 계기에는 야수파 앙리 마티스의 작품이 있었고, 청년 예술가 술라주에게 더없는 영감을 안겨준 사건은 회화의 기원이라 불리는 고대 라스코 동굴벽화의 발견이었다. 중견작가 반열에 오른 1950년대 초반에는 기존의 이성적 사고를 거부하는 프랑스 회화 운동, ‘앵포르멜Informel’이 작가적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 세계대전 후 회화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했을 때, 술라주는 예술가의 즉흥적 행위에 집중한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경향을 이어받았으며, 1950년대 후반에는 파리에 불기 시작한 아시아 미술, 특히 ‘자포니즘Japonism’에 매료되어 일본을 방문해 여러 서예가와 교류하기도 했다. 한편 술라주의 이러한 선구자적 탐험은 세계 미술의 수혜자뿐만 아니라 예견자 역할도 했다. 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응노 화백의 추상회화에 영감을 주었고, 일본의 전후 회화 경향인 구타이 미술과 한국의 단색화 등 동양의 추상회화 분파 생성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색면화의 거장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이브 클랭Yves Klein과 교류하며 미국과 유럽을 잇는 독특한 추상회화의 흐름을 형성함으로써 미술사적 성취를 이루기도 했다. 시대적으로는 20세기부터 21세기를 관통하며, 지리적으로는 유럽과 미국, 아시아를 포괄하고, 미술사적으로는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 자포니즘과 서예까지 아우른다. 즉 피에르 술라주의 회화는 작가의 삶 그 자체로서 오랜 기간 시간과 공간, 역사적 사건을 켜켜이 중첩시키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획득한 독보적인 것이었다. 술라주를 향한 아름다운 찬사를 짧은 지면에 모두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그들의 언어를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면 바로 ‘검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