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프로젝트〉(2018)
모험을 떠나다
가족은 운명이다. 땅에서 자라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은 없다. 그 누구든 어느 부모의 자식일 수밖에 없고, 각기 형편이 달라도 가족의 일원으로 삶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까 생이란 가족이라는 집단의 일원으로 출발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리고 운명이란 결코 공평하지 않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누군가는 가족을 행복의 원천으로 여기며 살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게 가족은 극복의 대상이 될 것이다. 기댈 수 있는 존재라서 가족을 그리는 이도 있겠지만 피하고 싶은 존재라서 가족을 지우는 이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가족이라는 2음절의 운명 안에서 모두 다 각자 모험을 떠난다. 가족이라는 세계 안으로 혹은 그 세계 밖으로, 가족과 굳건히 뭉치거나 가족으로부터 멀리 떠나가며, 각자의 방식으로 그 세계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행복을 찾아서〉(2006)
한 줄기의 운명으로 굴러간다
강박적인 좌우대칭 미학의 시네아스트 웨스 앤더슨은 아기자기한 동화적 미장센으로 세련된 광고 카탈로그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과 달리 좌충우돌하는 인간 만사의 갈등과 충돌을 첨예하게 그려내는 작가다. 사건의 양상을 다소 얼렁뚱땅 그려버리는 습성이 있지만 예상 밖의 파국에 다다르는 경우가 적지 않아 되레 생생한 현실감각을 느끼게 하는 영화를 만들어왔다.
<다즐링 주식회사>는 우애 따윈 ‘콩가루’처럼 날려버린 듯한 휘트먼 삼 형제의 기차 로드 무비다. 아버지의 부고 이후 1년 만에 재회한 삼 형제는 인도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 인도를 가로지르는 열차에 몸을 맡긴다.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애만도 못해 서로 유치한 반목을 거듭하며 좌충우돌하는 삼 형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기차 안에서 함께 공유한 기억을 떠올리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관계를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회복한다. 서로 끝없이 반목하지만 한 줄기 운명으로 함께 굴러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한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행복을 찾아서>는 세상으로 내몰린 아버지와 아들의 삶을 다룬다. 휴대용 의료 기기를 파는 세일즈맨 남성은 실적이 좋지 않아 생활고에 시달리고 아내는 가족을 떠난다. 심지어 집세가 밀려 쫓겨난 그에게 남은 건 어린 아들뿐이다. 갈 곳이 없어 지하철역 화장실을 보금자리 삼는 와중에도 아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자신들은 지금 동굴에 숨어 있는 것이라고 거짓말한다. 애처로운 부자의 사정은 끝내 아버지의 노력으로 반전된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는 결국 아들의 삶을 자신의 비극 안에 방치하지 않는다. 절망도, 희망도, 의지도 가족 안에서 자라는 마음이다.
〈다즐링 주식회사〉(2007) / <별들의 비밀생활>(2008)
〈괴물들이 사는 나라〉(2009)
타인, 현실, 가족의 품을 벗어난 세상
타인의 삶을 지켜본다는 건 그 자체로 견문의 모험과 같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횡행하던 1960년대 미국을 배경에 둔 영화 <벌들의 비밀생활>은 우연히 한 흑인 가정에 발을 들이게 된 백인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폭력적이고 차별적인 아버지로부터 달아나 길을 떠난 백인 소녀는 벌을 키우며 꿀을 채취해 살아가는 흑인 가정의 세 자매에게 사랑을 배우게 된다. 집단을 이루고 각자의 역할을 조화롭게 수행하는 벌처럼 사람도 각기 존재만으로 존중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는 소녀는 아버지를 통해서는 알 수 없었던 가족애를 그렇게 다른 가족에게서 배우게 된다. 비록 한 핏줄로 태어난 사이는 아니어도 각자의 상처를 보듬어줌으로써 가족처럼 유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반대로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타인들의 세계를 동경하던 소년이 끝내 그 세계에 정착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험담을 그린 영화다. 모리스 센닥의 동명 그림책을 각색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실상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가깝다. 엄마와 싸운 뒤 집을 나가 작은 배를 타고 항해하던 소년은 낯선 섬에 당도해 그곳에서 무시무시한 괴물들을 만난다. 하지만 소년은 기지를 발휘해 자신이 괴물들의 왕이라고 주장해 괴물들에게 추앙받으며 섬에 정착하지만, 끝내 그곳이 자신을 위한 땅이 아님을 깨닫고 도망쳐 집으로 돌아온다. 상상 속에서 즐길 법한 진짜 모험을 떠났다 돌아온 소년의 오늘이 어제와 같을 리 없다. 소년은 그렇게 자신과 어울리는 현실을 깨닫고 가족의 세계로 복귀한다.
〈원더〉(2017)
첫 번째 후원자
한편 가족 영화는 한 사회가 품을 수 있는 공동체의 다양성을 누비는 여정의 그릇으로서 대중 앞에 등장할 때도 있다. 옛 소련과 우주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 나사NASA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유색인종 여성에 대한 영화 <히든 피겨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조명하는 동시에 차별의 중력을 이겨낸 세 여성의 이야기다. 노골적인 차별을 주도하던 백인 남성 위주 엘리트 사회의 억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실력을 증명한 세 흑인 여성은 서로 가족처럼 연대하고 우애를 나누며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의 편견을 극복해나간다. 그리고 영화는 세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지지한 첫 번째 후원자가 바로 그들의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전한다.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원더> 역시 가족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다. 우주를 동경하는 소년은 언제나 나사 로고가 선명한 우주 비행사 헬멧을 쓴다. 단지 우주를 동경해서만은 아니다. 선천적 안면 기형을 가리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는 그런 아들이 사회로 나갈 준비가 필요하다 여겨 학교에 보내는 쪽을 선택하고, 그렇게 소년은 헬멧을 벗고 자신의 얼굴로 세상에 나선다. 남다른 불행을 감당해야 하는 소년의 성장 드라마이자 그런 소년을 아끼고 응원하는 가족에 대한 드라마인 <원더>는 믿고 싶은 선의를 그린 영화다. 차별에 맞서는 방식은 분투일 수도 있지만 우정과 사랑과 연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히든 피겨스〉(2017)
명확히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물론 세상은 마냥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안전하다고 믿는 것들이 허물어진 풍경은 마음을 무너지게 만든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디즈니월드 건너편에 자리한 모텔 쪽방에서 살아가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뚜렷한 직업이 없는 젊은 싱글맘은 매춘과 도둑질로 삶을 연명하면서도 어린 딸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엄마의 삶을 명확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엄마와 살아가는 것이 좋은 소녀는 겉보기에 알록달록한 모텔 주변에서 그 나름대로 활기차게 매일을 살아간다. 그런 소녀를 돌보는 어른들도 있지만 세상은 그리 따듯하지도 만만하지도 않다. 영화는 가난한 가족에게 동화 같은 행복이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 주목한다. 그만큼 처연하고 가엾지만, 결국 이 세계에 드리운 그림자 속에 자리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럼으로써 세상의 만인이 하나의 지붕을 마련하고 타인의 불행을 포용하는 존재가 되길 권하는 목소리가 된다.
가족 영화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렇게 다채로운 가족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에서 가족이 어떻게 결속하고, 해체되고, 다시 단단히 엮여지는지, 이 운명 공동체가 어떻게 다루어지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어떤 식으로든 가족 영화라는 장르는 우리가 다양한 마음이 총망라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만든다. 다행과 불행 사이에서,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부정과 긍정 사이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태초의 운명과 연결돼 있다. 결국 우리가 가족 영화를 본다는 건 우리가 알 수 없는 이 세계의 어떤 마음속으로 뛰어드는 모험과 다르지 않다. 가족이 존재한다는 건 결국 인류가 존속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고, 가족 영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가족이라는 운명은 결국 가족 영화라는 모험으로 거듭 수렴할 것이다. 그러니 기꺼이 만끽하길. 언젠가 영화가 될 그 삶을, 그 운명을.
〈플로리다 프로젝트〉(2018)
writer Min Yongjun 영화 저널리스트·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ditor Kim Minhyung
©Imago Images / Getty Images / Ala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