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읽다가 이름 석 자에 눈이 멈춘다. 한수산. 이어령 1주기 추모 에세이집에 그가 “이어령은 봄이었고, 새롭게 찾아오는 계절이었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반갑고 놀라운 마음에 좀 더 알아보니 한수산(77) 선생은 여전히 정력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아, 그렇구나. 다행이다.’ 그의 이름과 함께 현대사의 암울했던 한 시기와 음악에 얽힌 기억이 어제 일처럼 또렷이 떠올랐다.
신문소설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은 전설처럼 들리지만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온통 빼앗아가기 전까지 유명 작가들은 종이 신문에 작품을 발표했다. 신문소설은 통속적인 내용이 많았지만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아리랑> 같은 대하소설도 신문 연재를 통해 독자와 처음 만났다.
작가 한수산은 1981년 5월 <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욕망의 거리>를 연재하고 있었다. 남녀 간의 사랑을 그린 대중소설로 정치적 색깔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별안간 기관에서 나온 이들이 한수산과 <중앙일보> 관계자, 한수산의 동료 시인 등을 보안사로 연행해 모진 고문을 가했다. 이유는 작품에 등장하는 베트남 참전 군인에 대한 묘사가 전두환 등 5공 최고위층을 모독했다는 것이었다.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트집이었다.
고문실에서 벌어진 일은 말로 옮기기 힘들다. 그것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폭력이었다. 섬세한 문장을 뽑아내던 한수산의 정신세계는 헝클어졌다. 풀려난 뒤 제주로 내려간 그는 술 없이는 하루도 버티지 못했다. 육지와 연락도 끊었다. 상처 입은 영혼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천천히 지나고 있었다.
어느 날 새벽, 한수산은 LP 음반 한 장을 턴테이블에 올렸다. 독일의 젊은 피아니스트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331’이었다. 바늘이 음반의 소리 골을 미끄러지자 1악장이 들려왔다. 그것은 연기 같았다. 희고 가느다란 연기…. 한수산은 오래오래 울었다.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멀리 보이는 한라산에 어둠이 조금씩 걷히고 있었다. 새벽 산정山頂이 뿌옇게 빛으로 감싸이고 있었다. 가슴 어딘가에서 봄날의 땅을 비집고 새싹이 하나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한수산은 음악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요?”(<이 세상의 모든 아침>, 한수산)
한수산은 소생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331’은 그의 육체와 정신을 휘감고 있던 어둠을 걷히게 했고, 가슴속에서 희망의 새싹이 움트게 했다. 그는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지만, 그것은 이제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안도와 다짐의 외침이었다. 그 뒤 한수산은 팔순을 바라보는 오늘날까지 호흡이 긴 작품을 꾸준히 써내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내가 경험한 크리스토프 에셴바흐(83)는 지휘자다. 서울시향 음악 감독 선정 절차에 외부 전문가로 참가하면서 그의 오케스트라 지휘를 지켜본 적 있다. 고령이지만 골격 탄탄한 음악을 만들어내고, 아버지같이 너른 품으로 단원을 이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피아니스트 경력은 내가 모르던 부분이다. 그는 20대 중반이던 1960년대부터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DG)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 등을 냈지만 나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세상에는 그 말고도 뛰어난 피아니스트가 많다.
인터넷에서 음원을 찾아 에셴바흐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331’을 들어보았다. ‘터키 행진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 소나타는 3악장이 유명하지만, 한수산의 눈물샘을 터뜨린 것은 1악장이었다. 그것은 위로의 노래였다.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손길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젊은 피아니스트는 기교를 뽐내지 않고 음악이 본래 품고 있는 기쁨과 슬픔을 차근하게 짚어나갔다. 한수산은 에셴바흐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331’이 “나를 껴안고 음악을 들려주는 것 같다”고 했다. 음악은 “아직 이 땅에는 네가 살아가며 사랑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고 한수산에게 속삭였다. 폭력으로 피폐해진 인간이 음악의 힘으로 기적처럼 다시 생명을 얻었다. 우리는 간혹 그런 음악과 연주를 만난다.
문득 궁금하다. 한수산 선생은 요즘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331’이 들려오면 어떤 마음이 들지. 제주에서의 그날처럼 가슴속에 새싹이 움틀까, 아니면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가 덧날까. 신문소설이 전설이 된 것처럼 오래된 악몽도 선생의 기억에서 사라졌기를.
intern editorJung Nay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