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관조하는
일관된 시선
2020/10 • ISSUE 29
writer Yoon Kewhong 미술평론가
차규선, ‘화원’, 2020, 캔버스에 혼합 재료, 162×130cm
가을 문턱에서 더위가 한풀 꺾인 오후에 대구 수성동 작업실을 방문했다. 아틀리에 실내는 여전히 열기를 품고 있었다. 이 공간의 오롯한 임자인 작가가 거기 있었다. 서양화가 차규선은 한국 미술에서 매우 독특한 지점에 위치한다. 일찍이 동년배 작가군 가운데 화단 한 경향의 전위에 섰지만, 동시에 주류의 분위기를 스스로 밀쳐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외부자적 자세를 가진 작가와 나눈 대담에서 그가 여러 번 꺼낸 말은 뜻밖에도 ‘두려움’ 이었다.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흰 캔버스를 마주하면 늘 두렵다는 말은 짧지 않은 작가 경력에 비추어보면 이례적인 고백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차규선 작가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으로서 자연, 묵묵히 이어져온 예술의 전통 앞에서 본인을 낮추는 태도가 거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미술계에서는 차규선 작가가 그림 그리는 방법을 분청사기 회화 기법이라고 부른다. 그 실체는 무엇인가?
잘 알려져 있듯, 분청사기는 도예의 한 가지다. 지금도 전문 도예가가 있지만 역사는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분청사기는 말 그대로 청자 표면에 분을 발라 완성한 것이며, ‘분장회청사기’가 정식 이름이다. 내가 흙을 그림의 한 가지 재료로 쓴 지는 오래됐다. 초창기부터 유화를 그릴 때 붓에 흙을 묻혀서 그리는 시도를 했다. 내가 분청사기 기법을 회화에 끌어들인 것은 2001년 호암갤러리에 도자기 전시를 본 이후부터다. 고향이 경주이고 박물관은 어릴 때부터 친숙한 환경이어서 도자기, 옛 그림, 토기에도 늘 관심이 있었는데, 그날 그곳의 전시는 내 삶의 중요한 순간이었다. ‘저것을 평면 회화에 응용한다면?’이라는 생각이 지금껏 나를 이끌어온 것 같다. 물론 시행과 착오는 늘 따라다녔다. 도예를 그림으로 바꾸는 건 말이 쉽지, 생각지도 못했던 무수한 변수가 난제가 되어 과정 곳곳을 가로막았다. 그때마다 재료와 부재료, 순서, 표현 방법을 조금씩 바꿔 실험했다. 재료가 그림에 단단히 정착되는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지금의 색채와 질감으로 진화해왔다. 그러면서 작업도 몇 개의 서로 다른 역작으로 묶일 만큼 다양화되었다.
도자기라는 준거점 외에, 창작 활동에 영감을 제공하는 것이 또 있나?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진 않았으나, 아마도 그런 대상은 삶의 곳곳에 있을 듯하다. 후미진 골목의 벽면이라든가, 이 작업실 옥상에서 바라보는 일몰 광경은 언제나 나를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다. 화실 창 너머 플라타너스 가로수 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나를 사색에 빠지게끔 한다. 오랜 시간 함께한 이 작업실 자체가 내게 그런 대상일 수도 있겠다. 그 세월 동안 매일 하루 중 거의 모든 시간을 여기서 보냈으니까 말이다. 또 다른 영역으로 보자면, 영감은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도 받는다. 아니면 그들의 도록이나 바로 이런 구술을 통해 예술가들의 여러 면을 알게 된다. 책을 보다가도 내 작업과 이어지는 어떤 부분을 찾게 되면, 메모해놓고 내용을 이따금 되새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선생의 그림에는 자연이 담겨 있다. 그이유는 무엇이며, 혹시 앞으로 다른 시도를 하거나 공개하고 싶은 대상이 있나?
자연 속 한 부분을 그림에 옮긴 것은 무엇보다 일종의 외경심 같은 것 때문일 거다. 그런 경외심은 내 작품으로 모였다가 다시금 감흥의 형식으로 퍼져가길 원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건 한 명의 작가가 이뤄낼 수 있는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은 너무나 큰 주제지만, 마음 한편으론 사람들을 그림에 담고 싶다. 자연에 비한다면 우리 인간은 왜소하고 때로는 흉한 모습을 보이는 불완전한 존재다. 불특정한 인물을 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을 그리고 싶고, 실제로 습작처럼 종종 그려왔다. 이런 사실을 아는 주변 몇몇 분이 인물화를 내세운 전시를 하면 어떻겠냐는 말을 하지만, 모르겠다. 언젠간 그럴 것이다.
흔히 지식인이나 예술가는 이 세계가 본인을 부당하게 대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사회 안에서, 범위를 더 좁혀 미술계의 현실에서 자신을 바로 세우는 태도가 있나?
내 작품을 이른바 저항 예술로 바라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특정 집단이나 권력 작용에 대한 반감 같은 것은 늘 갖고 있으며, 그런 호불호를 숨기지 않는다. 제일 벅찬 상대는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리는 나 자신이 아닐까 싶다. 내 그림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자기 검열에 매몰되면 그것이야말로 큰 문제다. 세상과의 타협은 같은 형식의 그림을 손끝에 익혀 슥슥 찍어내는 매너리즘만큼 위험하다. 늘 그점을 경계하는 태도는 예컨대 사회정의보다는 예술의 초월성에 닿지 않을까.
작업 중인 차규선 작가.
"자연 속 한 부분을 그림에 옮긴 것은 무엇보다 일종의 외경심 같은 것 때문일 거다.
그런 경외심은 내 작품으로 모였다가 다시금 감흥의 형식으로 퍼져가길 원한다."
지금의 작가가 있기까지 가르침을 준 스승이 여러 분 계실 것 같다. 또 화단 내 다양한 인사와 친밀하게 교류하는 것으로 안다. 몇 사람만 소개한다면?
수많은 스승이 있다. 기회가 될 때마다 한두 분만 이야기하면 나머지 분들에 대해 송구스러운 마음이 따른다. 그래도 한 분을 꼽자면 대학 은사인 극재 정점식 선생이다. 추상미술의 주요 작가이자 평론가이던 선생은 척박한 한국 미술계에서 예술과 삶의 평형을 유지한 분이다. 그 가르침과 인품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화가를 일일이 다 꼽을 순 없을 것이다. 미술계 사람들만큼 시인 같은 문필가를 많이 만난다. 한문학자 이종문 시인의 경우 하루가 멀다 할 정도로 통화하고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백아와 종자기의 관계처럼, 선생과 나는 열네 살 차이가 나지만, 이 우애는 내 삶의 한 면이다.
2020년에는 중요한 개인전을 가졌고, 언론과 평단에서도 이례적으로 크게 다루면서, 작가에게 의미있는 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당장 앞으로 다가온 계획은 어떤 것인가?
당장의 계획은 내일도 모레도 이 자리에 나와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그린다기보다 뭘 그릴 것인가, 우두커니 고민하는 시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내년에 대구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지금까지 완성해온 시기별 작품과 더불어 신작을 공개하는 프로젝트다. 미술관 전시의 경우 기존 이력에 나 자신을 반영하는 일이지만, 올해 가진 신세계 갤러리 전시는 굉장한 부담감을 갖고 임했다. 모든 걸 쏟아붓는다는 마음가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무튼 뭘 그릴 것인가, 하는 숙제가 다시 던져졌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우열을 가린다든가 하는 것보다 일차적으로는 내 역량만큼 그림이 나와야 된다는 압박이 있다. 그 압박감을 좋은 쪽으로 잘 다스려, 작가로서 삶의 중심을 잡아가는 게 좀 더 큰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