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월하의 正歌
숨이 깊어지는 예술
2020/11 • ISSUE 30
writerChoi Jeongdong 〈중앙일보〉 기자
김월하의 정가를 수록한 1960년대 LP 음반. 이런 음원은 대부분 CD로 다시 나왔다. QR코드는 ‘버들은’ 음원 자료다.
정가正歌의 전설적 가객 김월하(金月荷, 1917~1996) 선생이 부르는 가곡 ‘바람은 지동地動치듯 불고’를 들은 한 네티즌이 이렇게 댓글을 남겼다. “난 66년생인데 이런 가곡이 왜 좋은지… ㅋㅋ.” 이 글을 보고 공감의 미소를 지었다. 나도 같은 심정을 여러 번 느꼈기 때문이다.
느릿한 옛 노래를 들으며 손발로 장단을 맞춘다거나 추임새를 넣는 것은 TV 시대극이나 최소한 아버지 세대의 풍경이다. 66년생이면 50대 중반인데, 그 나이에 그런 행태를 보였다간 친구들이 구제불능 꼰대 취급을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조선시대 선비의 노래를 들으면 도도한 흥이 일고 “좋다!”는 감탄이 속에서 터져 나오니, 그 네티즌이나 나나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선생이 정통한 분야는 조선 선비의 노래인 정가다. 가곡과 시조, 가사를 아우르는 장르로 품격과 운치의 예술이다. 심심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면 곤란하다. 66년생이 듣고 좋았다고 한 그 가곡을 현대어로 옮기면 이렇다. “바람은 땅이 흔들리게 불고, 궂은비는 퍼붓듯 내리네. 눈빛으로 통한 그 님 오늘 밤 만나자고 편지 써서 맹세했는데, 이 비바람 속에 어찌 올까. 그래도 정말 오고 싶어 온다면 내 짝이라는 증거겠지.”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실망과 기대 사이를 오가면서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애를 태우는 여인이 보이는 듯하다. 좀 더 알려진 가곡을 원문으로 읽어보자.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 구십삼춘九十三春에 짜내느니 나의 시름/ 누구서/ 녹음방초綠陰芳草를 승화시勝花時라 하든고.” 한 여인이 남자를 기다린다. 기약 없는 세월 베를 짜며 견딘다. 창밖 버들가지 물이 오르고 무심한 꾀꼬리 쌍쌍이 즐겁다. 홀로 보낸 석 달 봄날 짜낸 것이 베인지 시름인지…. 신세가 딱해 보여 누군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초여름이 되면 돌아오실 거야.” 하지만 여인은 그럴 것 같지 않다. 슬며시 원망이 치민다. ‘돌아오긴 뭘 돌아와. 누가 그런 거짓말을 해!’ 여인의 방에는 절망적인 베틀 소리만 끝없이 울린다.
옛 노래 듣는다고 누가 뭐랄까 봐 주위를 둘러볼 필요는 없다. 좋은 걸 좋아하는 게 무슨 문젠가. 오히려 코로나 감옥에 갇혀 갑갑해하는 주변에 열심히 권할 일이다. 쉬어 간다 생각하고 우리 정가를 들어보시라! 운치 있는 노랫말, 유장한 호흡에 빠져들면 어느덧 내 숨도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