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온라인으로
감상하고 소비하기
2021/02 • ISSUE 33
editorKim Jihye
writerKim Jaeseok 갤러리현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미술 산업은 ‘지금 보기(watch now)’ 혹은 ‘지금 읽기(read now)’ 버튼의 전쟁터가 됐다. 팬데믹으로 물리적 공간에서 전시를 열고 작품을 감상할 수 없게 되자, 메가 갤러리와 미술관, 옥션 회사 등은 발 빠르게 디지털의 세계로 노를 저었다. 그렇게 찾아온 온라인 콘텐츠의 범람! 다채로운 미술 콘텐츠가 경쟁적으로 공개되면서 디지털로 작품을 감상하고, 온라인으로 응찰과 구매가 가능해지며 일반적인 미술 감상과 소비 방식도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온라인 뷰잉룸 전성시대
그 전환의 속도를 가속화한 주인공은 아트 바젤과 프리즈 같은 대형 아트 페어와 메가 갤러리였다. 포문은 온라인 뷰잉룸이 열었다. 온라인 뷰잉룸은 일종의 가상 전시로, 출품된 작품과 해당 작가, 가격 등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온라인 쇼핑몰의 경험을 제공한다. 세계 최고의 페어인 아트 바젤은 2020년 총 5회 온라인 뷰잉룸을 열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취소냐 연기냐를 두고 혼선을 빚은 5월의 홍콩 버전이 다소 밋밋했다면, 이후 세계적 컬렉터와 큐레이터가 ‘픽’한 작품 설명, 아트 피플의 줌 세미나, 작가 인터뷰 영상 등 관련 콘텐츠를 업그레이드하며 온라인 뷰잉룸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2월 프리즈 LA를 성대하게 치른 프리즈 아트 페어도 10월 런던과 마스터스 행사를 온라인 뷰잉룸으로 진행했다.
2017~2018년부터 온라인 뷰잉룸을 시험적으로 운영하며 온라인 미술 시장의 가능성을 미리 확인한 메가 갤러리 가고시안과 데이비드 즈워너는 팬데믹 이후 작가와 작품의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춘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펼치고 있다. 데이비드 즈워너는 2020년에만 10여 개의 뷰잉룸을 준비했다. 제프 쿤스, 도널드 저드, 셰리 레빈, 케리 제임스 마셜, 레이먼드 페티본 등의 작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했다. 데이비드 즈워너 뷰잉룸의 주력 테마는 ‘스튜디오’.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작품이 탄생한 장소와 출품작의 연관성을 부각하고, 스튜디오 모습, 영감을 준 미술사의 걸작 이미지, 작가 노트, 인터뷰 영상 등을 두루 곁들여 풍성하고 입체적인 서비스를 제공했다. 가고시안은 ‘아티스트 스포트라이트’라는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매번 한 작가를 집중 소개하는 것으로, 무라카미 다카시, 제프 월, 레이철 화이트리드, 데이미언 허스트 등을 다룬 미술 잡지 <가고시안 쿼터리>의 기사, 비평문, 동영상, 미술관 전시 등을 모음집 형식으로 선별해 전 세계에 이메일로 전송했다. 작년 10월, 가고시안은 ‘프리미어Premieres’라는 라이브 스트리밍 채널을 론칭했다. 갤러리에 따르면, 전시를 여는 작가를 중심으로 유명 문필가, 음악가, 퍼포머 등을 초대해 다큐멘터리와 콘서트, 토크쇼가 혼합된 15~20분가량의 영상물을 만들고 스트리밍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표다. 첫 회에는 사진가 그레고리 크루드슨과 세계적 저술가 맬컴 글래드웰, 영화 평론가 엘비스 미첼, 음악가 제프 트위디가 참여했다. 한 매체는 가고시안의 이런 행보를 두고 ‘가고시안은 넷플릭스가 되는 걸까?’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가고시안과 데이비드 즈워너는 자체 출판사에서 발행한 미술 서적 일부를 온라인으로 무료 공개하며 읽을거리를 선사했다.
1 가고시안 프리미어를 제작하는 모습. 가고시안은 토크쇼와 콘서트를 결합한 영상을 제작해 공개했다. 2 가고시안은 세실리 브라운의 작품을 온라인 뷰잉룸으로 약 55억원에 판매했다. 3 아트 바젤 홍콩의 온라인 뷰잉룸.
가상 여행에서 스크리닝까지
하우저 & 워스는 관객에게 가상 여행을 제안했다. 휴양지로 유명한 메노르카섬에 2021년 개관할 예정인 대형 분점을 VR 투어로 미리 보기 할 수 있게 한 것. 이곳은 8개의 갤러리, 피에트 우돌프가 디자인한 정원, 아트 숍, 레스토랑 등으로 조성된다. 한편 2개전시장을 가상 무대 삼아 열린 특별 전시
온라인 스크리닝 프로그램으로 이목을 끈 갤러리도 있다. 페이스는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온라인 뷰잉룸과 ‘저널Journal’ 페이지를 신설했다. 저널은 작가에 관한 짤막한 뉴스부터 학술적 에세이, 비디오, 아티스트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갤러리의 큐리토리얼 디렉터 마크 비즐리가 기획한 온라인 스크리닝 프로그램 ‘Pace on Screen: Sixty Years’는 제목 그대로 갤러리가 설립된 1960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대표하는 작가(린다 뱅글리스, 비토 아콘치, 장 뒤뷔페, 루이스 네벨슨, 크리스토와 장클로드 등)의 희귀한 영상을 일정 기간 무료 공개했다. 스위스 갤러리 그자비에 후프컨스는 데이비드 얼트메이드, 트레이시 에민, 앤서니 곰리, 로버트 매플소프, 앨리스 닐 등 소속 아티스트 10명의 인생과 작품 세계에 관한 10편의 다큐멘터리를 순차적으로 온라인 상영했다.
1 토크쇼와 콘서트를 결합한 가고시안의 라이브 스트리밍 채널, 프리미어. 2 하우저 & 워스는 새로 개관할 메노르카섬 분점을 배경으로 가상 전시를 기획했다.
미술관, 소장품을 색다르게 조명하다
문이 굳게 닫힌 미술관도 나름의 변신을 모색 중이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팬데믹 선포 이후 아카이브 공개, 줌 세미나 스트리밍, 소장품 안내 영상 등의 교육적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작년 12월, 뉴욕 현대미술관은 반 고흐의 걸작 ‘별이 빛나는 밤’을 ‘버추얼 뷰Virtual Views’ 프로그램으로 소개했다. 사물의 모든 영역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해 수백 장의 사진으로 3D 모델을 만드는 사진 측량 기법을 통해 반 고흐의 소용돌이 치는 붓질 하나하나의 디테일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캔버스에 두껍게 발린 푸른색 물감 속까지 줌으로 이동했다가, 미술관을 나와 우주 속 푸른 지구를 비추는 장면으로 줌아웃한다. 이 영상에는 작가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 중 한 구절을 읽는 큐레이터의 목소리를 덧입혔다. 미술관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장품을 색다르게 조명하는 ‘버추얼 뷰’ 프로그램은 모든 것이 디지털로 전환되는 지금, 작품을 실제로 감상하는 경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역설적으로 묻는다.
1 작년 7월, 소더비에서 양방향 원격 화상으로 진행한 경매 현장 모습. 2 어큐트 아트Acute Art는 카우스, 토마스 사라세노, 루양 등 세계적 작가들과 협업해 가상현실과 미술을 접목한 프로젝트를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