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맞이하는 봄바람
2021/03 • ISSUE 34
writer Choi Meesun 여행 칼럼니스트
editorWang Minah
제각각 다른 매력의
신안
천사섬 분재공원
압해도 끄트머리에 볼록 솟은 송공산 기슭에는 천사섬 분재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분재공원은 다양한 볼거리를 갖추었다. 조각품과 어우러진 섬세한 분재는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정성껏 가꾼 생명의 예술품 앞에선 낮은 자세로 눈높이를 맞춰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1만7천여 그루의 나무가 줄줄이 늘어선 애기동백꽃 길은 가볍게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공원 안엔 곧게 뻗은 천사대교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저녁노을미술관도 있다. 2019년 봄에 생긴 천사대교 덕분에 압해도와 뚝 떨어져 있던 암태도, 자은도, 안좌도, 팔금도, 자라도, 추포도, 박지도, 반월도까지 한 묶음이 되었다. 천사대교로 연결된 암태도 초입엔 폐교를 활용한 에로스서각박물관이 자리한다. 인근 섬을 오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인 기동삼거리에서 여행객의 발길을 영락없이 붙잡아 기어코 사진을 찍게 하는 벽화는 ‘동백나무 파마머리’ 노부부다.
ADDRESS 전남 신안군 압해읍 수락길 330
TEL 061-240-8778
퍼플섬
‘동백나무 파마머리’ 벽화를 마주하고 오른쪽은 자은도, 왼쪽은 팔금도를 거쳐 안좌도로 향하는 길이다. 안좌도는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던 김환기 화백의 고향으로, 단아한 한옥 생가가 있는 읍동마을 거리엔 그의 대표작들이 담겨 있다. 안좌도 두리마을에선 보랏빛 다리가 박지도와 연결된다. 반달처럼 긴 반월도, 엎어놓은 바가지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은 박지도는 구석진 곳에 꼭꼭 숨은 섬이었지만 보랏빛 다리 ‘퍼플교’로 연결되어 일명 ‘퍼플섬’으로 변신하면서 해외 언론에도 소개될 만큼 신안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도로와 지붕, 공중전화, 우체통, 벤치, 하다못해 식당의 식기까지 보라색인 데다, 동네 어르신들도 모자든 신발이든 ‘깔맞춤’ 해 보라 물결에 스며든다. 해가 지면 보랏빛 조명으로 더욱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퍼플교는 바닷물이 찰랑찰랑 찼을 때 더 운치 있다.
ADDRESS 전남 신안군 안좌면 반월리(반월도 기준)
TEL 061-240-8357
태평염생식물원
신안의 보물섬인 증도는 자은도에서 배를 타면 15분 만에 닿는다. 수백 년 전의 중국 유물 2만여 점을 건져 올린 곳이 바로 이곳 앞바다이기에 보물섬이라 부르는데, 또 다른 보물은 국내 최대 규모인 태평염전이다. 소금밭전망대에 오르면 여의도 면적의 2배에 달하는 광활한 소금밭과 태평염생식물원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3월 들어 따사로운 햇볕과 훈훈한 봄바람을 맞으며 염부들의 정성 속에 하얀 소금꽃이 피어나면 염전 체험도 할 수 있다. 탐방로를 따라 걷기 좋은 염전 옆 태평염생식물원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ADDRESS 전남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
TEL 061-275-7541
투박해도 아기자기한
영월
별마로천문대
별을 관측할 수 있는 국내 평균 일수가 연간 1백여 일인 데 비해 이곳은 1백90여 일이니 ‘별 볼 일’이 많은 곳이다. 이는 빛과 안개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봉래산의 특성 덕분이다. 별마로는 ‘별을 보는 고요한 정상’이란 의미로 별마로천문대에선 지름 80cm에 달하는 주 망원경과 보조 망원경을 통해 구름처럼 모인 별도 보고 달도 보고 화성, 토성, 목성까지 볼 수 있다. 아득히 멀어 깨알처럼 보이더라도 신비로운 우주를 엿보는 설렘이 있다. 천체투영실에선 날씨와 관계없이 둥근 천장 스크린에 비친 별자리를 볼 수 있다. 밤에는 영월 땅에서도 어둠 속에 점점이 떠 있는 불빛이 별빛처럼 반짝인다. 하늘이건 땅이건 외로운 별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는 진리가 이곳에서 더 묵직하게 다가온다.
ADDRESS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천문대길 397
TEL 033-372-8445
봉래산 패러글라이딩
영월에선 봄바람을 타고 하늘을 훨훨 날아오를 수도 있다.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촬영 장소이기도 했던 봉래산 패러글라이딩은 이륙장 고도(해발 800m)가 여느 지역보다 높아 체공 시간이 긴 데다 사뿐히 내려앉는 동강 둔치 착륙장도 넓어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광주의 무등산, 양평의 유명산 등을 비롯해 국내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곳 중에서도 특히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추천한다. 초보자도 간단한 교육을 받으면 바로 하늘을 날 수 있으며 강사와 함께 하는 2인승을 이용하면 마음이 좀 더 편하다. 봉래산 정상에서 ‘다다닥’ 뛰는 발길 끝에 하늘로 ‘슝~’ 날아올라 영월의 비경을 유유히 눈에 담으며 내려오는 맛은 생각보다 훨씬 짜릿하다. 그뿐만 아니라 이륙장에서 별마로천문대가 가까워 여행 동선을 짜기에도 좋다.
ADDRESS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천문대길 397
TEL 033-373-9111
요선암
젊은달 와이파크에서 약 5km 거리인 요선암 돌개구멍은 주천강 자락에 펼쳐진 암반 지형이다. 돌개구멍(port hole)은 ‘속이 깊고 둥근 항아리’란 뜻으로 하천에 쓸려 내려온 자갈이나 모래가 소용돌이치는 물살에 빙빙 돌며 움푹움푹 파놓은 구덩이다. 둥글둥글 항아리가 되고 바가지가 되고 해골 같기도 하고 고릴라 콧구멍 같기도 한 돌개구멍은 그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함을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자연과 세월이 만들어낸 이 오묘한 작품의 이름이 ‘신선을 맞이하는 바위’라는 뜻의 ‘요선암邀仙岩’이 된 것은 조선시대 중기를 주름잡던 문인 양사언이 그 풍광에 반해 암반에 이 글자를 새긴 데서 비롯됐다. 주변까지 통틀어 요선암이라 부르는데, 강과 바위가 어우러져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ADDRESS 강원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도원운학로 13-39
TEL 1577-0545
젊은달 와이파크
강원도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한 영월은 곳곳에 아기자기한 박물관이 유독 많아 ‘박물관의 고장’이라 일컫는다. 그중 요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곳이 주천면에 자리한 젊은달 와이파크다. 주천酒泉은 ‘술이 솟는 샘’이라는 의미로 애초 이 자리엔 술샘박물관이 있었는데 2019년 여름 이색적인 복합 예술·문화 공간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영월에서 모티프를 얻어 ‘영young+월月’이라 명명한 이곳엔 빨간색 입구부터 젊음의 열정이 넘친다. 하늘을 향해 뻗은 금속 파이프 작품 ‘붉은 대나무’로 연출한 통로는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고, 소나무 장작을 거대한 둥지처럼 쌓아 올린 작품 ‘목성’에 들어서면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이 별빛처럼 반짝거린다. 버려진 것들이 예술로 다시 태어난, 재생의 미학이 담긴 이곳엔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이 많다.
ADDRESS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송학주천로 1467-9
TEL 033-372-9411
기묘한 자연 속에 푹 빠져드는
거창
Y자형 출렁다리
덕유산 줄기 남쪽에 자리한 거창은 곳곳에 수려한 자연 경치를 품고 있다. 여행지로 부각되진 않은 곳이었지만 2020년 10월 우두산 중턱에 모양이 독특한 다리를 설치하면서 찾는 발걸음이 꽤 많아졌다. ‘Y자형 출렁다리’라는 이름 그대로 해발 620m 지점 협곡에 세 줄기로 연결된 다리는 입소문을 타고 금세 거창의 명물로 떠올랐다.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다리의 길이는 109m. 다리 개통 후엔 등산객보다 오로지 이 다리를 건너보기 위해 찾는 사람이 더 많다. 우두산 거창항노화힐링랜드에서 6백 개에 가까운 계단을 올라야 닿을 수 있지만 오르내리는 길 내내 재미있거나 의미 있는 건강 관련 문구가 붙어 있어 엄살떠는 허벅지와 종아리가 힘을 내게 해준다. 그 계단 끝에서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Y자형 출렁다리는 ‘길은 어디에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바닥에 구멍이 숭숭 뚫려 더 아찔한 다리 중심에서 마주하는 비경은 ‘고난과 두려움을 이겨낸 보람은 이런 거야’라고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또 우두산에는 희귀 식물을 감상할 수 있는 자생식물원이 있고, 산림휴양관과 숙박 시설도 갖추었다. 주변에는 작은 금강산이라고도 부르는 의상봉, 비계산 등 명산이 있어 자연을 두루 즐기기에 좋다.
ADDRESS 경남 거창군 가조면 의상봉길 830
TEL 055-940-7930
수승대
금원산자연휴양림에서 5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수승대는 삼국시대 백제 땅으로, 신라에 사신을 보내던 곳이다. 하지만 냉전 중이던 당시 사신이 신라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많아 위로 잔치를 열고 근심 속에 나날을 보낸다 하여 ‘수송대愁送臺’라 부르던 것을 조선시대 퇴계 이황 선생이 그 내력을 듣고 명칭을 수승대搜勝臺로 바꿨다. 음은 비슷하지만 ‘뛰어난 것을 찾는 곳’이란 의미다. 냇물의 거북바위와 정자가 어우러진 풍경이 절묘하다.
ADDRESS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2길 10
TEL 055-940-8530
금원산자연휴양림
거창항노화힐링랜드에서 차로 40여 분 거리에 있는 금원산자연휴양림은 폭포를 유난히 많이 품은 곳이다. 여느 휴양림처럼 편의 시설과 산책로를 잘 갖추고 있지만 무엇보다 휴양림을 둘러싼 두 갈래 골짜기가 일품이다. 관리소 오른쪽 지제미골로 들어서면 국내에서 가장 크다는 ‘문바위’를 지나 돌계단 위 우람한 바위 뒤에 꽁꽁 숨은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상(보물 제530호)도 볼 수 있다. 한편 관리소 왼편 차도를 따라가다 보면 자운폭포를 지나 계곡 속에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는 유안청 제2폭포와 다섯 줄기로 갈라져 떨어지는 제1폭포를 연이어 볼 수 있어 눈이 시원하다.
ADDRESS 경남 거창군 위천면 금원산길 412
TEL 055-254-3971
황산전통한옥마을
수승대와 가까운 황산전통한옥마을은 이 고장에서 유명한 ‘거창 신씨’ 집성촌이다. 1500년대 초부터 형성됐으니 5백 세가 넘은 마을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이가 많은 건 마을 입구에 수문장처럼 버티고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다. 나무는 늙은 모습이지만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1800년대 말~1900년대 초에 다시 지은 것이다. 그럼에도 1백 년을 훌쩍 넘은 한옥들의 멋은 여전하고, 부드럽게 휘며 이어지는 옛 담장을 따라 걷는 발걸음은 한결 여유롭다. 민박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으니 봄날이 가기 전에 포근한 고택에서 하룻밤의 추억을 새겨보는 것도 좋겠다.
ADDRESS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1길 109-5
TEL 055-940-3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