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배치도를 따라서
모니카 구티에레스 아르테로의 <리빙스턴 씨의 달빛서점>에 따르면, 서점 1층에는 고전, 2층에는 현대 작가의 책, 여행책과 지도, 철학, 신학, 역사 분야의 책이 있다. 이 배치는 평생 달빛서점을 운영해온 서점 주인 에드워드 리빙스턴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플루타르코스, 볼테르, 루소, 칸트 등을 충분히 읽지 않고는 2층 작가들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단어와 문장의 독창적 배치가 책이고, 페이지의 독특한 배치가 책인 것처럼, 책들의 고유한 배치 역시 하나의 책이다. 그러니까 낯선 서점에 들어설 때 우리는 저자의 책보다 먼저 서점 주인의 책과 마주한다. 수많은 책으로 이루어진 서점 배치도는 서점 특유의 분위기와 함께 독서의 약속, 초대, 권고로 이루어진 특이한 정신을 우리 앞에 드러낸다. 철학적 배치도를 갖추었을 때 그 서점은 존재 의미가 있고, 그 철학을 적극적으로 읽으려 할 때 서점 산책이 즐거워진다.
읽을 수 없는 책을 사는 것
이탈리아에 처음 갔을 때 피렌체의 어느 서점에서 신기한 경험을 했다. 이탈리아어를 전혀 읽을 수 없었으나, 진열대와 서가에서 한나절 동안 이 책 저 책 뒤적이면서 마음에 끌리는 책 서너 권을 골랐다.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길잡이 삼아 지옥을 여행했듯, 낯선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찾으려면 확실한 길잡이가 있어야 한다.
“표지로 책을 판단하지 말라.” 책 애호가 사이에서 떠도는 속언이다. 포장된 거짓에 속아 넘어가면 나중에 분명히 후회한다. 베스트셀러도 마찬가지다. 가짜 모험과 엉터리 연애를 얼기설기 엮은 얄팍한 이야기, 부와 출세의 길을 부르짖는 성마른 목소리, 달콤한 위안과 죽은 평화를 외치는 공허한 설교가 대다수다. 이런 책들은 실패 확률이 너무나 높다.
지도에 방위표가 있듯, 서점에도 기준점이 있다. 내 경우 ‘믿고 읽는 저자’다. 이탈리아라면 단테나 보카치오다. 멋지게 장정하거나 아름다운 삽화가 들어간 <신곡>이나 <데카메론>의 새로운 판본을 얻는 것은 전혀 헛된 일이 아니다. 몇 번이고 읽어서 그 내용에 익숙하고 가치를 확인한 책들은 낯선 언어로 만나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주인장의 정성이 들어간 서점은 책과 친구 맺는 데 무척 신중하기에, 단테나 보카치오 근처에는 거의 반드시 괜찮은 책들이 놓여 있다. 우선 서점 전체를 훑어서 배치의 질서를 파악한 뒤, 책의 네트워크 속으로 뛰어들어 하나하나 책을 확인해가면 언제나 한두 권쯤 데려가고 싶은 책과 마주친다.
읽을 수 없는 책을 왜 사느냐고 묻는 건 어리석다. 책은 읽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사놓은 책 중에 눈에 띄고 마음에 닿는 책을 읽는 것이다. 서가에 꽂힌 책 중 대다수는 아직 읽지 않은 책이고, 언젠가 읽을 책이다. 그것은 제목과 표지와 만듦새만으로도 한때 내가 사랑했던 자아를 드러내고, 쌓여서 나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이탈리아어로 된 이 책들은 언젠가 시간을 내서 그 언어를 공부한 다음, 다시 시간 나면 꼭 읽을 테다. 그사이에 이 책들은 서가에 놓인 채 호기심을 자극하고 궁금증을 일으키면서, 추억의 나인 동시에 미지의 나로서 끝없이 나의 애를 끓일 것이다.
읽을 수 없는, 아직 읽지 않은, 앞으로 읽을 책들이 불러일으키는 긴장과 기대, 유혹과 진정, 동요와 불안이야말로 독서의 중요한 한 과정이요, 깊이 음미할 만한 맛이다. 읽기 전에 책을 맛보고 상상하는 이 행위는 오랜 세월 뒤에도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낯설고 이질적인 공간으로 자아를 데려가는 일이 우리가 서점에 가는 진정한 이유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