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한 위로
양희은은 ‘아침 이슬’의 가수다. 1970년 곡을 만든 김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린 악보를 테이프로 붙여 부른 이래 ‘아침 이슬’은 양희은의 노래가 됐다. 김민기는 그저 새벽의 영롱한 이슬 이미지를 노래로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침 이슬’은 1970~1980년대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흐름을 이끄는 현장에서 쉼 없이 불렸다. 그것은 순수하면서도 가슴을 뜨겁게 하는 그 노래가 타고난 운명이었을 것이다. 노래를 부른 양희은은 ‘필연 같은 우연으로’ 저항 가수가 되었다. 군사정권은 ‘아침 이슬’을 12년간이나 금지곡으로 지정했으나 양희은은 이 노래를 평생 1만 번 넘게 불렀다.
1987년 양희은은 결혼 후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아침 이슬’을 목 놓아 부르지 않게 되었다. 1991년 양희은은 ‘심심해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고, 당시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서 유학하고 있던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 이병우를 뉴욕으로 불렀다. 두 사람은 같이 노래를 만들고 하루 만에 녹음을 끝내 음반을 발표했다. 마침 ‘아침 이슬’로 데뷔한 지 20주년이었다. ‘양희은 1991’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음반에는 여덟 곡이 실렸는데 그중 다섯 곡의 노랫말을 양희은이 직접 썼다. 이 음반은 언제부턴가 나에게 양희은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손이 가는 음반이 되었다.
사실 내가 이 음반을 발매 당시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다. 음반을 산 사람은 아내다. 아내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음반 가게에 들렀다가 구입했다. 아내의 시선을 끈 것은 재킷 사진이었다. 놀랍게도 양희은이 화장을 하고 있었다. 선머슴같이 청바지에 통기타를 둘러멘 모습으로만 기억하던 양희은이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귀걸이까지 달고 있었다. 거기다 퍼그 두 마리가 같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아내는 이 음반을 듣고 한 곡도 허술한 구석이 없다고 생각했단다.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음악들이라 들을수록 좋아졌다고도 했다. 하지만 <양희은 1991>은 내가 출근하고 없는 시간에만 집에서 울렸다. 당시 나는 클래식에 푹 빠져 있어서 퇴근하면 바흐, 모차르트를 듣기 바빴다. 마흔 살의 양희은을 내가 처음 들은 것은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내 레코드 서가에 있는 그 음반을 ‘발견’하기까지 20년 넘게 걸린 셈이다.
마흔 살의 양희은은 더 이상 ‘아침 이슬’ 의 가수가 아니었다. 목소리는 몽돌처럼 닳아 둥글둥글하고 저항 같은 것은 흔적도 없다. 지극히 담담하게 ‘끝’과 ‘쓸쓸함’ 같은 고독을 노래할 뿐이다. 내밀한 일기를 읽어주는 듯하다. 악기라곤 이병우가 연주하는 기타 한 대가 전부다. “원 기타 원 보컬, 내가 숨을 데가 없다. 죽자고 노래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됐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 앨범 만들던 때를 돌아보며 양희은이 한 말이다. 나는 양희은이 먼저 노랫말을 쓰고 이병우가 곡을 입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곡이 노랫말을 감싸고 흐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병우가 만든 곡에 양희은이 가사를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노랫말이 백지 위에서 펜 가는 대로 쓴 것같이 자연스러우니 놀랍다. 두 사람이 만든 노래들은 소리의 폭이 잔잔하고 담백하다. 이병우는 음반을 만들고 나서 “듣는 이의 마음에 편안함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노래들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첫 곡 ‘그해 겨울’은 잔잔한 기타 반주에 이어 “찬비는 내리고~” 가사가 흐른다. 들을 때마다 나는 차가운 비가 내리는 어느 거리로 순간 이동을 한다. 얼굴에 습기가 느껴질 정도다. 뒷면의 ‘사랑-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들으면 노랫말을 한 글자 한 글자 짚으며 따라가게 된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글의 탁월함은 경탄을, 진솔함은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양희은의 노랫말은 모두 그의 사적 기억과 회고일 테지만 듣는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낀다. 마흔 양희은 노래의 신비한 힘이다.
양희은은 음반 뒷면에 “1991년 여름 나는 마흔이 되었다. ‘아침 이슬’ 이후 20년째”라고 썼다. 그로부터 다시 30여 년이 흘렀다. 그런데도 요즘 TV 앞에 앉아 있다 보면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SBS <생활의 달인> 같은 프로그램이다.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하다. 그는 아직도 삶의 현장에 있다. 참 대단하다고 할 밖에. <양희은 1991>을 턴테이블에 올린다. 한 곡 한 곡 따라가며 그를 위로한다. 하지만 위안을 얻는 것은 결국 나다.
writerChoi Jeongdong 기행 작가·칼럼니스트
editorKim Minh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