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인간을 신처럼 바꾸는 기술
‘사람’은 몸은 타고난 대로 놓아두지 않고 꾸미고 가꿔 다른 모습으로 바꿀 줄 아는 존재다. 문신과 화장이 출현하면서 문명의 새벽이 열렸다. 멋을 즐기지 못하는 존재는 아직 충분히 사람이 아니다.
빵과 맥주, 목욕과 화장은 문명의 상징
“엔키두는 배부르도록 빵을 먹고, 맥주를 일곱 단지나 마셨다! 그는 마음이 놓여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기운이 솟았고 얼굴이 빛났다. 엔키두가 털투성이 몸을 물로 씻고, 기름으로 몸을 문지르고 나자 ‘사람’으로변했다.” 인류 최초의 문학인 ‘길가메시 서사시’의 한 구절이다. 엔키두는 수메르인의 영웅 길가메시의 친구로, 처음엔 산과 들을 뛰놀면서 짐승과 어울려 자유롭게 살아가던 야생 인간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수메르 땅으로 데려오려고 아름다운 신녀 샴하트를 보낸다. 샴하트는 엔키두에게 빵과 맥주를 대접한 뒤, 그를 정성스레 씻기고 멋지게 꾸며 ‘사람’으로 만든다. 이 일화는 인간이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요소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빵과 맥주, 목욕과 화장은 문명의 핵심적 상징이다. ‘사람’이란 음식은 날것으로 먹지 않고 익혀서 먹는 존재이고, 몸은 타고난 대로 놓아두지 않고 꾸미고 가꿔 다른 모습으로 바꿀 줄 아는 존재다. 요리가 출현하고 화장이 시작되면서 문명의 새벽이 열렸다. 맛을 음미하지 못하거나 멋을 즐기지 못하는 존재는 아직 충분히 사람이 아니다.
문신과 화장은 변신의 예술이자 전투 기술
얼굴과 몸을 기름으로 문지르고 물감으로 물들이는 일, 즉 문신과 화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 사회 어디에서나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문신과 화장으로 자신을 바꾸는 일이 배불리 먹고 편안히 자는 일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뿌리 욕망에 해당함을 알려준다. 세계적 메이크업 아티스트 리사 엘드리지의 <메이크업 스토리(화장의 기나긴 역사)>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화장품은 남아프리카의 한 동굴유적에서 발견된 붉은 물감이다. 대략 12만 5천 년 전에서 7만 년 전 사이에 형성된 이 유적엔 동굴벽화나 장식 유물은 존재하지 않았는데, 이는 인류가 오직 몸과 얼굴을 꾸미고 물들이는 데 이 물감을 사용했음을 강하게 암시한다.
인류학자들은 문신과 화장이 주술적 욕망에서 비롯했다고 말한다. 인류는 문신을 새기고 화장을 하면 몸에 신의 힘이 깃들어 사악한 힘을 무찌르고, 질병을 이겨내며, 재해를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자 문신文身의 문文에는 그런 뜻이 담겨 있다. 오늘날에는 문文을 글자, 글의 뜻으로 사용하지만, 본래 이 글자는 몸에 새긴 ‘무늬·문양·문신’을 의미했다. 고대 중국인은 문신을 죽은 사람 몸에 그려 넣었다. 죽은 자가 산 자의 세상에 흉험한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려고 몸에 X자 문양을표시해두었다. 흉凶(흉하다)에는 그 X자의 흔적이 선연히 남아 있다.
문신과 화장은 변신의 예술이자 전투 기술이기도 했다. 물감과 기름으로 피부색을 바꾸고 얼굴을 변화시킴으로써 사람들은 신분을 표시했다. 혈족에 따라 다른 문양을 새김으로써 소속을 표시하고, 조상신의 도움을 얻었으며, 모양을 달리해 신분 고하와 성인 및 결혼 여부 등을 입증했다. 전투에 나설 때 신의 힘이 깃든 이 문양은 부족 구성원에겐 충성심과 용기를 북돋우고, 적에게는 공포와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뉴기니 부족의 뛰어나고 정교한 보디페인팅 기술을 연구한 인류학자 앤드루 스트래선은 말했다. “페이스페인팅은 매우 진지한 행위다. 문양은 그들의 지위를 나타낸다.” 문신과 화장은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성적 매력을 뽐내는 힘의 상징이었다. 여전히 독특한 화장을 통해 10대들은 한 집단에 속해 있음을 표시하고, 최고 스타의 모습을 복제함으로써 팬들은 정교한 부족 의식을 표현한다.
화장한 사람은 신처럼 아름답다
화장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는 코스메틱cosmetic으로 ‘몸을 아름답게 꾸미는 기술, 기름을 바르거나 꾸미는 기술’을 뜻한다. 이 말은 그리스어 코스메티케kosmetike에서 왔다. 코스메티케는 옷차림과 장식의 기술로, 코스모스kosmos(조화, 질서)가 드러나도록 무언가를 배열하거나 꾸미는 일이다. 한마디로 화장이란 인간의 신체에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구현하는 일이다. 화장한 사람은 우주를 닮았기에 신처럼 아름답다. 화장은 인간을 신으로 변화시킨다.
한자로 화장 은 꾸며서( ) 변신하는( ) 일이다. 처음에는 장을 장 으로 썼다. 장 이란 여성의 겨드랑이에 곡선을 내리그은 형태로, 새로운 영혼을 깃들게 하려고 옷을 갈아입는 행위를 본뜬 글자다. 장 은 겉모습을 꾸며 새로운 영혼을 맞이하는 일, 완전히 다른 인격으로 보이도록 변화하는 행위를 뜻한다. 화장할 때 쌀가루( ) 등을 사용해 얼굴을 하얗게 보이도록 했기에 후대엔 장 으로 표기하게 되었다.
인류학자 알프레드 겔은 말했다. “새롭거나 달라진 피부는 새롭거나 달라진 개성을 의미한다.” 내면에 신이 깃들 때 인간은 비로소 변화한다. 화장은 신을 맞이하는 일이고, 하나의 삶에서 다른 삶으로 옮겨 가는 영적 행위다. 다른 인생을 살겠다는 신호를 보낼 때 문신을 새기고 화장을 고치는 일은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루주는 원초적 생명의 상징
장미처럼 붉은 입술과 발그레한 볼, 눈처럼 하얀 얼굴, 짙은 눈썹과 선명한 눈매는 화장의 오랜 기본형이다. 인류가 사용한 가장 오래된 화장품은 입술과 볼에 바르고 몸을 장식하는 데 쓰인 붉은 물감, 즉 루주다. 루주의 붉은색은 원초적 생명을 상징한다. 수메르 신화에서 아루루 여신은 아다마adama, 즉 검붉은 흙으로 인간을 빚는다. 히브리의 신 여호와 역시 진흙으로 첫 번째 인간 아담Adam을 빚고 생명을 불어넣었다. 아담은 아다마의 변형으로, 담dam은 피를 가리킨다. 검붉은 흙에는 ‘신의 피’가 섞여 있고 생명의 원천이 담겨 있다. 입술을 붉게 색칠하고 볼을 복숭앗빛으로 물들이는 일은 소진된 생명을 돌려받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을 드러낸다. 코코 샤넬은 말했다. “빨강은 생명과 피의 색이다. 나는 빨간색을 사랑한다.”
눈 화장, 영적 지혜의 표현
고대 이집트 여왕 네페르티티의 이름은 ‘아름다운 이가 왔노라’라는 뜻이다. 1912년에 발견된 그녀의 흉상은 이름에 걸맞게 걸출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약 3천3백50년 전, 왕실 조각가 투트메스가 제작한 이 흉상은 높은 광대뼈,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미소와 함께 아치형으로 강조한 눈썹, 검게 칠한 눈가를 특징으로 한다. 콜, 즉 검은 물감으로 눈매를 선명히 하고 눈썹을 강조하는 화장술의 인기는 역사상 수그러든 적이 별로 없다. 눈은 예부터 인간 마음의 창이자 정신의 열쇠인 까닭이다. 이집트인에게 검게 칠한 눈은 호루스의 눈을 신체에 데려오려는 시도였다. 태양의 신이자 생명의 신인 라의 눈을 오른쪽에, 달의 신이자 정의의 신인 토트의 눈을 왼쪽에 장착한 호루스의 눈은 완전무결한 지혜를 뜻한다. 예수도 말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다.” 인류는 눈 화장을 통해 영적 지식의 원천이 자신에게 깃들기를 끝없이 갈망했다.
매끄러운 피부는 건강과 신분의 상징
백옥처럼 밝고 맑고 고운 피부에 대한 선망은 고대 그리스와 중국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아프리카에서는 검은 피부를 아마 ‘흑진주처럼’이라고 부를 것이다. 엘드리지에 따르면, 밝은 안색과 윤기 넘치는 피부는 사춘기 이후 여성 몸에서 자연스레 드러나는 생식 능력의 징표이자 햇볕에 그을린 적이 별로 없는 상류층 여성의 상징이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사랑의 기술>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자, 이제 잠을 충분히 자고 난 그대의 연약한 사지가 기운을 되찾았다면, 내게 와서 피부를 반짝이고 하얗게 만드는 법을 배워라.” 피부를 눈처럼 희고 반짝이게 하려면 쌀가루 같은 곡식이나 진주를 빻아 만든 고운 가루가 필요했다. 당나라 여황제 측천무후는 피부 미용을 위해 진주를 섭취하고, 살결에 진주크림을 발라 광택을 냈다. 칠순에 가까운 나이에도 황제의 미모는 경이로웠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피부는 처녀 같은 광택이 났다고 전한다.
위험한 선택도 있었다. 납을 피부에 발라 잡티 없는 피부를 연출하거나 거머리를 귀 뒤에 붙여 상아같이 창백한 얼굴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건강을 해치는 행위였다. 특히 납은 치명적이었다. 눈부시게 희고 비단처럼 부드러운 이 궁극의 파운데이션은 오래 사용할수록 피부를 파괴하고 탈모를 가져오며 질병을 일으키는 악마의 물질이기도 했다.
자유의 표현일 때 화장은 아름답다
문신과 화장에는 자유와 노역, 두 얼굴이 있다. 인간 자유의 표현일 때 화장은 본래 신의 힘을 빌려 자신을 더 나은 존재로 끌어올리고 싶다는 건강한 갈망의 표시다. 그러나 가부장제 사회의 여성들처럼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화장은 노예처럼 아름다움에 얽매이고 건강마저 상실하는 꾸밈 노역에 불과하다.
오늘날 무결점 미모에 대한 욕망은 더욱 커졌다. 성형 기술, 미용 산업의 눈부신 혁신과 함께 이른바 ‘뽀샵질’은 피붓결이나 얼굴 윤곽의 결점 등을 완벽하게 은폐한다. 소셜 미디어는 완벽한 얼굴의 무자비한 전시장으로, 사람들을 하루 24시간 내내 레드 카펫 위를 걷는 배우로 만든다. 항상 이러한 상태로 자신을 연출하는 일은 불필요한 데다 불가능하기도 하다. 화장 기술을 오직 자신의 자유를 위해 사용할 때, 인간은 신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
writer Jang Eunsu 출판 편집인·문학평론가
editor Jo Sohee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