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JUST A
WAYWARD
ANCHOR
사진가 알렉스 헤디슨은 오늘도 본능이 제시하는 것들에 “Yes!”를 외친다.
알렉스 헤디슨의 이미지가 역설하는 우연과 추상의 힘에 관한 대화.
Alex Hedison, ABI_045, 2022, Hahnemühle Photo Rag Satin Paper, 65.7x92.7cm Courtesy of the Artist
과거 인터뷰를 살펴보니 대화 중 “잘 모르겠어요”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더라고요. 흥미로운 점은 당신의 세계에서는 이 문장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점이에요. 찰나의 변화나 그 과정을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가장 솔직한 말처럼 들렸달까요.
제 작업은 불확실성의 추상적 유희, “모르겠다”는 말에서 의미를 찾으며 항복의 에너지를 긍정합니다. 불변의 진리를 찾는 이들에게 제 작업 과정은 마치 실패처럼 여겨질 수 있어요. 뚜렷한 목적지가 없고, 그저 방황하는 닻과 소속에 대한 갈망만 있을 뿐이니까요. 결론을 내릴 수도, 정확히 짚어낼 수도, 구체화할 수도, 분별할 수도 없는 공간에 머무는 것은 답답한 일이죠. 하지만 제 작업은 무한한 가능성, 긴 여정의 모험을 고집스럽게 지향합니다. 어둠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자력과도 같아요. 작품이 저를 어디로 이끌지, 그 과정을 통해 제가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오히려 번성합니다.
아는 것과 불확실한 것, 그 사이를 오가는 경험과 그 경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사진을 보면서 불확실성, 추상화, 불확실성을 견디는 인내의 시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한편으로는 ‘빠름’과 ‘정확성’을 우선시하는 현대 트렌드와는 정반대에 위치한 성질이기도 합니다. 예술가로서 모호함의 미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즘은 무상과 변화라는 주제에 매료되어 있어요. 이를 토대로 창작 과정의 절묘한 생동감을 탐구합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데, 이런 식이에요. “이 장소, 지금, 이 순간은 무엇이며 그 안에 나는 누구인가?” 다소 심오하거나 철학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이러한 탐구는 곧 인간적인 특성에 대한 대화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를테면 에너제틱한 신체의 움직임과 연결되는 충동 같은 것들이죠. 제 작품은 기계 같은 정밀함을 추구하는 현대미술의 동향과는 다른 감각을 사용하여 구현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은 존재하는 것과 그 반대의 것에 대한 고민을 추구하죠. 비유하자면 저는 탈출의 형식보다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신체의 충만함(fullness)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최근 전시 의 출품작들을 통해 암실의 세계로, 더욱 불확실한 작업으로 돌아가 빛, 저항, 발견의 놀라움, 일시적이고 알 수 없는 목격의 순간을 경험했고, 이를 기억과 작업에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피사체는 어떻게 선택하나요?
먼저 제가 끌리는 대상에 집중합니다. 그 피사체가 저를 이끄는 이유에 대해선 알 수 없어요. 마치 개울에서 낚시 미끼가 솟아오를 때 발산하는 반짝임처럼 제 눈을 사로잡는 시각적 자극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주제와 연결되는 ‘저만의 스폿’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죠.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여기로 움직여보면 어떨까? 이 도구를 사용하면 어떨까?” 흥미로운 콘셉트가 나올 때까지 그렇게 고민과 질문을 거듭하다 보면 한동안 찾지 못했던 “왜?”에 대한 답이 떠오릅니다. 그러다 보면 피사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처음에 저를 매료했던 시각적대상이나 장소에서 멀어지기도 합니다.
작업 초기, 공간을 작품의 주요 피사체로 다룬 시기도 있었죠. 공간과 건축은 현재 당신이 집중하고 있는 ‘어떤 지점과 지점 사이’를 뜻하는 변천의 상태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저는 물리적 환경을 설명할 때 ‘풍경’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공간과 건축, 두 요소 모두 제가 이해하고자 하는 개념의 일부를 차지하죠. 초기 연작 ‘이타카Ithaka’(2008)를 예로 설명해볼게요. 작품 속 일시적 열대우림은 위치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의 몰입감이 압도적 풍경을 자아내며 작가와 관객을 에워쌉니다. 전시
2017년 가을 파리 H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The in Between〉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2015년 파리 테러가 일어난 곳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H 갤러리를 직접 전시 장소로 선택하셨더라고요.
2014년부터 파리 상점의 외관을 촬영했는데, 건물의 소유권이 바뀌던 시기의 풍경이 흥미로웠어요. 그때부터 임시로 페인트칠한 창문과 외벽의 모양새 같은 것이 두드러진 공사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파사드들이 매일 조금씩 바뀌는 가운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형태가 점점 드러나거나 변화하는 추상적 구성을 발견했어요. 유동적 도시와 다층적 문화처럼, 연작 ‘Found Paintings’은 예술, 문화, 자기 성찰에 대한 대화를 촉발했습니다. 파리는 현재도 과거에도 유동적이며, 그 변화는 폭력적이고 불안정하며 폭발적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도시의 정체성, 즉 과거와 현재, 기억과 망각의 힘에 의해 깊이 새겨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의 면면을 사회적 화두로 삼고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사진을 포함한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예술가를 또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람들의 생각을 일깨우고 감각을 넓히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도전하는 대담자가 아닐까 해요. 사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에 ‘잘 알고 익숙한’ 상태의 개념을 넘어, 끊임없이 확장하고 변화하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상호 공감을 위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나이가 들수록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 간의 연결 고리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죠.
사진과 연기를 모두 경험한 아티스트로서 사진과 연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특히 각 작업이 상호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연기를 해본 적은 있지만 스스로를 배우라고 부르지는 않아요. 그저 인생의 어느 순간에 제안받은 일이었고, “예스”로 화답하며 임한 젊은 시절의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림, 사진, 연기, 음악 등 여러 장르에 스며 있는 예술적 충동은 모두 ‘발견’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발견하고, 배우고, 그 과정에서 내가 경험한 진실을 대중에게 연결해주는 노력인 거죠. 아티스트는 “내가 여기 있고, 이것이 내가 보는 것이고, 이것이 내가 보는 방식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라고 질문합니다. 해석 과정이 어렵고 고통스러울수록, 그리고 작품을 통해 타인과 소통할 수 있을 때 더 큰 보람을 느낍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감동을 주고 싶고 또 받고 싶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생의 운동에너지를 계속 느낄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연기와 사진을 통해 우리는 순간을 구현하고, 구체화하고, 재창조하는 방법을 선택하기 위해 우리의 경험을 활용합니다. 저에게 예술은 세상의 모든 경이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지점들을 연결하고, 느낌에 직접적으로 접근하는 행위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것이죠.
작품에 드러나는 예리하고 섬세한 통찰력을 보면서 ‘이 작가가 인물을 촬영할 경우 대상의 특징을 어떻게 세세히 포착하고, 어떤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까?”를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웃음). 생을 마감하기 전 단 한 명의 인물과 포트레이트 작업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나요?
믿기 어렵겠지만, 저는 이 질문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웃음). 사실 작업을 할 때 보통 충동에 이끌려 하는 편이라 전통적 포트레이트를 작업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죠. 그래도 질문에 답하자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제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어머니 브리짓을 촬영하고 싶네요. 어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의 저와 지금의 제가 다르듯, 이젠 어머니의 또 다른 모습을 포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새로운 렌즈를 통해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어요.
최근 많은 브랜드 및 아티스트가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기 위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스포티파이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선보이는데요. 알렉스 헤디슨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든다면 어떤 곡을 넣고 싶나요?
스포티파이에서 제 목록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로그인하면 미국 싱어송라이터 브랜디 칼라일Brandi Carlile의 ‘Right on Time’이 반복 재생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리듬&블루스, 블루그래스를 연상시키는 진심 어린 목소리를 많이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 소울풀한 음색과 감정적인 힘엔 매번 저를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계획이 있나요?
만들고, 계속 성장하고, 제가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작품으로 옮기고 싶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주변의 모든 추상적인, 그리고 우연과 맞물린 시각적 해프닝에 더욱 매료됩니다. 어느 순간부터 저는 미리 정해둔 목표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본능에 순응하는 방식을 터득했어요. 저를 이끄는 본능에 “예스”를 외치니 삶이 더욱 기적처럼 여겨집니다.
 ARTIST PROFILE알렉스 헤디슨 ALEX HEDISON196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출생한 사진작가 알렉스 헤디슨은 풍경과 건축 인테리어부터 질감, 빛, 프레이밍에 대한 반추상적인 형식 연구 등을 주제로 다채로운 사진 작업을 선보인다. 대표작은 건축 현장과 기억이 상호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을 탐구한 ‘Rebuilding’(2004-2005)이다. 최신작 ‘Everybody Knows This is Nowhere’에서는 작가가 자란 말리부 해변에 자리한 주택 아래 지형을 조사해 공간과 건축, 건축물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하고 이를 건축 환경과 풍경이 상호작용하는 방식과 연계해 고유의 작업 세계를 확장했다. |
editorKim Minhyu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