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IDST MOTHER NATURE
이탈리아 가구 브랜드 모로소의 아트 디렉터 파트리치아 모로소는 개척과 협업의 정신으로 숲속 버려진 땅에 은신처 같은 집을 지었다. 숲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그녀는 숲처럼 살고, 즐기고, 일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바닥을 파서 아늑한 동굴 같은 자리를 만들었다. 파티 하산Fathi Hassan의 백라이트 예술 작품 〈별을 먹는다는 것Eating Stars〉(2007)이 공간을 예술적 풍경으로 전환시킨다.
“길을 잃을지도 모르니 좌표를 잘 찾아 오세요.” 파트리치아 모로소(이하 파트리치아)가 사는 곳은 1952년에 그녀의 부모님 아고스티노& 디아나 모로소Agostino& Diana Moroso가 모로소 브랜드를 탄생시킨 장소이자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마을 우디네Udine였다. 밀라노에서 자동차로 4시간이나 떨어진 이탈리아 북쪽의 작은 마을 우디네에는 국경에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장점 덕분에 현재 다양한 모로소 공장과 장인 공방이 자리한다. 파트리치아의 집은 우디네 중심지에서 떨어진 숲속 어딘가에 위치한다.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수령이 오래된 고목으로 둘러싸인 숲이 보였다. 기온이 떨어지면 서로를 품고 비바람이 불면 서로를 감싸주는 나무가 우거진 곳 사이에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길이 나타났다. 푸른빛이 너울거리는 길 끝에 반듯한 나무 상자를 닮은 집 한 채가 있었다.
숲에 안기는 기쁨
모로소를 이끌던 파트리치아의 부모님은 1980년경 예술에 천부적 재능이 있는 파트리치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트 디렉터가 된 그녀는 모로소를 작은 가구 회사에서 세계적인 디자인 가구 회사로 성장시키는 데 열성을 기울였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관계를 맺고, 디자이너의 창의적 발상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트렌디한 브랜드로 성장하는 데 주된 역할을 맡은 것이다. 모로소가 명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역할의 무게도 더해졌지만, 파트리치아는 세 아이의 엄마로서 수행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밀라노 시내 아파트에 거주할 때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도 없고, 혼자 편히 쉴 수 있는 곳도 없었죠. 평화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고 느끼던 차에 자연을 벗 삼아 지내던 어린 시절 고향 집이 떠올랐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파트리치아는 우연한 기회에 인근 이웃들에게 우디네 숲속의 버려진 땅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집을 짓고 가족과 조용히 살고 싶어 했던 어느 사업가가 포기한 땅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부는 주거지 허가를 받았지만 나머지는 복잡한 사정으로 집을 짓지도 팔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수소문 끝에 땅 주인을 만났고 함께 숲을 찾았다. “땅이 여기저기 파헤쳐져 있었고 아름드리나무는 반쯤 잘려나가 있었죠. 그런데 땅이 주는 운명 같은 게 있나 봐요. 존재하는 것이라곤 땅, 하늘 그리고 빛뿐인 숲에 완전히 매료되었으니까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금 발견한 땅을 제대로 복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땅, 하늘, 빛을 담은 나무 상자
파트리치아는 친한 친구이자 디자이너 겸 건축가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Patricia Urquiola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함께 떠났던 호주 여행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본 집들은 특별한 디자인이라고 할 것 없이 소박한 모양새였다. 주변에서 구한 자재로 말끔하게 지어 주변 환경의 일부처럼 보였고, 거주하는 사람들 또한 그곳에서 자연 친화적 삶이 무엇인지 배웠다. 그래서 파트리치아는 숲에 안기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집을 요청했고, 이에 따라 소나무, 전나무 등이 군락을 이룬 호젓한 숲이 커다란 통창을 통해 내부로 성큼 들어오는 나무 상자 같은 집이 탄생했다. 그 흔한 박공지붕도 없을 만큼 군더더기 없는 나무 상자였다. 특별히 여름이 다가올수록 푸른빛을 내뿜는 숲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외부를 블랙 컬러로 마감하고, 겨울이 될수록 메말라가는 나뭇가지와 동화되기 위해 녹이 슨 철제 프레임을 사용하는 등 소소한 디테일에 자연을 대하는 디자이너의 진심을 담았다. 내부 디자인은 더욱 매력적이다. 효율과 비용을 생각해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거나 멋진 계단을 삽입하는 등 디자인 요소를 적절히 첨가했을 법한데, 흥미롭게도 실내 또한 과감히 ‘텅’ 비웠다. 그래서 전체 구조를 떠받치는 기둥 외에는 공간을 구분하는 특별한 벽이 없다. 그 대신 양쪽에 메자닌mezzanine 구조를 만들어 상부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내부가 비어 있으니 통창이 더욱 시원해 보인다. 실제 밖에서 보는 숲보다 안에서 창을 통해 보는 자연이 더욱 드라마틱하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자연 자체가 디자인이 된다는 점이죠. 해가 쨍쨍하게 비치는 날,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자연의 변화에 따라 공간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어둠이 찾아오고 숲속 가득 달빛이 내려앉는 밤이면 쉬이 잠들 수 없죠(웃음).”
세상에 하나뿐인 가구
백지 같은 집을 채우는 것은 파트리치아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떤 인테리어가 어울릴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비우면 비울수록 아름다워지는 집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텅 빈 채로도 충분한 집이었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이 소장하고 있던 모로소 초기 제품이나 브랜드가 성장하는 데 큰 동력을 마련해준 디자이너 론 아라드의 1980~1990년대 가구 작품(박물관급 작품)을 다른 곳에 둘 수는 없었다. 그녀는 집 안에 드나드는 바람을 방해하지 않도록 문과 벽을 없애고 모든 공간을 ‘열린 결말’로 두기로 했다. 모든 공간을 정해진 목적에 구애받지 않는 다용도 공간으로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역할과 쓸모에 기대지 않고 기분과 상황에 따라 원하는 장소에 가구를 하나씩 배치했다. 가구 중에는 실제 브랜드에서 출시하기 전 시험 삼아 만드는 프로토타입 모델도 있었다. 그녀는 사용하기 편리하고 만족감을 줄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하고 검증하기 위해 프로토타입을 집에서 사용해본다. “효율적이라 생각했던 디자인도 삶의 영역에 들어오면 불편을 느낄 수 있어요. 상상과 현실 차이를 좁히고 실용과 디자인의 균형점을 찾는 것 또한 제 임무라고 생각해요. 제품화되지 못했어도 디자이너의 날것 같은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어 아직까지 사용하는 가구도 많아요. 무엇보다 이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저만 아는 작품이잖아요.”
집이 곧 숲이고 숲이 곧 집인 이곳에서 파트리치아는 휴식과 일을 병행한다. 사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디자인 페어를 다니다 보면 1년 중 집에 머무르는 날은 며칠 되지 않는다. 집에서는 해가 지고 뜨는 시간에 맞춰 일어나고 잠들고 빛에 따라 공간을 옮겨 다니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고. 몸이 피로할 때는 지하에 있는 튀르키예식 목욕탕 함맘을 즐긴다. “오히려 집에 있을 때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좋아하는 일만 하게 되니 더 건강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마음은 이런 차분한 일상의 반복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숲처럼 살고 일하며 즐기는 법
집에는 침실 구석, 계단 구석 등 잠깐 쉴 수 있는 휴식 공간이 많다. 의자는 제각각 다른 방향을 향해 놓여 있다. 숲뿐 아니라 그림처럼 걸려 있는 빛 조각, 빛처럼 선명한 컬러를 내뿜는 사진 작품 등 하루 종일 ‘멍하게’ 바라보고 싶은 것이 많다. “도시에서는 높은 것을 먼저 바라보지만, 이렇게 앉아 자연 속에 있으면 낮은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숲에서도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것은 발밑에 있으니까요.”
그녀의 말대로 시선을 아래로 두니 붉은 컬러가 감도는 나무 바닥이 보였다. 아프리카 세네갈 출신 예술가인 남편 아두 살람 가예Abdu Salam Gaye를 위한 선물이다. 태양 빛을 가득 담은 아프리카의 붉은 땅을 밟는 듯한 기분을 내기 위해 그녀가 직접 찾아낸 바닥재다. 아프리카 풍경은 창에도 깃들어 있다. 세네갈 공예 작가가 만든 새 조각품을 네모난 창 주변에 빼곡히 놓아둔 것. 새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남편의 고향을 숲에 담아낸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지친 삶의 현실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스스럼없이 찾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고향이다. 그녀가 이 집에서 유독 평화로움을 느끼는 것도 이 집 자체가 포근한 고향이 되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파트리치아는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옥상을 꼽았다. 지붕 위에 올라가면 사방으로 가지를 활짝 펼친 나무와 독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숲과 함께 나이 들고 계절에 따라 모습을 바꾸는 집에서 그녀는 비정한 적자생존 대신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상호 보완하는 삶을 배우는 듯했다. 숲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은 서로 도와서 각자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에 이런 글을 남겼다.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다양성(diversity)이 높은 생태계가 더 탁월한 저항력과 회복력을 나타낸다. 다양성은 복잡성(complexity)의 다른 이름이다. 구성이 다양하면 구성원들 간의 관계망이 매우 복잡하고 조밀하게 형성되어 웬만한 충격에는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새로운 디자이너와의 공동 창작을 통해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는 일, 그리고 꾸준할 수 있는 것. 숲에 안기는 기쁨을 매일 알려주는 이 공간이 모로소에게 보내는 삶의 동력과도 같다.
소파 앞 중앙에 놓인 테이블은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의 ‘상하이 팁’. 벽에는 아프리카의 사실적인 스토리를 표현하는 사진 작가 만데모리의 작품이 걸려 있다. 카펫은 골란GOLRAN의 ‘리로디드 컬렉션’.
writer Gye Anna
editor Kim Minhyung
photographer Monica Spez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