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본인이 소장 중인 클래식 음반을 소개하는 책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2권을 출간했다. 1, 2권 합쳐 1천 장이 넘는 음반을 소개한 셈인데 자신이 소장한 클래식 음반의 3분의 1 분량이다. 하루키는 곡목을 정한 뒤 곡당 대여섯 장의 음반을 고른 다음 하나씩 턴테이블에 올려 음악을 들으며 성실하게 이 글을 써 내려갔다.
하루키식 음반 감상법
이 책은 저자가 음반을 하나하나 소개하지만 음반 가이드라고는 할 수 없다. 이른바 명반을 골라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이런 LP가 있는데 저는 그 음악을 이렇게 듣고 있습니다” 하는 개인적인 ‘보고서’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우선 하루키는 음반을 고르는 방식이 가이드북을 목표로 한 컬렉션과 완전히 다르다. 그가 소장한 음반 상당수는 바겐세일 상자를 뒤지다가 ‘싸고 왠지 재미있어 보여서’ 별생각 없이 집어 온 것들이다. 예를 들어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음반은 유진오르먼디가 런던 교향악단을 지휘한 판을 소개하는데, 가격이 불과 1백 엔이다. 캔 커피 하나 값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한 음반을 저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또 책에 소개하고 있다. 저렴하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선 필라델피아 교향악단 지휘자인 오르먼디가 런던 교향악단을 지휘한 경우는 흔치 않다. 연주 내용도 재미있다. 런던 교향악단 특유의 날카로운 돌파력이 돋보인다.
이 책이 음반 가이드가 되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악곡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간략하다는 점이다. 대개의 음반 가이드는 음악에 대한 기본적 설명이 붙기 마련이지만, 하루키는 설명을 아예 생략하거나 하더라도 한두 줄에 그친다. 그런데 음악에 대한 지식이 일정 수준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된다. 예를 들어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의 경우 “연극적이고 구성이 분열적이라 별로 내 취향이 아니다”라고 평가한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에대해서는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는 영혼을 모아 이 전 곡을 연주해낸다”고 썼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결국 ‘하루키 따라 하기’
하루키식 논평은 정경화의 연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키릴 콘드라신 지휘, 빈필 연주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에 대해 “연주의 밀도가 매우 높고 완벽하리만큼 충실하다”고 평 가한다. 정작 정경화 본인은 곡의 전체적 구성을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한 연주라고 불만스러워했던 음반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루 키의 귀가 틀렸다고 하기는 힘들다. 음반은 세상에 나오면 그때부터는 듣는 이의 것이다. 반면 하루키와 내가 똑같은 느낌으로 들은 연주자도 있다. 프랑스 출신 여류 쳄발로 연주자 위게트 드레퓌스에 대해 그는 “레코드를 턴테 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내리면 정말이지 마음이 놓인다. 아주 주의 깊고 따뜻한 마음이 담긴 연주”라고 말한다. 내가 그녀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결국 좋은 연주는 누구의 귀에나 좋게 들린다.
하루키의 책을 다 읽고 나면 최소한 그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을 사겠다고 나서지는 않게 된다. 취미의 요체는 개개인의 취향이라는걸 깨우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내 스타일대로 하기가 결국은 ‘하루키 따라 하기’가 된다.
ON-THE-GO
TRACKS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2〉 속 하루키의 클래식.
“정경화의 바이올린 연주는 야구로 치면 ‘공을 끝까지 잡고 있는 투수’를 연상시킨다.”
“‘무욕’, ‘무아’라고 해야 할까. 연주하는 인간이 투명해지다 못해 맞은편이 비쳐 보일 것 같은 느낌이다.”
“프레니의 소프라노와 베르간사의 알토의 조합은 정말로 멋지다. 아무튼 넋을 놓고 듣고 만다.”
writerChoi Jeongdong 기행 작가・칼럼니스트
intern editorKang Ju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