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가로수길’ TOP 4
대체 불가능한 매력으로 동네를 넘어선 브랜드가 될 골목길.
모종린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도시경제와 로컬 콘텐츠에 대해 심도 깊은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모종린 교수. ‘골목길 자본주의’ 개념을 제시하며 한국과 글로벌 도시들의 골목 상권을 분석하고, 작은 공간이 지닌 창의적이고 지속 가능한 경제적 잠재력에 주목해왔다. 주요 저서로 〈골목길 자본론〉, 〈로컬 브랜드 리뷰〉 등이 있으며 최근 〈크리에이터 소사이어티〉를 출간했다. |
골목길은 추억을 재생하는 거대한 영사기다. 그곳에 들어서면 마음속에 품고 있던 노스탤지어가 환상처럼 피어오른다. 머물던 이들의 추억을 촘촘하게 엮으며 자라난 한국의 골목길들은, 그 매력을 일찌감치 알아본 크리에이터들이 들어와 각자의 개성을 더해 저마다 특색이 가득한 ‘잇 플레이스’가 됐다.
“신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대체 불가능한 매력이 골목길엔 있습니다.” ‘골목길 경제학자’로 불리는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전국의 골목길들이 저마다의 ‘브랜드’로 거듭날 때, 비로소 ‘어딜 찾아도 똑같은 도심’ 개발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봤다. 저마다의 노스탤지어가 모여 미래 골목길 고유의 브랜드와 문화가 되기를 바라는 그가 10여 년간 연구해온 ‘골목길 노스탤지어’의 성공 방정식에 대해 말한다.
Q 미국 코넬대 경제학과,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셨습니다. 한국의 골목길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외국 생활을 오래 하며 도시마다 고유한 색을 지닌 동네들이 상권의 핵심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뉴욕을 예로 들면, 처음엔 타임스퀘어를 찾지만 시간이 지 날수록 첼시나 이스트빌리지같이 고유한 특색이 있는 동네를 찾아가는 식이죠. 하지만 1990년대까지의 한국은 이와 달랐습니다. 도시가 완전히 도심과 변두리 로 분리된 구조였죠. 2000년대에 접어들며 비로소 홍대, 삼청동, 가로수길 같은 지역이 부상했고 골목길, 즉 동네 자체가 매력적 상권으로 성장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이것을 단순히 경제적인 변화가 아니라 문화적인 변화라고 봤습니다. 서울 이 글로벌 도시로 변해가는 매우 의미 있는 현상이라 느꼈죠.
Q 글로벌 도시로 성장하는 데 골목길이 중요하다니, 얼핏 아이러니하게도 들립니다.
A 패션이나 뷰티 브랜드처럼, 골목길도 ‘상권’이라는 카테고리에서 하나의 브랜드입니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브랜드는 결국 아무도 찾지 않아 쇠퇴하고 말죠. ‘결국 복제 불가능한 것만이 살아남는다’는 건 상권에서도 유효한 원칙입니다. 골목길이 각자의 경쟁력을 갖춘 공간이 될 때 서울이라는 도시의 경쟁력이 한단계 업그레이드된다고 봅니다.
Q 극강의 브랜드에서도 헤리티지가 핵심 요소인데요. 골목길에서도 헤리티지가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A 그렇습니다. 헤리티지에 크리에이티브가 더해지는 거죠. 수원 행궁동의 행리단길을 한번 볼까요? 조선 후기 건축물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수원 화성의 미 美를 배경으로 특색 있는 루프톱과 카페들이 들어섰죠. 로컬 골목의 특성을 잘 살린 크리에이터가 헤리티지에 숨을 불어넣은 겁니다. 행리단길에서 작은 로스터리로 시작해 지금은 4개 점포를 낸 ‘정지영커피로스터즈’엔 ‘행리단길의 첫 가게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수원시의 감사패가 붙어 있습니다.
Q 지방 골목길의 발전 가능성은 어떤가요. ‘넥스트 행리단길’이 더 나올까요?
A 서울 골목 상권은 이미 성숙 단계에 접어든 곳이 많지만, 지방은 이제 막 발전하기 시작한 곳이 대부분입니다. 각 지역마다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가 될 가능성이 높은 골목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주의 황리단길은 불교 관련 콘텐츠가 압도적이죠. 불국사를 베이스로 한 이 동네에 불교 디자인, 소품 같은 로컬 콘텐츠가 더 많이 발전한다면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될 수 있어요. 전주의 한옥마을도 마찬가지예요. 한옥, 한복, 전통주 같은 전주의 고유 자원을 활용한 콘텐츠가 더 많이 브랜드화된다면 커다란 성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Q 그렇다면 특별히 주목하는 골목 상권이 있을까요?
A 전국 약 2백50개 골목 상권 중 절반 정도는 성숙 단계이고, 나머지는 아직 성장중입니다. 한방을 기반으로 한 F&B 콘텐츠들이 태동하는 충북 제천 의림동, 서울에선 많이 사라진 적산가옥들이 아직 ‘동네’로 존재하는 전남 목포 유달동 등이 좋은 예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골목 상권이 성공하려면 ‘필요 조건’이 있다고 생각해요. 독립 서점, 베이커리, 커피 전문점, 그리고 게스트 하우스까지 네 가지 요소가 갖춰지면 그 상권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그 뒤엔 갤러리나 공방 같은 문화적 요소가 더해지면서 창조적인 ‘문화 골목길’로 발전 할 수 있죠. 서울에서는 홍대, 성수동, 이태원이 이미 그 과정을 거쳤습니다.
Q 최근 MZ세대의 관심이 오랜 역사를 지닌 노포에 쏠리고 있습니다. 이런 트렌드도 ‘골목길 브랜드화’와 맞닿아 있을까요?
A 노포의 매력은 한마디로 ‘변하지 않는 가치’예요. 노포들은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오랜 시간 자기 철학을 유지해왔죠. 그만큼 독창적이고, 다른 곳에서는 복제할 수 없는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요즘 MZ세대가 노포를 찾는 것도 그런 이유죠.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인 정신, 오랜 시간 이어진 철학과 스토리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겁니다. 힙한 공간과 노포가 한곳에서 공존하는 모습이 바로 골목길의 매력이죠.
Q 요즘 SNS 같은 디지털 플랫폼이 골목 상권의 빠른 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요.
A 디지털 플랫폼은 이미 오래전부터 골목 상권의 성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제는 비싼 임대료를 내고 도심 중앙에 자리 잡을 필요가 없어졌죠. 독창적 콘텐츠만 있다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니까요. 그렇게 디지털 플랫폼이 동네 상권과 융합되면서 발전 속도도 훨씬 빨라졌어요.
Q 이상적인 골목길을 만들기 위한 성공 방정식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요.
A 골목이 간직한 유서 깊은 지역성에, 크리에이터들의 독창성이 더해져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지닌 새로운 로컬 브랜드가 탄생하는 겁니다. 이게 가능하기 위해선 크리에이터들이 골목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잘 쌓아놔야 합니다. 로컬 콘텐츠를 중심으로 더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각 지역의 독창적인 스토리들을 만든다면, 골목길은 지금보다도 훨씬 많은 트래픽을 창출하는 ‘브랜드’로 변신할 겁니다.
제천 의림동
한방을 기반으로 한 건강하고 풍미 깊은 미식의 세계를 만끽할 수 있는 곳. 옛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찹쌀떡과 도넛을 즐길 수 있는 덩실분식부터 한방 샤부샤부, 숯불구이까지 특색 있는 맛집들을 탐험할 수 있다.
목포 유달동
적산가옥이 많이 남아 있는 지역으로, 걸어서 5분이면 원도심을 둘러볼 수 있어 매력적이다. 해산물 중심의 먹거리와 독특한 건축 자원이 특징이며, 근해에서 잡은 생선을 샤퀴테리 공법으로 가공한 피시테리를 체험해볼 수 있다.
부산 망미동
‘비온후책’이라는 로컬 책방을 중심으로 독립 서점, 문화 예술 중심의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오래된 단독주택을 개조한 가게들이 모여 소박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에서는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와 소규모 공연도 자주 열려, 문화적 감성을 채우는 쉼터로 자리 잡았다.
통영 봉명동
남해의봄날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봄날의책방’과 ‘전혁림 미술관’이 자리한 예술 중심 골목. 건축 자원이 풍부하고 예술가들이 많이 거주해 작은 예술 마을로 주목받고 있다. 골목 곳곳에는 감각적인 공방과 갤러리들이 자리해 통영의 문화적 깊이를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