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망 속의 예술
관계 미학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로 알려진 리크리트 티라바니자는 작품과 공간, 관객 간의 상호작용에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낸다. 일종의 만남의 장과도 같은 전시를 통해 관람객은 사회 문화적 관계망을 탐구하게 된다.
Rirkrit Tiravanija, Untitled 2014 (todos juntos), handwoven nylon hammock, 1,43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City / New York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1992년 뉴욕 첼시 303 갤러리에서 관람객에게 팟타이 한 접시를 대접했던 전시 현장의 이미지다. 작가는 태국 카레, 솜땀, 팟타이 등을 대접하며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한 쿠킹 프로젝트 <Untitled/Free>
당신의 작업 세계를 둘러보면, 작업 전반에 걸쳐 녹아 있는 디아스포라적 경험이 흥미롭습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캐나다와 미국에서의 유학 등 본인의 삶을 관통하는 다대륙적 경험이 어떻게 투영되는지요.
장소의 이동이나 지리적 불균형은 제 작업의 본질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간 작품을 통해 내가 서 있는 장소로서의 ‘집(home)’이라는 개념, 즉 집은 바로 이 순간 내가 존재하는 곳이라는 생각에 대해 자주 말해왔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변화를 수용하는 개방성, 혼돈, 긴 이민자의 줄에 서 있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하죠. 이것은 동시에 어디에나 고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내포하기도 합니다. 즉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본질적으로 인지하는 것을 의미하죠. 나 자신을 아는 것은 차이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아를 파악하는 일에서부터 비롯된 모든 유동성과 흐름은 작업에 대한 접근 방식을 변화시키고 형성합니다. 예술은 디아스포라적 경험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Rirkrit Tiravanija, Untitled 2018 (6 kg of rice), polished stainless steel, 42kg of silver rice, 120×120×6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City / New York
화이트 큐브 안에서 실험적 공간을 창출하며 독특한 공간 개념을 정립한 당신에게 현재 공간이 지니는 의미와 변화 과정이 궁금합니다. 특별히 2005년 <아트포럼Artforum> 43호에 실린 라운드 테이블 토론에서 언급했던 프로젝트 ‘대지(Land)'에 대한 개념을 연결지어볼게요. 당시 “대지는 지역성과 비지역성, 생활 환경과 같은 활동의 실재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죠.
코로나 팬데믹과 현재 태국의 정치 상황은 우리가 ‘장소’에 접근하고 인지하는 방식을 확실히 변화시켰습니다. 다시 말하면, 대지/영토/공간은 빈 플랫폼이고, 활성화 또는 비활성화는 그 대지에 살고 있는 자들의 필요와 사용에 따라 결정되며, 아마도 현재는 물리적 개념으로서의 대지/공간이기보다 정신적 공간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을 듯해요. 20년 전에는 이런 개념의 가능성만 표현하려 했던 것 같아요. 흥미로운 건 이것이 팬데믹을 통해 현실화되었죠. 화이트 큐브는 현대미술에서 이상주의적 구성체지만 우리 모두가 그런 모델을 따를 이유는 없습니다. 아마도 현대미술을 통해 우리 내면에 더 가까이 도달하기 위해서는 화이트 큐브의 개념을 해체할 수도 있을 겁니다.
Rirkrit Tiravanija, TBD, 2020, newspaper and tree lacquer on canvas, 222×364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Pilar Corrias, London
최근 현대미술 신에서는 태국 출신 미술 작가들의 국제적 활동이 두드러지는데요. 이 흐름 가운데 2017년 〈아트리뷰ArtReview〉에 실린 칼럼 ‘태국 현대미술의 침묵(The Silence in Thai Contemporary Art)’을 다시 볼게요. 예술사학자 타나비 촛프라딧Thanavi Chotpradit은 인권, 정치적 정의성 문제 등에 대한 태국 출신 예술가들의 미온적 대응을 비판했습니다.
예술가도 인간이라는 점을 이해했으면 합니다. 인간은 권리와 수단, 그리고 필요에 따라 의사 결정과 행위를 실천하죠. 그래서 예술을 ‘만든다’는 선택 자체에 이미 정치적 행위가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다른 체제에 대한 대항적 선택이기에 반드시 명확한 노선을 취할 필요는 없으며, 이런 예술적 표현의 모호함은 단순히 안일함에서 비롯된 선택도 아닙니다. 예술 창작 행위는 직관적이지 않은 흐름과 결정에 가까워요. 기본적으로 저는 모든 사람이 예술가라 믿습니다.
스토리텔러로서 촘촘한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전시 전반에 걸쳐 신경 쓴 세부적 장치에 눈길이 갑니다. 최근 파리 샹탈 크루셀Chantal Crousel에서 열린 개인전을 살펴보면, 당신은 집단적 유토피아의 가능성을 내재한 전시에서 태국에서 평온과 지혜를 상징하는 주황색을 사용했죠.
맞아요. 다만 저는 모든 관람객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저는 관람객이 어떤 동기로 참여하는지, 어떤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는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 어떻게 반영되는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술을 현실에 투영하고 참여하는 데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세계갤러리와 함께하는 이번 전시 출품작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함께 일했던 갤러리들을 위해 만든 작품 ‘Untitled 2012(?)’에 대해 소개할게요. 비평가 몰리 네스빗과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와 공동 기획한 전시 <유토피아 스테이션Utopia Station>을 통해 베니스에서 만난 슬로바키아 출신 작가 율리우스 콜러에게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입니다. 콜러는 1960년대 초부터 슬로바키아 미술의 주류 모더니즘에 대응해 ‘안티해프닝antihappening’ 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예술적 전략은 실제 사물과 일상을 미적 작업의 프로그램으로 사용하는 것이었죠. 그가 그린 물음표는 예술의 근원은 의문을 품는 것이라는 사실을 제시하는 동시에 작가 이름을 널리 알리는 보편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원래 이 작품은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바젤 아트 페어에서 전시할 목적으로 제작되었어요. 아트 페어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물음표가 깨달음의 순간을 불러일으키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죠. 이번 신세계갤러리 전시에서도 그 물음표가 전시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위한 관람 팁을 알려주신다면요?
모든 사람이 참여를 통해 스스로의 의미를 찾고, 그 안에서 각자가 지향하는 의미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Rirkrit Tiravanija, Untitled 2021 (do we dream under the same sky), silkscreen on ping pong table, 274×169×20cm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City / New York
ARTIST PROFILE리크리트 티라바니자 RIRKRIT TIRAVANIJA |
Rirkrit Tiravanija, Untitled 2012(?), 94 half chrome mirrored bulbs 60W, 94 lamp holders, electric cable, 318.3x191.4x12.7cm, Edition of 4+1AP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rimanzutto, Mexico / New York
writer Lee Yongwoo 미디어 역사문화연구자·홍콩중문대학교 교수
editorKim Minh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