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리듬을 따라서
반복적 형식으로 구현된 추상의 세계, 이곳에서 이드리스 칸의 시간이 시작된다.
런던 스튜디오에서 작업 중인 이드리스 칸.
‘멀티-레이어드 추상(multi-layered abstraction)’으로 동시대 미술계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작가 이드리스 칸Idris Khan(1978~). 그는 여러 개의 이미지를 한 화면에 차곡차곡 쌓아 올려 작품을 완성하고 그 사이에 깃든 시간과 역사, 덧댄 기억의 근원을 관찰하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다. 사진은 찰나를 기록할 수 있는 기술이지만 동시에 시간을 정지시키는 기술이기도 하다. 시간과 공간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특성에 몰두했던 이드리스 칸은 연속되는 시간을 담을 수 있는 사진을 창작하고자 했고, 피사체의 흔적만 남을 때까지 찍고 또 찍는 기법을 통해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주제를 전달하는 독특한 작품 서사를 전개해왔다. 최근 그의 작품은 사진 매체를 넘어 회화와 조각, 영상과 설치 작품, 건축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지만, 그의 강렬하고도 몽환적인 반복과 중첩의 이미지는 여전히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간과 경험, 역사와 언어, 기억이 압축된 우아한 추상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포개지는 언어, 중첩되는 추상
이드리스 칸은 몇몇 인터뷰에서 자신을 ‘추상예술가’이며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작품을 만드는 사진작가라고 소개하곤 했다. 칸의 작품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이 말을 금세 수긍하겠지만, 그가 미술계에서 막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추상화를 추구하는 사진’이라는 그의 독특한 작업 방식은 세간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시도였다. 구체적 대상으로부터 탈피해 관념적인 개념을 추출하는 것을 추상화抽象化라고 한다면, 사진이라는 매체는 애초부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해 고안된 기술이기에 카메라 셔터로 대상의 형태를 제거한 추상적 이미지를 창작해낸다는 것은 언뜻 모순된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려가 무색하리만큼 이드리스 칸은 ‘반복(repeat)’과 ‘중첩(layered)’, ‘압축(encapsulate)’이라는 독보적 접근을 통해 자신만의 추상 세계를 굳건히 구축해갔다.
가장 먼저 이목을 끈 작품은 ‘쿠란(Qur˙a⁻n)’(2004)이다. 그는 아랍어로 이루어진 이슬람교 경전 <쿠란>의 1천9백53페이지를 모두 낱장 촬영한 후 이를 하나의 이미지로 압축함으로써 책에 새겨진 글자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검은 띠의 추상적 패턴으로 변모시켰다. 반복적 촬영 그리고 레이어 압축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사진 기술을 통해서도 대상의 구체적인 형태를 추상화하는 방법을 고안해낸 것이다. 그는 이와 유사한 작업 방식을 경전뿐만 아니라 롤랑 바르트, 수전 손택 등 예술과 문학에 대한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책에도 적용했는데, 이러한 일련의 작업에는 세상의 복잡성을 한 권의 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성찰적 시각이 진하게 배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드리스 칸의 책-사진 시리즈가 작품 표면에 드러나는 이미지만 추상화한 것이 아니라, 작품 소재에 깃든 의미의 측면까지 추상화했다는 점이다. 종이 위에 새겨진 일련의 언어는 레이어가 쌓여갈수록 형태를 잃고, 형태가 뭉개진 언어는 언어에 내재된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언어 위에 잠시 머물던 의미 역시 다시 추상의 영역으로 회귀하게 된다. 이드리스 칸의 작품은 언어의 중복으로 언어의 의미를 지워내는 이러한 이중 전략을 통해 관객에게 언어의 의미에 매몰되지 말 것을, 그리고 ‘검은 잉크로 새긴 기호’로서 그 표층에 깃들어 있는 언어의 심미적 기원에 대해서도 다시금 사색해볼 것을 쉼 없이 독려한다. 이를 위해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반성과 감동이 담긴 작품을 만드는 것뿐이라는 것. 음표와 언어로 조성된 명상적이고 정서적인 블루의 숲을 바라보고 있으면 일상에서 맴돌고 있던 세상의 리듬이 나지막이 들려오는 듯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 의미의 여정이 언제쯤 완수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앞으로도 그의 작품과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분명 안심이 된다.
행위에서 생성되는 예술
반복과 중첩의 작업으로 이미지의 형상을 지워내고 의미가 휘발된 자리에 추상예술의 지위를 불어넣는 이드리스 칸의 창작 패턴은 사진뿐만 아니라 회화, 영상, 조각 설치 등 장르를 넘나들며 최근까지도 꾸준히 수행되는 가장 핵심적인 작업 프로세스다. 즉, 칸의 작품 세계에서는 완성된 작품 자체만큼이나 작품을 만드는 아이디어와 과정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흔히 ‘개념 미술(conceptual art)’ 맥락에서 해석되곤 한다. 물질적 측면보다 관념 같은 비물질적 측면을 중요시하는 미술 제작 태도를 일컫는 이 용어는 1960년대 후반 미국의 평론가 존 펠로John Fellow가 지적 사고를 중시한 현대미술 양식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해 명문화했지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개념 미술의 선구자는 바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이다.
뒤샹은 상점에서 구입한 소변기를 ‘샘’(1917)이라 이름 붙여 출품함으로써 미술가의 역할은 작품에 미를 덧대는 것이 아니라 “미를 선택하는 것”이라는 개념 미술의 근본적 미학을 확립했다. 이렇게 보면 악보와 책을 수십 번씩 반복 촬영하는 행위를 통해 언어와 기호, 시간의 의미를 탐색하는 칸의 작품 역시 장식적 미보다 행위와 과정 속에서 예술적 의미를 생성해낸다는 면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개념 미술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대 미술은 여전히 개념 미술과 맥을 함께하고, 그 때문에 수많은 작가와 작업이 개념 미술의 카테고리에 속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유독 이드리스 칸이 개념 예술가로 지목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아마 비평가 제프 다이어Geoff Dyer도 언급했듯 칸의 작업에는 개념적이라고 자처하는 많은 현대예술가와는 깊이가 다른, “밀도 있고 다층적이며 심오한” 여러 개념적 결이 포개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 ‘4분 33초(Four Minutes and Thirty-Three Seconds)’(2012)를 살펴보자. 이 작품의 제작 과정과 기법에는 이드리스 칸이 활용하는 개념적 접근의 면모가 드러난다. 먼저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매체 간 전이를 실험한다. 스튜디오 벽에 텍스트를 썼다 지우는 행위를 사진으로 기록한 칸은 이를 압축해 회화 형태로 전환했다. 이는 차갑고 형식적인 기술을 자유분방하고 따뜻한 표현주의 회화 양식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방법론적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더욱 독특한 것은 작품 제목이다. 제목 ‘4분 33초’는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의 대표작과 동명이기 때문이다. 4분 33초 동안 연주하지 않음으로써 주변 소음을 음악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존 케이지의 파격적 실험 정신 덕분에 ‘4분 33초’라는 제목은 개념 미술을 상징하는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이 맥락을 충분히 알고 있는 이드리스 칸이 ‘4분 33초’를 인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작품의 형태적 측면이다. 칸은 사진으로 완성한 자신의 흑백 이미지가 존 케이지가 주장한 ‘침묵 속 소음’과 닮았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이에 자신의 작품이 ‘시각적 노이즈’의 한 장면으로 읽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제목으로 차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개념적 측면에서 그는 자신이 작품을 제작하는 방식이 개념 미술의 연장선에 있음을 의식했으며, 그 사실을 작품 제목을 통해 명시하기 위해 오마주 형식으로 차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퍼포먼스를 매개로 한 매체의 교환, 반복을 통한 중첩, 그리고 추상표현주의와 개념 미술 등 이드리스 칸의 작품에는 이처럼 형식과 내용면에서 또 예술사적 맥락에서 절충적이면서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여러 겹의 개념적 레이어가 포개져 있다. 이드리스 칸이 쌓아놓은 여러 겹의 개념은 서로를 밀어내기도 하고 연결되기도 하면서 매우 독특한 작품 서사를 형성한다. 발터 벤야민은 기계적 복제가 예술 작품의 ‘오라’ 를 박탈할 것이라 경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드리스 칸의 강박적 복제와 재현 과정은 그의 작품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복제를 반복함으로써 원본에 오라를 더하는 일인 동시에 원본에 도사리고 있던 오라를 깨우는 작업이 된다.
자연에서 체감한 실존적 감각
지난 20년간 세계 곳곳을 누비며 큰 사랑을 받아왔지만, 이드리스 칸의 작품 세계는 다양한 재료의 탐색과 변용을 거치며 여전히 성숙 중이다. 특히 지난 2년간 이루어진 팬데믹 봉쇄는 그의 작품 세계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준 듯하다. 도심과 완전히 단절된 웨스트서식스의 작은 창고에서 생활하며 그와 그의 가족은 변화하는 자연의 리듬을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봄의 연분홍과 파랑, 여름의 진한 빨강, 가을의 따뜻한 갈색은 오랜 기간 칸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준 음악을 만나 악보 조각을 콜라주한 명상적 오일 페인팅으로 재탄생했다. 근작 ‘Emotions Alter the World’(2020)에서는 작품에 자신의 글을 결합한 새로운 시도도 엿볼 수 있다. 그동안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문장을 매개로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다가가고자 노력했다면 이제는 스스로 쓴 일기 형식의 텍스트를 매개로 개인의 기억, 경험의 층위에서 우러나는 실존적 질문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관객과의 소통’이라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소통을 위한 최적의 장르로 추상화를 제안한다. 의미를 온전히 알 수 없는 추상화는 관객을 그림 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오게 하고, 그제야 비로소 작품의 빈 공간을 각자의 생각으로 채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 의미 게임이 언제쯤 완수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앞으로도 그의 작품과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준다.
ARTIST PROFILE이드리스 칸 IDRIS KHAN |
writerShin Iyeon 독립 기획자
editorKim Minh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