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세상을 다정한 곳으로 만들다
만남은 우정의 동력이다. 힘들 때 수다 떨며 위로할 친구가 없고, 아플 때 돌봐줄 가족이 없으며,
어려울 때 도움을 베풀어줄 유대가 없다면, 우리 삶은 곧바로 지옥이 된다.
친구는 인생의 항생제다
친구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누군가와 유대를 맺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을 때, 인간은 자존감과 평온함을 느낀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여전히 쓸모 있는 존재라는 사실만큼 우리를 우쭐하고 평화롭게 만드는 건 없다. 반대로, 자신이 혼자라고 느끼거나 아웃사이더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외로움에 시달리면서 서서히 고통과 불안, 우울과 공허에 빠져든다. 우정을 모르는 삶, 사랑을 잃어버린 삶은 지옥과 같다.
세계적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 옥스퍼드대학교 교수는 자신의 저서 <프렌즈>에서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꾸준히 약을 먹는 일보다 친구 몇 명과 잘 지내는 것이 건강과 장수에 더 큰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외로움을 잘 다루지 못한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혼자 사는 사람의 사망률이 사교적인 사람보다 30%나 더 높다. 외로움은 현대사회의 가장 골치 아픈 질병이다. 암이나 심장병보다 외로움이 더 많은 사람을 죽
인다.
줄리안 홀트룬스타드 미국 브리검영대학교 교수가 총 30만 명의 환자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인간 생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교 활동이었다. 우정 등 사회 네트워크가 공고하고, 지역공동체에 안정적으로 소속된 사람은 치명적 질병에 걸려도 생존 확률이 50%나 높았다. 외로움만큼 많은 인간을 죽인 킬러는 흡연뿐이었다.
친구는 인생의 항생제다. 같이 이야기를 나눌 때 친구가 건네는 다정한 말 한마디, 함께 노래하고 춤추면서 시간을 보낼 때 찾아드는 즐거움, 서로 쓰다듬고 어루만질 때 느끼는 친밀감 등은 뇌에서 분비되는 엔도르핀을 강하게 활성화한다. 엔도르핀은 체내 면역 세포의 생성을 촉진해 몸의 면역력을 높여준다. 우정이 인간의 저항력을 높여주는 이유다. 친구는 우리 정신을 위안할 뿐만 아니라 신체도 강화하는 셈이다.
친구라고 다 같은 친구가 아니다
우정은 상대를 향한 순수한 내적 호의의 표현으로, 인간다운 삶을 이루는 데 기초가 된다. 우정은 나만 알던 이기적 인간을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기 욕망을 절제하며, 타자와 함께 살 줄 아는 이타적 존재로 변화시킨다. 이 때문에 칸트는 우정을 모든 윤리 관계, 즉 공동체의 토대라고 했다.
그런데 친구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던바에 따르면, 친구란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앉아 있다가 우연히 만났을 때, 그냥 보내지 않고 반드시 옆에 앉히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이다. 학교 동창이나 직장 동료보다 훨씬 가까운 사이로, 먹고사는 일이나 사회경제적 이익과 상관없이 그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을 우리는 친구라고 부른다.
친구를 뜻하는 순우리말은 ‘벗’이다. 이 말은 ‘함께, 같이’를 뜻하는 ‘더불다’라는 말에서 나왔다. ‘더불다’가 줄어서 ‘덥’이 되고, ‘덥’에 음운도치가 일어나 ‘벋’이 되고, 이 말이 다시 변화해 ‘벗’이 되었다. 한마디로 벗이란 뜻을 같이 나누고 삶을 함께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자로도 뜻은 같다. 벗의 한자어는 우友다. 갑골문에서 이 말은 오른손을 뜻하는 우又를 두 번 겹쳐 쓴 형태로 나타난다. 손을 맞잡고 신 앞에서 서약한 사이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서로 돕는 관계라는 의미다.
친구라고 다 똑같은 친구가 아니다. 던바는 한 사람의 우정이 여러 단계로 나뉜다고 말한다. 절친은 5명 정도, 친한 친구는 15명 정도, 좋은 친구는 50명 정도, 그냥 친구는 1백50명 정도, 동료나 지인은 5백 명 정도, 이름만 아는 사람은 유명인을 포함해 1천5백 명 정도다. 인간의 사회적 네트워크는 대개 이 정도로 구성된다. 이때의 친구에는 가족, 친척, 연인 등이 모두 포함된다.
문제는 일주일에 한 번은 서로 얼굴을 맞대는, 언제든 서로 도울 만한 절친 5명이 곁에 있느냐, 한 달에 한 번 정도 기꺼이 만날 만큼 친한 친구 15명이 존재하느냐 하는 것일 테다. 신체 접촉은 우정의 동력이다. 누가 우리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거나 등을 토닥일 때, 긴장이 저절로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우정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제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나 자신의 몸에 손을 대게 하지 않는다. 아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면, 남의 몸을 만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친밀감을 느끼는 인간관계가 15명보다 줄어들어 외로움을 느끼기 시작하면 인간은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지속적으로 상처를 입는다. 불안이 찾아들고 기분이 울적해지며 통증과 고통을 완화할 수 없어진다. 힘들 때 수다 떨며 위로할 친구가 없다면, 아플 때 돌봄을 제공할 가족이 없다면, 어려울 때 경제적·물리적 도움을 베풀어주는 인간적 유대가 없다면, 우리에게 남는 건 눈물과 한숨뿐이다.
우정의 질은 함께 나눈 시간에 비례한다
우정은 느낌이나 감정이 아니다. 친구란 서로 동등한 사랑과 존경, 진정성과 신뢰를 오랜 시간 주고받으면서 단단하게 다져진 사회관계다. 때때로 친구가 우리를 실망시키고, 심지어 배신할지라도 우리는 우정을 쉽게 저버리지 못한다. 이해와 관용, 용서와 사랑은 진정한 친구 관계의 조건 중 하나인 까닭이다.
우정은 단숨에 형성되지 않는다. 만나자마자 둘이 친구가 되는 것은 오직 동화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친구를 사귀는 데는 매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두 사람이 갈등과 충돌을 이기고, 다툼과 결별을 넘어서면서 꾸준히 쌓아 올린 관계만이 우정에 값한다. 관계의 질은 우정의 핵심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우리가 사회적 상호작용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한 사람에게 시간을 내준다면 다른 사람에겐 시간을 쓸 수 없다. 우정의 질은 함께한 시간에 비례한다. 이 때문에 던바는 앞에서 살폈듯 아무리 사교적인 사람이라도 친구 숫자가 기껏해야 1백50명 내외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중학교 동창 1천 명, 페이스북 친구 5천 명, 트위터 팔로어 1만 명이 모두가 친구일 수는 없다. 진짜 의미 있는 친구, 즉 어려울 때 나를 위해 조건 없이 사랑을 베풀 사람, 돈을 빌려주고 일을 도와줄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다정한 곳임을 알려주는 관계는 오랜 시간을 같이하면서 간난신고를 숱하게 넘어섰을 때에만 비로소 생겨난다.
우정은 단순한 친교가 아니다
한 친구에서 다른 친구로, 한 모임에서 다른 모임으로 바삐 옮겨 다니는 ‘사회적 나비’는 우정을 알지 못한다.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약한 유대를 자꾸 맺어봐야 제대로 오랫동안 10명을 깊게 사귀는 것만 못하다. 자칫 ‘바쁜 외로움의 덫’에 빠질 뿐이다.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마구 수다를 떨고 돌아오는 길에 등허리
를 싸늘하게 스쳐 가는 헛헛한 느낌 말이다.
<에세>에서 몽테뉴는 “어떤 기회에 편의상 맺은 관계 같은 보잘것없는 사귐”과 “지고하고 고결한 우정”을 구분한다. 우정에는 잦은 만남을 넘어서는 질적 차원이 깃들어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우정이 단순한 친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탐구했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말한다. “사람은 자기 벗에게서 최상의 적을 찾아내야 한다.” 좋은 친구란 더 나은 존재에 도달하려고 투쟁하고 경쟁하는 관계여야만 한다. 친구란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술 지내는 사이가 아니다. 더 높은 지성, 더 고결한 품성, 더 강한 몸을 얻기 위한 분투를 촉발하는 서로의 화살이 되어야 한다.
우정은 더 나은 인간으로 살기 위해 우리를 함께 분발하는 존재로 만든다. 우리는 친구를 거울삼아 인생을 배우고, 더욱 존엄하게 살아가는 법을 익힌다. 니체는 말한다. “우리가 비록 지상에선 적일 수밖에 없을지라도, 별들의 우정을 믿기로 하자.” 한마디로 우정은 두 사람을 함께 불멸의 존재로 고양하게 만드는 힘이다. 친구가 있을 때 우리는 위대할 수 있다.
writerJang Eunsu 출판 편집인·문학평론가
editorJo Sohee
©Getty 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