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안드레이 라주모프스키Andrey Razumovsky(1752~1836) 백작은 제정러시아의 외교관이었다. 아버지는 세습 귀족이었고 어머니는 엘리자베타 여제의 조카였으니 러시아 황실의 인척이었다. 1792년 백작은 오스트리아 빈의 합스부르크 궁정에 러시아 차르의 특명 전권대사로 부임했다. 바야흐로 유럽에는 나폴레옹의 소용돌이가 다가오고 있었고 빈은 가장 중요한 외교 무대 중 하나였다. 그런데 바로 그해에 22세의 베토벤도 청운의 뜻을 품고 고향 본을 떠나 음악의 도시 빈에 입성했다.
백작은 바이올린을 직접 연주하기도 한 음악 애호가였다. 베토벤은 피아니스트에서 작곡가로 변신을 시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이든과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었다. 1805년 말 백작은 빈에 건축하는 자신의 궁전에서 연주할 현악사중주 작곡을 베토벤에게 의뢰했다. 궁전은 네오클래식풍으로 황제 전권대사의 위상에 걸맞게 화려하고 웅장하게 설계되었다. 베토벤은 이듬해 작곡에 착수해 불과 두 달 만에 현악사중주 세 곡을 완성했다. 하지만 궁전이 미처 완공되지 않아 초연은 1807년 2월 빈의 다른 장소에서 이루어졌다. 연주는 라주모프스키 백작의 사설 연주 단체 슈판치히 사중주단이 맡았다.
베토벤이 이때 작곡한 현악사중주 세 곡은 작품 번호 Op.59 ‘라주모프스키 사중주’라고도 불린다. 나는 그중 1번을 좋아하는데 스메타나 사중주단의 선 굵은 연주로 즐겨 들었다. 첼로가 시작을 여는 부드러운 1악장, 스타카토로 긴장감을 주는 2악장, 명상적 휴식을 선사하는 3악장을 듣다 보면 40분이 금세 흐르고 좋은 음악을 듣는 즐거움에 행복해졌다. 하지만 당시의 청중에게 이 음악은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1번 첫 부분을 연주하자 사람들이 웃었다고 한다. 귀에 착 감기는 하이든, 모차르트 음악과 너무 달라 베토벤이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귀는 수백 년에 걸쳐 창작된 서양음악을 시대별로 섭렵했기 때문에 베토벤의 어떤 음악이든 고전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베토벤 당시의 빈 시민들에게 ‘라주모프스키 사중주’는 최신 현대음악으로 이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음향은 이상하고 전개는 낯설며 너무 길었다. 베토벤은 불과 7년 전 하이든·모차르트풍 현악사중주 Op.18의 여섯 곡을 썼는데,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귀가 먹어가고 있었다.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지만 백작의 사중주를 지을 당시 베토벤은 난청이 점점 심해져 그의 속마음은 두려움과 좌절감, 반항심으로 가득했다. 음악가에게 필수인 청각이 희미해지자 작곡 방향도 대중의 취향에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쪽으로 바뀌었다. 당시의 작곡 스케치북에는 ‘세상 그 무엇이 음악으로 영혼을 표현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이런 생각으로 음악을 지었으니 청중뿐 아니라 연주자에게도 그의 음악은 난해한 것이었다. ‘라주모프스키 사중주’를 초연할 때 한 연주자가 악보가 너무 어렵다고 불평하자 베토벤은 “내가 영감이 떠올라 작곡을 할 때 그 삑삑거리는 작은 깡깡이 따위를 신경이나 쓰는 줄 아시오?” 하고 쏘아붙였다. 독설을 들은 사람은 베토벤과 가까운 사이였다.
‘라주모프스키’ 이전의 실내악은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같이 즐기기 위한 음악이었다. 하이든의 현악사중주에는 ‘종달새’, ‘세레나데’, ‘농담’ 같은 제목이 붙어 있다. 베토벤은 이런 성격의 음악을 가장 진지한 장르로 탈바꿈시켰다.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는 동질의 음색으로 논리적인 이야기를 전개했으며 곡의 길이도 교향곡 수준으로 장대해졌다. 빈 시민들이 첫 만남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베토벤>, 최은규).
‘라주모프스키 사중주’ 발표 때 “이 작품을 음악으로 볼 수 있겠느냐?”고 노골적으로 의문을 나타낸 음악가가 있었다. 베토벤은 그에게 “이건 당신을 위한 곡이 아니라 미래의 청중을 위한 곡이오”라고 일갈했다. 작곡한 지 2백 년이 훌쩍 지난 미래의 청중인 나는 ‘라주모프스키’를 잘 듣고 있다. 진지하되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 즐겁되 너무 가볍지 않다.
라주모프스키 백작이 베토벤에게 현악사중주 작곡을 부탁하지 않았다면 21세기에 그의 이름이 거론되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에서 라주모프스키는 ‘라주모프스키 사중주’와 동의어로 취급된다. 내 단골 음반 가게에서도 베토벤 현악사중주 Op.59보다 “라주모프스키 있느냐?”고 물어야 잘 알아듣는다.
writer Choi Jeongdong 기행 작가·칼럼니스트
intern editor Kang Juh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