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감정과 본능
영화를 매개로 인간 심리를 파헤치는 영화평론가 심영섭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니셰린의 밴시〉. 관계의 변화를 중심으로 내면에 복잡하게 얽힌 감정과 본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Alamy
“그냥 이제 자네가 싫어졌어.” 1923년, 4월의 찬란한 햇살 아래 아일랜드 가상의 외딴섬 이니셰린. 농부 파우릭 설리반이 작곡가 친구 콜름의 집 앞을 서성인다. 그는 평소처럼 콜름과 수다로 펍을 가득 채우며 오후를 보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콜름의 집은 조용했고, 펍에서 만난 콜름에게 뜻밖의 선언까지 듣는다. 콜름의 냉정한 절교 선언은 파우릭의 마음을 심하게 어지럽히고, 혼돈과 낙심에 빠뜨린다. 그를 더 괴롭히는 것은 콜름에게 아무리 이유를 물어봐도 ‘네가 싫어졌다’는 간결한 답이 돌아올 뿐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4월 1일 만우절 농담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사태는 만만치 않다. 콜름이 자신에게 자꾸 말을 걸고 괴롭히면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관계 단절의 이유를 모르는 것을 관계 단절 자체만큼 힘들어하는 파우릭은 최선을 다해 콜름의 마음을 돌리든가 그 이유를 찾아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여 마을 신부에게로 여동생 시오반에게로 동분서주하며 동네를 오간다.
내면의 선善, 나약한 흔들림
파우릭이야말로 동네가 다 아는 선한 사람이다. 동물에게도 다정하고 사람에게도 착했다. 하지만 콜름에게 파우릭은 지루한 사람이기도 했다. 키우는 당나귀 제니의 똥 이야기를 2시간 동안 늘어놓는가 하면 어느새 둘은 펍에서 영원한 가치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모차르트는 몰라도 엄마가 다정하게 대했다는 기억과 감각이 있기에 파우릭은 다정함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라고 당당히 천명한다. 그에게 다정함은 확실한 선善이었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콜름의 절교 선언에 다정하지도 착하지도 않은 여러 일을 벌이기 시작한다.
일단 아버지가 빵 수레에 치였다는 거짓말로 콜름과 친한 음대생을 속여 섬을 떠나게 만든다. 그리고 분명히 다시 한번 귀찮게 굴면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한 콜름의 집에 찾아가 펍에서 난동을 부려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안부를 묻는다. 또 사랑하는 당나귀 제니가 파우릭이 던진 콜름의 손가락을 먹고 죽어버리자, 모든 마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콜름의 집을 불태우겠다고 선언한다. 예상하지 못한 절연이 한 없이 선하기만 했던 인물의 내면에 거친 파동을 일으킨 것이다. 사실 그에게 콜름과의 관계는 자신이 다정하고 똑똑하다는 확신이 들게 하는, 세상에 대한 안정감과 확실성을 찾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는 콜름이란 사람을 통해 세상과의 연결점을 찾고, 다정하고 똑똑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자기중심적 삶의 방식을 유지해왔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더 이상 백설공주 왕비의 거울 노릇을 해줄 수 없다”는 콜름의 선언이 파우릭에게는 스스로 모습을 비출 수 없는 정체성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 충격일 것이다.
고독한 진심
그렇다면 콜름은 파우릭과의 관계를 단절하기 위해 왜 손가락까지 자르려 했는가?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에서 자행되는 가장 블랙코미디적인 요소는 인간이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자아를 스스로가 배신하면서 자기모순적 행동의 액셀을 점점 더 세게 밟아간다는 것이다. 최대한 선의로 말해 시골의 민속음악가 정도 되는 교양인 콜름은 반대로 교양과는 거리가 먼 야만적이고 충격적인 손가락 자르기로 자신의 고독한 진심을 증명하려 든다.
콜름은 초월적 가치를 추구한다. 음악을 구현하는 도구인 손가락이 없어져도 자신의 음악이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미래에도 계속 이름을 남겨 죽음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점은 콜름이 파우릭과의 관계를 단절하기 위해 그를 공격하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점이다. 콜름의 자해적 경향은 스스로의 세계를 온전히 통제하려는 그의 강한 욕구를 보여주며, 죽음 앞에서 촛불처럼 흔들리는 내면의 불안과 자아의 상실감을 초극하려는 방어적 노력을 드러낸다.
고립이 유발하는 심리, 탐貪
콜름과 파우릭, 파우릭과 콜름. 이 두 사람의 대립과 갈등 속에서 이니셰린의 주민들은 죽음과 죽음의 예언 사이를 오간다. 고립된 섬이라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비밀과 소문과 스캔들을 탐한다. 우체국 주인은 오가는 손님들에게 새로운 뉴스를 물어보고, 심지어 시오반의 개인 편지까지 몰래 뜯어서 읽는다. 경찰관 페더는 6실링에 점심만 얻어먹을 수 있으면 누가 누구에게 사형 집행을 하든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오직 페더의 아들 도미닉만이, 마을 사람들이 항상 바보로 여기는 상처 가득한 얼굴의 도미닉만이 예상치 못한 지혜를 보여준다. “콜름이 왜 손가락을 던졌을까?”라고 묻고, “이제부터는 더 당당하게 살아보라”고 조언한다.
사적인 동시에 만연한 외로움
그러나 이니셰린이라는 섬은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밴시 유령이 곧 죽을 사람의 피 묻은 옷을 빨고 비명을 질러 죽음을 예언하는 동네일 뿐이다. 맥코믹 부인은 이 밴시 유령의 현현으로 진실을 말하는 유일한 섬 주민이다. 그녀의 예언대로 2개의 죽음은 이윽고 섬에 당도한다. 시오반도 육지 도서관에서 근무하기 위해 파우릭 곁을 떠나고, 사랑을 주던 당나귀 제니도 죽고, 도미닉도 자살인지 사고인지 알 수 없는 일로 호수에 빠져 세상을 떠났다. 시오반에게 슬퍼지니까 슬픈 책을 보지 말라고 하던 파우릭은 한없는 외로움에 빠져든다.
관계의 양상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언어
그렇다면 두 인물이 동의할 수 있는 접점에서의 이별은 불가능한 것인가? 콜름은 펍에서 “오늘 파우릭은 제일 재미있었어. 다시 좋아지게 생겼어”라고 말했고, 도미닉은 이 말을 파우릭에게 전한다. 그날은 처음으로 콜름과 파우릭이 영원히 남는 것에 대해 언쟁을 벌이며 서로의 의견을 교환한 ‘우리’가 존재한 날이다. 어쩌면 진심 어린 의사소통은 손가락을 자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영화 내내 이어진 지난한 갈등은 그들이 나눈 마지막 대화를 기점으로 자연스레 해소될 것처럼 보였으나, 결국 맥코믹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로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피 터지는 내전을 벌이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된 당시 아일랜드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1923년 어느 날처럼, 관계란 본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서로의 의견과 생각을 나눈 ‘대화’가 시작된 순간을 맞이한다면.
writer Sim Youngsub 한국영상응용연구소 대표
editor Kim Minhy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