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움직이는 힘, 지리
세계사는 물론 개인의 삶까지 좌우하는 지리. 그 강력한 힘을 마주하는 시간.
우리가 두 발 디디고 있는 땅은 언제든 변함이 없다. 다만 어느 시대, 어떤 곳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그곳 사람들의 삶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긴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삶을 좌우한 것은 결국 ‘지리’였다. 대개 그곳과 얽힌 정치적 격변을 이야기할 때가 많지만, 최근 출간된 다양한 책은 ‘지리 그 자체’가 요인 중 하나가 되어 역사를 이끌어나갔다고 말한다. 지리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은 어떻게 발현되어왔는지, 지리는 인간의 욕망을 어떤 모습으로 받아냈는지 정리한 책을 통해 지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지리의 힘
팀 마샬 지음 / 사이
세계사를 결정짓는 지리의 힘
영국의 국제 문제 전문 저널리스트 팀 마샬의 <지리의 힘>(전 2권)은 ‘지리라는 렌즈’를 통해 세계를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25년 이상 30곳이 넘는 분쟁 지역을 취재했는데, 모든 세계사적 문제에는 지리라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동했다고 강조한다.
각국의 경제적 대립은 물론 빈부 격차, 영유권 분쟁 등은 모두 지리에서 비롯되었다. 세계사를 결정한 주요 요소 역시 지리였다.
분쟁 지역을 오랫동안 취재한 저자의 눈에 한국은 “위치와 지리적 천연 장벽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긴 시간 동안 “강대국들의 경유지 역할”을 해왔다. 북쪽에서 내려와 해상까지 진출하는 데 걸림돌이 될 만한 천연 장벽이 거의 없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은 이런 지리적 요인 때문에 큰 피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21세기에도 마찬가지다. 저자에 따르면 복잡하지 않은 한반도의 지형 때문에 남과 북의 인위적 분단이 가능했고, 중국을 부담스러워하는 일본과 미국은 이러한 한반도 상황을 오늘날까지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대륙에만 치중하던 중국은 국제적 해군력 없이는 패권국이 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차츰 인식하게 되었다. 최근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 여러 대양과 해협에서 영유권 분쟁을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스페인은 “한마디로 거대한 요새”와도 같다. 스페인 중부 지역은 전체가 높은 고지대와 깊은 골짜기로 이뤄진 고원지대다. 이 같은 산악 지형과 영국보다 2배나 넓은 면적은 교역은 물론 강력한 정치적 통치력을 행사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고,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와 언어적 정체성이 발휘될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 국가國歌에 가사가 없는 이유는 스페인이라는 이름으로 아우를 만한 ‘그 무언가’가 없기 때문이다. 북서부 바스크와 북동부 카탈루냐가 계속해서 독립을 주장하고 있지만, 스페인으로서는 여러 지역의 독립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지리적 요인은 이처럼 정치는 물론 문화적 요인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인 셈이다. 한편 저자는 우후죽순 일어나는 우주개발이 자칫 새로운 화약고가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리의 힘>은 이처럼 지리가 인간 삶에,아니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충실하게 복원한 책이다.
지리를 알면 보이는 것들
정은혜 지음 / 보누스
인간 삶에 미치는 공간의 영향력
지리학자 정은혜의 <지리를 알면 보이는 것들>은 ‘인간은 공간을 어떻게 바꾸고, 공간은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공간을 다루는 학문인 지리와 시간을 다루는 학문인 역사가 분리된 채 해석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어떤 공간을 만들 때는 분명한 의도가 있고, 그 의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간의 가치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지리학이 땅, 바다, 대륙, 산, 강 등 자연에 관심을 두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삶을 다시금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의 갈등 구조를 이해하고, 그것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는 인문지리학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수학의 위로
마이클 프레임 지음 / 디플롯
지리적 문해력을 갖춰야 산다
미국 지리학자 알렉산더 머피의 <지리학이 중요하다>는 각종 전염병과 기상이변, 점증하는 국제분쟁 등 현대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핵심에 지리학이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그 해결책으로 지정학地政學이 아닌 지리학적 사고력을 제시한다. 지리적 요인에 과도한 정치적 견해가 개입된 사례는 숱하게 많다. 일례로 중동 여러 나라는 저마다의 문화와 관습, 전통을 지닌, 즉 극렬 이슬람 세력이 아니다. 지리적 요인 이면에 담긴 맥락과 관점을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세계를 올바로 보는 것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기상이변에서 팬데믹, 경제적 불평등까지 격변의 시대에 도사린 불확실성을 해결할 힘을 지리적 문해력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스타벅스 지리 여행
최재희 지음 / 북트리거
스타벅스의 지리적 위치와 공간의 효율
현직 지리 교사 최재희의 <스타벅스 지리 여행>은 우리나라 곳곳에 자리 잡은 스타벅스 매장에 숨은 지리적 비밀을 밝힌 책이다. 저자는 스타벅스의 지리적 위치를 따져보는 일은 곧 공간의 효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지혜를 준다고 말한다. 1호점인 ‘이대R점’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직격탄을 맞은 이대 앞이었던 이유, 서울 대치동의 ‘대치은마사거리점’이 학원 밀집 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해발 642m 산에 위치한 ‘문경새재점’이 거기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또 스타벅스 매장 입지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주변 상권이 어떤 역사를 거쳐왔는지, 그곳에서 스타벅스는 어떤 역할을 이어가는지도 전해준다.
writerJang Dongsuk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출판평론가
intern editorKang Juhee
photographer Ryu Hose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