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病中思索병중사색>이라는 심상치 않은 제목의 책이 나의 서가에 꽂혀 있다. 우리 고전을 번역하는 한국고전번역원에서 낸 것으로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책이다. 이규보, 이색, 권근, 서거정 등 고려와 조선의 걸출한 문장가들 글을 소개하는데 제목이 말해주는 대로 그들의 병상 작품을 모아놓았다.
나는 심신의 한구석이 탈선했다 싶으면 이 책을 꺼내 읽는다. 동병상련하는 친구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선조들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 홀로 병상에 누워 고통받는 중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문학적 향기 높은 글을 지어냈다. 또 병에 대해 깊이 사색했다. ‘왜 병에 걸렸을까?’, ‘병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 정신세계가 녹아 있는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위안을 받고 병을 대하는 지혜까지 얻게 된다.
권근(1352~1409)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학자, 문인이자 관료였다. 태종 이방원을 그리는 사극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인물이다. <병중사색>에 따르면 그는 평생 눈병, 귓병, 결석 등을 앓았다. 귓병은 노년에 들어 심하게 앓았는데, 결국 청력을 상실하고 만다. 그때 지은 시를 읽어보면 그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훤히 그려진다. “이순을 앞두고 도리어 듣지 못하게 되니 개구리 울음소리 허공에 가득 찬 것 같네.” 예순에 이르러 청각이 상실되면서 이명 증세만 극심해졌다는 것이다. 이순耳順은 공자가 “나이 육십에 귀가 순해졌다(六十而耳順)”, 즉 들리는 대로 깨닫는다고 한말에서 유래했는데, 권근 자신은 그 나이에 도리어 듣지 못하게 되었다며 뚜렷한 대비로 자신의 질환을 한탄하고 있다.
이후로는 슬픈 정경이 펼쳐진다. “사람 말 들을 때는 움직이는 입술만 보고, 손님이 와도 의사소통이 안 돼 한스럽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입 벌려 웃나니.” 새 국가의 기틀을 다지던 야심만만하던 인재가 늙어서 남의 말도 못 알아듣고 입을 헤벌리고 웃기만 하는 모습은 처량하다. 귓병을 읊은 다른 시에는 이런 구절도 보인다. “글을 쓰지 않고는 말로 소통이 어려우니, 아내와 자식도 외국 사람과 같네.” 여기까지 읽고 나는 아, 하고 안타까운 탄성을 토했다. 누군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필담筆談으로 대화하는 귀머거리, 늙은 몸으로 병상에 누워 못다 한 예술혼을 불태운 인간, 바로 베토벤이다.
1825년 1월, 영국의 필하모닉협회는 베토벤에게 런던에 와서 그의 음악 연주회를 감독해달라고 초청했다. 베토벤은 승낙했으나 런던행은 결국 무산됐다. 병이 위중해졌기 때문이다. 그해 55세로 귀가 거의 들리지 않게 된 노음악가는 마지막 작품이 될 현악사중주 작곡에 매진하고 있었다. 베토벤은 의사에게 편지를 보내 “너무 심하게 아프니 와서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검진한 의사는 경악했다. 내장의 감염증이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고했다. “술을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당신은 몇 시간 내로 드러눕게 될 것입니다.”(<루트비히 판 베토벤>, 메이너드 솔로몬)
베토벤은 빈 인근의 휴양지 바덴으로 떠났다. 좋아하는 포도주를 자제한 덕분인지 몸은 곧 회복되었다. 이때 그는 현악사중주 Op. 132를 작곡하고 있었는데 누군가와의 대화첩에 이런 글을 썼다. “폐인이 회복되었으니 신에게 감사의 송가를 바치다. 새로운 힘의 느낌과 다시 깨어난 감정.” 이런 심경은 3악장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리하여 연주 시간이 거의 20분에 달하고 ‘병에서 회복한 사람이 신에게 바치는 거룩한 감사의 노래’라는 긴 제목의 음악이 탄생했다.
이 매우 느린(molto adagio) 음악은 인간 정신의 깊은 바닥을 비춘다. 베토벤 특유의 근육질은 흔적도 없고 그저 겸손하게 감사하고 기뻐한다. 회한이 없지 않지만 그것도 신에게 감사한다. 베토벤은 병상에서 삶을 돌아보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심경을 이 음악에 담았을 것이다. 내가 이 음반을 꺼내 드는 마음은 <병중사색>을 읽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명상적 선율에 실린 베토벤의 독백에 귀 기울이다 보면 동병상련을 넘어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죽기 1백 일쯤 전 베토벤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모토는 항상 이거야. 한 줄도 쓰지 않는 날이 없도록(Nulla dies sine linea).” 참으로 굳센 작가 정신이다. 죽기 직전까지 오선지를 놓지 않은 베토벤이나, 몸져누워서도 자신의 처지를 작품성 높은 시로 남긴 권근이나. 하여 내 病中思索의 결론도 이렇다. 병은 친구 삼고 오늘도 한 줄.
writer Choi Jeongdong 기행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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